10만 개의 카페가 있는 대한민국의 '대(大) 카페 시대'
그 중 오직 단 하나의 카페만이 선사할 수 있는 순간은 분명 있다고 믿는 청년의
진솔한 카페 관찰 일지
01. 높은 건물 사이, 답답한 도시 속에서
식물이 지닌 생명력은 주변에 평온함을 전하는 힘이 있다. 가느다란 녹색 줄기가 흙을 가르며 뻗어나가는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가쁘게 내쉬던 숨을 고르고 자신이 딛고 있는 땅과 그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린 존재를 되돌아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적갈색의 흙 대신 회색의 콘크리트 위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녹음 속에서 한 숨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날, 내가 거닐던 곳은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번화가였다. 높은 회색 건물들이 좁은 골목길을 메우고, 곳곳이 자리 잡은 아기자기한 소품샵과 화려하게 치장된 음식점 사이로 젊음이 삼삼오오 모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봄기운이 스며들고 있었지만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퍼석하게 마른 나뭇잎이 바닥을 어슬렁거렸다.
02. 단순함이 주는 위안
번화가를 걸을 때면 종종 숨이 막히는 듯한답답함을 느낀다. 도시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득 스며들 때, 피로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러던 중, 차와 사람들, 건물과 매연 사이에서 눈에 띈 것은 탁 트인 통유리창 너머, 흰색의 넓은 공간이 펼쳐진 한 건물의 3층 가게였다. '차와 커피, 꽃과 식물'이라는 흰 글씨와 사이사이 산들거리는 녹색 잎이 어지러운 도심 속 고요함을 전해주었다. 그 순간,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잠시 모든 것을 잊었다.
그건 나에게 꽤나 큰 도박이었다. 그날의 나는 꽤나 지쳐있었고 나에게는 여유를 가지며 숨을 돌릴 곳이 간절했다. 하지만 번화가의 카페는 대부분 SNS에서 이목을 끄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회색 콘크리트 사이에 위치한 이 카페가 단지 ‘흰 벽과 식물’만으로 휴식처가 될 수 있을까. 분명 그곳은 좁은 테이블 사이로 사람이 시끌벅적하게 모여있는 또 다른 작은 번화가일 수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수많은 소음 사이에서 몸을 구겨 앉아야 할 것이었다. 다른 여느 번화가의 카페들이 그렇듯이. 그렇다면 나는 또다시 소음 속에 눌려버려야 했고, 그 당시의 나에게 그만한 낭패는 없었다.
그러나'차와 커피, 꽃과 식물'이라는 이 네 개의 단어가 나에게 주는 희망은 강렬했다. 머뭇거리던 나는, 짧은 고민 끝에 조금 긴장한 상태로 건물 안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03. 생명이 숨 쉬는 곳
어릴 적, 습기 머금은 흙을 맨발로 밟으며 식물의 존재를 만끽했던 적이 있다. 쪼그려 앉아 온몸에 흙먼지를 묻히고, 뼈가 다 자라지 않은 손으로 바삐 자라나던 녹색의 잎들을 매만졌을 때 느꼈던 그 매끈함과 부드러움을 기억한다. 쌕쌕이는 아이의 숨소리 사이로 육체에 흘러들어오던 자연의 감촉은 그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의 품과 같은 포근함을 갖고 있었음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날 나는 식물이 존재하는 곳에는 생명의 향기가 피어난다는 사실을 배웠다.
3층으로 올라가 투명한 유리문을 열자, 좁은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커피 향도, 베이커리 향도 아닌 풍성한 생화의 향기였다. 그 향기 사이에는 식물의 잎이 손끝을 스치는 소리, 흘러나오는 물소리와 식기를 달그락거리는 소리, 어린 이국의 아이가 웃는 소리가 스며들어 있었다.
문을 활짝 열자,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마치 작은 식물원과 같았다. 건물 밖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통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내부를 환하게 비추고, 다양한 꽃과 식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흰 배경을 바탕으로 살랑이는 녹색 잎은 그림처럼 나를 반겼다. 잠시 머뭇거리던 발걸음은 자연스레 식물 뒤의 짙은 원목 테이블로 이끌렸고, 그곳에서는 은은한 커피향이 퍼져 나왔다.
의자에 앉으며 창밖을 바라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척박한 길과 달리 한쪽 창문 너머로는 녹색 잎들이 가득했다. 3층까지 계단으로 올라온 그 순간 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며 잎사귀가 나기 시작한 나무와 눈높이가 맞춰졌다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04. 고양이와 식물, 인간과 커피의 공생
생화가 가득한 꽃 진열장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친절하고 다정한 오렌지색 고양이였다. 그 아이는 조심스럽게 손인사를 하는 나에게 조용히 코를 맞대어주며 인사해 준 뒤 내 옆에 있던 쿠션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길고 보드라운 꼬리가 꽃잎 사이를 스쳤을 때, ‘만복이’라는 목걸이가 반짝였다.
고양이의 기분을 해치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중 꽃을 정리하던 사장님이 테이블에 다가왔다. 짙은 검은색 곱슬머리를 기르고 차분한 색의 앞치마를 메고 있었던 사장님의 차분한 움직임이 식물의 결과 닮았다는 생각도 아주 조금 했다. 그는 조용하고 잔잔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많은 분들이 저희 공간에 '쉼'을 갖기 위해 찾아오세요. 춥거나 더울 때, 목이 마르거나 피곤할 때 저희 카페를 찾아주시죠. 그중에는 고양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식물이 주는 따뜻함을 느끼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품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고양이와 함께 하다 보니 고양이에게 해롭지 않은 식물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저에게 여쭤봐주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것은 '공생'이기 때문에 오직 고양이를 위주로 식물을 들여오지는 않아요. 대신 꽃은 전부 진열장에 보관해서 고양이에게 닿지 않게 하고, 병원에 가야 하는 등 꼭 필요할 때만 카페에 데려오고 있어요. 저희는 선순환의 힘을 믿어요."
그가 떠나고, 나는 그의 말에서 남은 ‘공생’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다시 카페를 둘러보니, 짙은 원목 가구 위에 펼쳐진 녹음, 창을 통해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과 그 아래 살랑이는 꽃잎들이 또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고양이는 기분 좋은 그르릉 소리를 내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 옆 테이블의 금발 어린아이는 신기한 눈빛으로 식물을 바라보며 밝게 웃고 있었다. 때로는 카페 문이 열릴 때, 연인을 위해 꽃다발을 건네는 다정한 남성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고, 한편으로는 꽃잎을 정리하는 소리와 함께 바스락거리는 신문지와 설거지 도구의 달그락거림이 어우러졌다.
이곳은 단지 인간만을 위한 곳도, 동물이나 식물만을 위한 곳도 아니다.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며 서로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진정한 ‘공생의 공간’임을 나는 깨달았다.
05. 절제는 평온함을 전달한다
마치 꽃과 식물이 지나친 관심보다는 적절한 거리와 시간이 주어질 때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처럼, 이곳의 분위기는 과하지 않은 것이 주는 섬세함을 품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 카페의 주인이자 식물의 관리자인 그는 고요함을 품고 있었다. 물론 그는 언제나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과도한 친밀감을 요구하지고, 불필요하게 다가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주문을 받고, 손님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 살피고, 틈틈이 꽃과 식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고양이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카페 내부의 흰 벽은 깨끗한 캔버스처럼 식물 본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드러낸다. 방해받지 않은 배경 위에서, 잎사귀 하나하나가 섬세한 곡선과 미묘한 질감을 선보이며, 햇빛 아래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이룬다. 이처럼 과하지 않은 표현이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내듯, 카페 전체는 ‘거리를 두는 것’이 주는 여유와 균형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이렇게 차분한 거리 두기가 만들어내는 여유 덕분에, 카페 안을 천천히 둘러보는 순간 마치 작은 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사장님의 세심한 배려와 공간 구성은, 지나친 관심 대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한다.
06. 공생의 힘
카페를 나서며 다시 바삐 걷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섰지만, 이전과 같은 피로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식물이 물을 흡수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듯, 그 작은 카페에서 얻은 생명력이 내게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얻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식물의 의미를, 더 나아가 자연의 곱씹었다. 불필요한 것은 없다. 그저 서로서로가 배려하며 공생할 뿐이다. 내가 매일 피곤함을 느끼는 이 아스팔트도, 결국 우리가 편리하게 살아가는 터전이다. 그리고 그런 편리함이 있기에 나는 휴식에서의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 생각하니 나는 그가 이야기 했던 공생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