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는 초콜릿 쿠키를 구웠다. 그냥, 문득 쿠키를 굽고 싶었다. 귀여운 초록색 메모지에 재료를 적고 바지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었다. 귀여운 쿠키 만들기의 재료는 아래와 같다.
박력분 조금
녹일 수 있는 밀크초콜릿
알록달록 귀여운 색감을 책임질 초콜릿
계량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재료를 사러 집 앞 마트에 다녀오며 본 하늘은 구름이 빽빽했는데, 구름끼리 친해지는 과정을 본 것 같아 맑은 날씨로 느껴졌다. 재료를 사 왔으면, 빠르게 쿠키를 구울 수 있다.
1. 초콜릿을 조심히 전자레인지에 30초씩 녹인다. 한 번에 녹이면 초콜릿이 타버리니 주의한다.
2. 큰 그릇에 초콜릿을 넣고, 박력분을 넣어 반죽한다. 주걱으로 십자 모양을 내어 살살 섞다가 손으로 야무지게 반죽하는 게 포인트다.
3. 색감을 추가하고 싶다면 엠엔엠즈 초콜릿을 넣어 함께 반죽한다. 초콜릿을 조금 으깨도 좋다.
4. 쿠키 틀로 모양을 내거나, 둥글게 빚어 모양을 낸다. 너무 두꺼우면 속까지 익지 않는다.
5. 에어프라이어기로 10-15분, 175도로 굽는다.
6. 조금 식히면 완성이다!
만들어진 쿠키는 공룡이나 별, 트리 모양 쿠키 틀 덕분에 귀엽게 완성되었다. 작은 돔형 컵에 다섯 번 소분할 수 있는 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나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만나서 쿠키 먹을래?”로 대신했지만.
그냥이라는 말은 실상 대체할 수 있는 말과 마음이 있다. 나는 그냥 쿠키를 구웠다고 생각하려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쿠키를 만드는 동안 말하기 싫은 응어리들을 내보내고 싶었다.
외국에는 ‘젤리 샐러드’ 챌린지라는 것이 있다. 학교에 각자 한 종류의 젤리를 가져오고, 본인의 부끄럽거나 생각하기 싫은 일들을 이야기하며 큰 그릇에 젤리를 쏟아내는 것이다. 모두가 젤리를 쏟고 나면, 그것들을 전부 섞어 그릇에 소분해 나누어 먹는 것이다. 이 샐러드의 의미는 힘든 일을 젤리와 함께 털어놓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즐거운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젤리 샐러드는 아니지만, 그릇에 초콜릿을 녹여 넣고, 박력분을 넣어 반죽하고, 엠엔엠즈 초콜릿을 두 봉지나 뜯고 쏟으며 내면에 뭉쳐 있던 스트레스를 내보냈다. 쿠키를 굽는 동안 생각했다. ‘왜 나는 스트레스를 일부러 받고 있는 걸까?’
사람은 굳이 큰 일이 있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출퇴근 시간 서울 2호선 지하철의 번잡함이나, 충분히 잠을 잤다 생각해도 밀려오는 한낮의 피로함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처럼. 나의 경우는 시간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스트레스였다.
하루의 완성을 위해 ‘골든레코즈’의 삼 개월짜리 다이어리를 애용하고 있다. 그러다 분명 이렇게까지 바쁜 사람은 아닐 거란 생각을 했다. 분명 당일의 할 일을 적었음에도 ‘X’ 표시를 할 때가 더러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시간을 더 쪼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쿠키를 굽게 됐다.
구워지는 걸 기다리는 15분 동안 나는 그다지 바쁘지 않았다. 하루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몰랐던 때라면 이때 또 다른 걸 하려 하거나, 다른 일을 하지 못해 조급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이제껏 나는 나 자신을 하루보다 길게 보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말하고 다녔던 건, 내가 헤아리지 못한 전부를 포함했다는 걸 몰랐던 것이었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나를 안다. 내가 속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을. 또, 내 시간이 어떤 행태를 띠고 있는지도. 이제는 조금이나마 내가 더욱 좋고, 내 시간이 더욱 좋다.
생각보다 행복은 단순하다. 행복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나를 복잡하게 생각해 여로를 꼬아 두었기 때문이다. 쿠키 만들기는 사십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행복을 어렵게 잡으려고 하지 말자. 우린 이미 너무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