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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카락스의 영화를 보면 특정한 단어 하나가 계속 떠오른다.

 

‘운명’.

 

그는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났으며, 그중에서도 영화감독의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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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처음 들었던 건 그의 영화 ‘홀리모터스’를 보고 나서이다.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가 어쩌면 그 작품에 담겨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치 흥분감과 싸함 사이의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내게 밀려오는 기분을 느꼈다.

   

영화가 어렵고 난해해도 그 개성 하나가 너무도 달콤하고 강렬해서 결코 끊을 수 없는 감독이 있고 내겐 카락스가 그런 감독 중 하나이다. 가장 최근 작품인 ‘알레고리, 잇츠 낫 미’라는 두 개의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이뤄진 영화를 봤는데 ‘잇츠 낫 미’를 담당한 카락스의 작품을 보고 다시 그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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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오는 알리체 감독의 ‘알레고리’라는 단편이 난해한 게 아니라 깔끔하다 생각하게 되었을 정도로 카락스의 단편은 도입부부터 상당히 이게 뭔가 싶었다.

 

마치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그 흑백의 이미지가 떠오르듯, 녹색과 흑백, 붉은색 등 여러 난해한 색감으로 지지직대듯 촬영된 카락스의 이미지와 카운트되는 그 숫자의 이미지, 그 밖에도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그 수많은 몽타주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듯했다.

   

카락스의 영화 중 결코 쉽다고 느낀 영화가 없지만 이 단편은 그런 난해함, 카락스에 대해 갖고 있던 인상과 그의 스타일을 짧은 시간 안에 마치 다이제스트처럼 총집약 해놓은 영화 같았다.

   

역시나 이 영화에도 그의 페르소나인 드니 라방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영화의 짜임새 때문도 그렇고 그가 한 행세 때문에도 그렇고 도쿄 옴니버스 속 그 괴인의 이미지 혹은 홀리모터스 속 괴인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알리체 감독이 어떤 메시지가 다분한 영화를 만들었다면 카락스 감독은 메시지는 그냥 집어치우고 온갖 떠오르는 무수한 이미지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영화적 서사는 과감히 버리고 거의 실험 영상, 비주얼 아트에 가까운 이미지들로 총망라해 이번 영화를 구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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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하기에는 영화가 담고 있는 의미가 너무도 방대해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저 카락스는 타고난, 그리고 탁월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하긴 힘들어도 그의 사색과 예술관들도 영화에 넌지시 담겨있고, 그런 면에선 하야오 감독이 수많은 은퇴를 번복하며 계속 작품을 내놓았듯이 카락스 감독 역시 그런 예술가의 삶을 마치 숙명처럼 받아들여 계속해서 작품을 의무적으로 혹은 병적으로, 강박적으로 내놓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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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면에서 타고난, 그러나 고달픈 예술가적 이미지가 카락스의 이미지와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너무도 그럴듯하지만 막상 그런 이는 많이 없어서 식상하면서도 귀한 그런 예술가의 이미지를 카락스는 매우 충실히 의도치않게 수행하고 있는 느낌이 연신 들었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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