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첫 만남
설 연휴 전 주였다. 연휴 전 마지막 금요일이었으므로 두 시간 일찍 퇴근했다. 퇴근 후 모임 가는 길에 탄 지하철에서 우연히 영화 <첫 번째 키스>를 마주했다. 모서리형 광고로 영화 예고편을 보았을 때 속으로 '저거다'하고 외쳤다. 일본 로맨스 영화인데 예고편을 맛깔나게 잘 만들어서 바로 캘린더에 개봉일을 기록해두었다.
[2월 26일]
왜인지 수많은 떨림과 울림을 줄 거라고 100% 확신을 주었던 <첫 번째 키스>. 겉처럼 속도 아름답게, 몽환적으로 잘 익었을지 한 달 전부터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인턴 마지막 출근 바로 전날, 연차를 내고 저녁 타임 영화를 보았다. 영화 시간이 다가올수록 기대감은 증폭되었다.
실관람객 평점은 8.38. 필자 평점은 9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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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전형적인 타임슬립 영화
오늘, 내 남편이 죽습니다. 이혼 위기의 칸나(마츠 타카코)는 남편 카케루(마츠무라 호쿠토)를 갑작스런 사고로 잃고 하루 아침에 혼자가 된다.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그녀는 업무에 몰두해야만 하고 늦은 시간, 급한 업무 연락을 받고 다시 출근하던 중 이상한 터널로 향한다. 터널을 지나는 순간 15년 전, 처음 남편을 만난 때로 돌아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 15년 전, 그와 다시 마주친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데…
- <첫 번째 키스> 시놉시스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 츠카하라 아유코 감독의 작품으로, 메가박스 단독 개봉으로 많은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다. 남편 카케루가 이혼 서류를 제출하러가던 퇴근길에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려다 죽자 홀로 남겨진 칸나가 급한 일로 도쿄 수도고속도로를 지나가다가 이상한 터널을 마주하게 된다. 공사중인 터널을 지나치면 15년 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로 돌아가는데, 카케루와 만나지 않는 방법에 대한 경우의 수에 하나씩 도전한다. 나뭇잎을 한 장씩 떼며 '한다 안 한다' 놀이를 하듯, 칸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동원해 카케루를 만나러 간다.
극장에서 두 번 본 영화는 정말 손에 꼽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랬다. 워낙 타임슬립 영화는 시중에 많기 때문에 전체 스토리는 독특하거나 특별하지는 않다. 죽은 남편을 살리기 위해 과거의 같은 날 같은 장소에 가는 아내와, 결국 15년 전의 남편에게 15년 후의 아내를 들켜버리는 설정. 진부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진부함을 잊을 정도로 마음 속에 아른거렸던 장면과 대사들 덕분인지 과몰입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사랑하면 눈이 멀잖아요.
결혼하면 해상도가 올라가요.
4K로 안 좋은 점을 보게 되죠.
- 칸나
특히, 결혼 전과 결혼 후의 극명하게 달라진 두 사람의 삶을, 한껏 설렘에 부풀어 올랐던 커플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부부로 변하게 만든 시간을 조명한다. 행복을 꿈꿨던 이상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함께 하는 시간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 카케루가 새 싱글 침대를 설치했을 때 둘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처음 등장한 집 안은 어땠을까? 정리 정돈과는 거리가 먼, 칸나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하는 듯 물건이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었다. 카케루와 이혼을 앞둔 상태였지만 10년을 함께 했던 상대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찾아온 공허함의 크기는 컸을 것이다.
딜레마
카케루는 유모차에 타고 있던 아기를 구했다. 그의 희생 정신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칸나는 시큰둥했다.
[선로에 떨어진 아기를 구하면 뭐하나. 아내를 혼자 남겨뒀는데.]
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위와 같은 식으로 칸나는 중얼거린다. 딜레마다. 이혼을 앞둔 아내냐, 선로에 떨어진 아기냐. 10년을 함께 살았던 사람이냐, 생판 모르는 남이냐. 카케루가 구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을 텐데, 카케루는 아기를 구했다. 하지만 카케루의 죽음은 아내를 쓸쓸히 남겼다.
영화를 보다 보니, '트롤리 딜레마'가 떠올랐다.
트롤리 딜레마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으로 알려진 딜레마.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가 달리고 있는 레일 위에 5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는데 이들을 살리기 위해선 레일 변환기를 사용해 트롤리방향을 바꾸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다른 레일 위에는 1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다면 트롤리 방향을 바꿀 수 있는가가 주된 논쟁 사항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맥락은 다르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은 같다. 또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면 카케루가 상대를 구하려고 했던 마음은 본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3년 만에 도착한 만두
얼마나 귀하면 만두가 3년이나 걸려 도착할까? 1년 뒤에 도착하는 편지는 들어봤어도, 3년 뒤에 도착한 만두는 처음 들어봤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사소한 '만두' 하나로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대비되면서 칸나를 향한 카케루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만두, 카케루가 주문해 준거야?
- 칸나
칸나가 수십 번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한 결과, 둘의 이혼은 막아졌다. 돈독한 사이로 남을 수 있었다. 비록 카케루는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만 말이다. 세드엔딩이면서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미래가 바뀌기 전에는 칸나가 직접 만두를 주문했더라면, 미래가 바뀐 뒤에는 카케루가 만두를 주문해준다. 그리고 카케루가 죽는 당일, 오븐이 도착했다. 오븐은 고마움, 사랑함, 미안함 등 칸나를 향한 카케루의 복합적인 마음이었다. 칸나 옆에는 늘 카케루가 있을 것임을, 몸은 떠나도 언제나 칸나를 지켜줄 것임을 보여주었다.
진정한 로맨티스트다.
디테일
진부한 영화에도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데는 '디테일'에 있다. 몇 백 번 먹어봤던 짜장면에 또 다시 끌리는 이유와 유사하다.
익숙한 데 맛있어. 전에 먹었던 짜장면이긴 한데 오늘은 또 달라.
만두, 밀푀유, 빙수, 과자, 오븐, [ハルキゲニア(할루시게니아)], 부부 관계, 칸나가 신은 카케루 양말.
*할루시게니아(하루키게니아): 키케루가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하르키게니아는 실제로 존재했던 고생물로, 라틴어의 ‘hallucinari’에서 왔으며, 그 의미는 ‘꿈꾸는 기분(夢見心地)’ 키케루가 휴대폰에 달고 있는 하르키게니아의 액세서리는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필자가 9점을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 다소 뻔한 스토리였던 점에서 1점을 감점했지만, 그 외에 영화 곳곳에 숨겨진 보물과 메시지를 발견해내는 일은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두 번이나 짜장면 맛집을 방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