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초의 사고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7살에 일어났다. 안방에 있는 아빠랑 놀다가 신나서 거실로 뛰쳐나왔는데, 바닥에 깔려있던 카펫을 밟고 그대로 미끄러져 거실 유리문을 뚫고 지나간 것이다. 워낙 어릴 때 일어난 사고라 그날의 일은 딱 두 가지 흐릿한 장면으로만 기억된다. 하나는 놀라서 달려온 엄마에게 안겨서 죽기 싫다고 가족들과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엉엉 울었던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마취 주사를 맞고 이마를 꿰맬 때 옆에 앉아있는 엄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던 순간이다.
난생처음 겪는 공포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잔뜩 얼어있던 나는 어떻게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옆에 앉아있던 엄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챘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했을 엄마가 내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줬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만큼은 무서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야기 속에 빠져들수록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는 흐릿한 감각만 떠오를 뿐이다.
그 뒤로 나는 내 삶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순간마다 이야기 속으로 숨어들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슬픔도 누군가 만들어놓은 허구의 세계 속에선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고 거기서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와 흥미를 가져다주는 오락거리가 아니다. 어떤 이야기는 나를 조각내고, 이어 붙이고, 멈칫하게 하고, 나아가게 하고 마침내 성장시킨다.
영화 더 폴은 때때로 추락하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고 구원해 주는 이야기에 대한 찬사를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한 영화다. 스턴트맨인 로이는 영화 촬영 도중 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쳐 하반신을 못 쓰게 된다. 로이는 여자 주인공 배우와 사귀고 있었는데, 그가 사랑한 여자가 그를 떠나고 남자 배우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로이는 한순간에 일과 사랑 모두 잃게 된다.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로이는 우연히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5살 소녀 알렉산드리아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이용해 자신의 자살에 쓸 모르핀을 구하기로 하고, 알렉산드리아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접근한다. 그렇게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사악한 오디어스 총독에 복수하기 위해 모인 다섯 무법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렉산드리아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로이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 대입시켜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점점 로이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어쩌면 로이의 이야기는 알렉산드리아를 만나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의 이야기는 로이의 암울한 현실과 고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는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지어 나갔지만, 결말만큼은 확실하게 정해놓았다.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기대도 품을 수 없는 주인공이 결국 악당에 굴복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 비극적인 끝을 향해 달려 나가던 로이의 이야기는 알렉산드리아라는 청자가 등장하면서 로이의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의 부탁대로 모르핀을 구하기 위해 총 두 번 시도를 한다. 그런데 두 번째 시도에서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추락한 알렉산드리아는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한다.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더욱 고통스러워하던 로이는 그의 이야기에서 알렉산드리아를 빼려고 하지만, 자꾸만 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채는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등장인물을 한 명씩 죽이며 죽음이라는 결말로 달려 나간다.
이때 로이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은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알렉산드리아가 그의 이야기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자꾸만 등장인물을 죽이는 로이에게 "왜 전부 죽이는 거죠? 왜 모두 죽게 만들어요?"라고 묻는다. "내 이야기이니까."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로이에게 알렉산드리아는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라고 하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라는 걸 일깨워 준다. 로이가 죽기 위해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알렉산드리아라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청자를 만나 그를 살리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영화는 이야기가 창작자의 것만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몰입한 모두의 것이라고 말한다. 로이의 이야기는 로이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해 준 구원의 손길이 되어줬고, 알렉산드리아에게는 지겹고 따분한 병원 생활을 벗어나게 해주는 도피처 역할을 해주었다.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허구일 뿐이지만, 우리는 이야기 하나로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큰 위안과 기쁨을 얻고 매번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투영한 이야기로 결국 자기 자신도 구원받고, 다른 사람에게도 큰 위로를 건넨 로이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빚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의 창작자들을 떠올렸다. 부디 나를 살린 그 이야기들이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기를. 현실의 어디에서도 발붙일 곳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나를 반겨준 이야기를 만들어낸 모든 창작자들이 너무 많이, 오래 아파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