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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창작산실 시즌이다. 창작산실이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대표 지원 사업이다.

 

창작산실 시즌이 되면 가슴이 설렌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신작들은 뭐가 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에 가닿을 수 있을까. 이번에 만나게 된 <저수지의 인어>도 창작산실이 아니었더라면 만날 수 없을 이야기이다.

 

대학로에서 인어라는 소재를 가지고 올라오는 연극을 처음 만났다. 무대 위에 물을 올리기 힘들텐데, 어떻게 인어를 구현할 수 있을까.

 

연극 <저수지의 인어>는 인간성 상실과 그에 따른 허무와 고독을 담담하게 탐구한 작품이다. 극단 '달팽이주파수'가 창단 7주년을 맞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초연한 이 연극은 물리적, 정신적 고립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내면을 인어라는 신비한 상징을 통해 표현한다.

 

<저수지의 인어>는 세 가지 공간을 교차시킨다. 저수지라는 현실적 공간, 아들의 글 속에 등장하는 인어 부자의 신비로운 세계, 그리고 감정의 온기를 잃어버린 온라인 세계다. 철수는 저수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을 쓰는 유일한 열정을 이어가고,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어 부자는 오염된 바다를 떠나 육지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무대 디자인은 물리적 제약을 넘어 가상 공간과 현실을 오가는 독창적인 조명과 영상 프로젝션 기술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몰입감을 더한다.

 

그러나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표현된 대사와 배우가 실제로 발화하는 대사가 일치하지 않는 점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이는 연출 의도에 따른 연극적 실험으로 볼 수 있지만, 관객으로서 그 차이가 극의 몰입도를 방해하는 순간도 있었다. 배우가 대사를 완벽히 암기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배우의 감정에 따라 매번 다른 대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연극만의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연극은 인어 부자를 통해 현대인의 고립과 불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인어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육지로 올라온 존재들이다.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로 관계를 맺으며 펼치는 대화와 행동은, 현대 사회에서 관계 단절과 소통 부재를 겪는 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철수는 자신과 아버지의 모습을 인어 부자에 투영하며,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를 희망을 갈구한다.

 

<저수지의 인어>는 "고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을 직시한다. 동시에 희망을 상징하는 작은 틈을 보여주며,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 현실과 허구, 고립과 연결 사이에서 길을 찾으려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철수의 성장과 내면의 변화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두려움과 맞닿아 있다.

 

90분간 이어지는 공연은 간결한 서사와 상징적 연출을 통해 무겁지만 깊이 있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연극 <저수지의 인어>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다만, 완성도 면에서의 아쉬움과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연극이라는 매체가 가진 생생함과 독창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관람 후에도 남는 여운이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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