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한 달은 ‘새해 체험판’이고 설날에 맞는 새해가 진짜 버전이라는 ‘밈’이 꽤나 유행했다. 그 말이 진짜였을까? 올해 설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양의 눈이 내리며 말 그대로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다. 마치 정말 리셋된 것 처럼.
눈에는 왜 이렇게 가슴이 간질이고 신이 나는 걸까? 곧 검어지고 녹아 질척일 걸 알면서도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뜬다. 아마 모두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기껏해야 차가울 걸 알면서도 눈 한 웅큼 잡아 뭉쳐보고 싶은 마음. 매끈한 눈 도화지 위를 뽀드득뽀드득 걸어보고 싶은 마음. 평소에는 생각도 않지만 눈밭이 된 김에 발라당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 눈은 여느 때나 꺼낼 수 없는 동심을 마음껏 뛰어놀게 한다.
또, 눈이 오면 한껏 긴장했던 어깨가 느슨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조금 더 느리게, 천천히 발을 딛으며 이유도 모른 채 바삐 채근하던 걸음을 쉬게 한다. 원래 있던 길을 덮어 정해진 길이 아닌 곳으로도 가도 괜찮게 한다. 약간의 지각도 눈이라는 거대 변수 앞에서는 하얀 이불을 덮는다.
올해는 여기저기 남겨진 눈사람과 눈오리를 보며 눈이 좋은 이유를 하나 더 느꼈다. 그것들을 보면, 평소에는 쉽게 닿을 수 없던 내 주변 사람들을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내가 남긴 발자국과 나뭇가지 그림으로 나의 안부를 전하고, 오고 가며 보는 눈사람으로 사람들의 안부를 듣는다. ‘다들 눈이 와서 나처럼 신났구나’ , ‘잘 지내고 있구나’를 제각기 모양의 눈사람들로 확인하는 것이 내게는 소소한 행복이다.
모두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만, 아무튼 그래서이지 않을까. 눈이 오면 너 나 할 것 없이 ‘눈 온다!’ 소식을 전하고 들떠하는 건.
앞으로의 겨울에도 눈사람을 만들 만큼만 가끔 눈이 내려줬으면 좋겠다. 모두가 조금은 느슨해지고, 오다가다 만나는 눈사람을 보며 '안녕?' 인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함께 조금씩 더 행복해진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