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크기변환]1280.jpg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뽑으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알쓸신잡"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알쓸신잡 시즌 3. 종영한 지 어언 7년이 넘어 자극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잊힌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해당 프로그램의 영상 클립 본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았다. 많은 “알쓸”시리즈가 출범되었고, 다양한 분야의 출연진이 이목을 이끌지만, 알쓸신잡3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알쓸신잡 시리즈의 공통적인 특징은 여행과 이야기이다. 출연진들은 정해진 여행지에 도착한 이후, 낮 동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이후 다 같이 모여 (주로 저녁 식사 시간) 자신이 어디를 다녀왔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때 도드라지는 프로그램의 특징은 같은 도시에서 여행했음에도 저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역으로 연상되는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지인들만 알고 있는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고,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그 동네를 몸소 체험해 보는 사람도 있다. 출연진의 취향에 따라 시청자들에게 소개되는 장소는 달라지는데, 그들은 자신이 왜 그곳에 방문했는지, 어떤 것을 보고 느꼈는지에 대해 대화하며 이야기꽃을 피워나간다.

 

알쓸신잡 3은 국내 여행을 다녀왔던 이전 시즌과 다르게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 총 3개국을 돌며 수다를 떠는 것이 주를 이루는 알쓸신잡 3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에 알맞게 문화, 역사, 예술, 과학 등 우리가 평소에 알아두면 삶을 사는데 풍족해질 만한 교양을 폭넓게 다룬다.

 

가본 적이 없는 타국에서의 간접적인 경험과 박학다식한 전문가들의 지식 차력 쇼는 내 흥미를 자극했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여행이 재미있어지겠구나, 라고 깨우치게 된 계기였다. 과도한 정보량에 의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화의 흐름은 조금 소란스럽기도 했는데, 지식인들의 고전적이고 지루한 대화에서 탈피하여 직접 객석에 앉아 있는 듯한 현장감을 부여하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특정 주제가 던져지면 출연진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 내에서 최대치를 선보였다.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태어가며 끝없이 이어지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진행되었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주제로의 도달을 이끌었다.

 

 

[크기변환]sgsgagg.JPG

 

 

그중에서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알쓸신잡3에서 가장 돌려보았던 회차였다. 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꽃의 도시라는 피렌체 지명의 유래와 더불어 아름다움을 빛냈다. 특히 피렌체에만 10번 넘게 방문했다는 작가 김영하의 말은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피렌체가 이탈리아 도시 중에 가장 우아하면서 귀엽다고 언급하는 그는 이미 사랑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피렌체만의 매력이 뭐길래 10번 이상의 발걸음을 잡아끈 것일까? 그의 애정어린 마음에 동화되어 나 또한 그 도시와 친분을 쌓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폴리를 떠나 피렌체로 향하게 되었다.

 

 

 

곱창으로 버거로 만들다


 

피렌체는 가죽 산업이 발달했다. 도시 곳곳에서 가죽과 관련된 의류나 지갑, 신발 또는 잡화를 판매하는 상점을 쉽게 볼 수 있고, 번화가 근처에 큰 가죽 시장이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가죽을 얻고 남은 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많은데, 티본 스테이크의 경우 피렌체에서 꼭 먹어보아야 하는 음식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고기와 가죽을 얻고 남은 부산물 또한 버리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곱창 버거이다.

 

 

[크기변환]ddddsfsfs.JPG

 

 

곱창을 패티 대신 사용해서 맛을 냈다는 곱창 버거는 방송 화면만 보고서는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소 곱창을 주로 구워 먹거나, 볶음 또는 전골로 요리해 강한 향신료로 잡내를 없애는 우리나라와 달리 빵 사이에 끼워 먹는다는 것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꼭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워낙 식재료를 가리지 않는 입맛이라, 크게 호불호를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여행을 가야만 특이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음식이기 때문에 체험해 보고 싶다는 목적이 컸다. 따라서 곱창 버거는 그날의 점심 식사 메뉴로 호기롭게 선정되었다.

 

주변에서 곱창 버거를 파는 곳을 물색해 보았을 때 눈에 들어온 곳은 다름 아닌 시장이었다. 도심 한 가운데에 위치한 시장의 몇몇 가게에서 곱창 버거를 판매했는데, 이탈리아에 와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음식을 먹었다. 바로 포장된 버거를 받아 가판대에서 서서 먹는 것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버거를 받은 사람들은 바에 옹기종기 모였다. 마치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는 모습과도 비슷했는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식을 먹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낯선 비주얼과 냄새를 뒤로 하고 한 입을 베어 물자 겉면의 빵이 바삭하게 쪼개졌다. 패티를 대신한 곱창은 매우 부드러웠는데, 마치 케밥 속의 고기처럼 얇게 저며져 있었다. 곱창만 먹으면 느끼할 것을 대비하여 뿌려준 매운 소스는 곱창 버거의 킥이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0131_125339511.jpg

 

 

그 자리에서 3일은 굶은 것처럼 버거를 해치웠고, 뒤늦게 너무 허겁지겁 먹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말 그대로 버거를 해치우고 있었다. 흐뭇한 얼굴로 먹은 자리를 치우고 미끌거리는 시장 바닥을 조심스럽게 걸어 나갔다. 저렴한 가격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포만감이 몰려왔다.

 

 

 

피렌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피렌체는 다른 도시에 비하여 규모가 작았다. 관광지라고 알려진 곳들은 대체로 두오모 주변에 존재했고, 아무리 멀더라도 도보 30분을 넘기지 않아 뚜벅이들에게 최적인 여행지였다. 젤라또 하나를 들고 의식 없이 발이 가는 대로 걷다 보면 어느샌가 두오모 앞에 도착해 있었다. 화려한 성당의 외벽과 다르게 붉은 벽돌을 둘러쌓아 만든 두오모의 돔은 거대한 규모에 비해 수수한 멋이 있다. 머리가 몹시 큰 돔은 자꾸만 눈길을 끌었고,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는데 베키오 궁전의 전망대 위에 오르고 나서야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0131_125949347.jpg

 

 

피렌체에는 두오모와 베키오 궁전을 제외하고는 10층을 넘는 고층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고만고만한 키를 가지고 대열을 맞춰 정돈되어 있다. 엇비슷한 키에 빨간 지붕으로 맞춘 건물들은 마치 군중처럼 느껴졌는데, 그 가운데에 우뚝 솟은 두오모의 돔과 조토의 종탑이 더욱 돋보였다. 달걀의 윗부분처럼 완벽한 곡선을 과시하는 돔과 그 옆의 각진 종탑은 비대칭적으로 아름다웠다. 탁 트인 피렌체의 전경은 근경에서 원경으로 시선을 옮기게 만들었고, 곧이어 저 멀리 서 있는 산과 언덕배기에 위치한 이름 모를 마을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건물들은 하나하나가 눈에 띄기보다 전체적인 풍경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도시라는 차가운 이름보다도 동네라는 정겨운 별명이 더 어울렸다.

 

이처럼 르네상스 시대의 건물이 아직 건재한 것은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변함없이 자리하는 거리 곳곳의 메디치 가문의 흔적이나, 말을 묶어두었던 철로 만든 고리들, 그라피티 없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건물의 벽과 오래된 대문은 피렌체 시민들의 자부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피렌체는 커다란 박물관 같았다. 선조들이 창조해 낸 문화와 예술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마음으로 모두가 조금씩 불편함을 감내하는 분위기에서는 따뜻함과 인정이 느껴졌다. 진정으로 마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상냥하고 다정하게


 

유럽 여행을 다니며 여러 도시를 다녀봤지만, 그중에서도 피렌체는 예술과 낭만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거리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가죽 공방, 세계적으로 저명한 우피치 미술관과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도 분명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번에는 피렌체의 버스킹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여행을 다니며 느낀 것 중 하나는 버스킹에 우호적인 도시가 관광객에게도 상냥하다는 것이었다. 많은 여행자가 그러하듯이 관광지를 구경하고 티본스테이크 또는 파스타를 먹는 것은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차지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부른 배를 잠재우기 위해 밤길을 거닐곤 했는데, 산책하다 보면 많은 뮤지션들의 버스킹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일정 거리마다 존재하던 길 위의 음악가들은 마치 반경 10m 내에서 자신만의 테마곡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음악에 열중한 이들에게 길을 지나던 행인들은 무관심 대신 열렬한 호응과 박수로 그들을 대했는데, 이 모습이야말로 공연자와 관람자가 소통하는 건강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0131_130446146.jpg

 

 

구경하던 관객들은 흥이 오르면 무대에 들어가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대부분의 행인이 나와 같은 처지의 관광객이라는 것을 유념하면 이것이야말로 “We are the world”였다. 나 또한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순간으로 들어가고 싶어져 모르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광장을 걸으며 노래를 불렀다. 음악은 무르익고, 밤은 깊어지며 서로를 모르는 우리는 따뜻한 손을 맞잡은 채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오가는 사람들로 한없이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도시에서 기대해 보지 못한 정다움이었다. 어느덧 공연이 끝나자 너나 할 것 없이 손뼉을 치며 이 밤을 축하했다. 동화 속의 한 장면과도 같던 그날은 피렌체로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하게끔 만들었다.

 

 

 

작별을 고하며


 

피렌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되었다. 발걸음이 닿는 족족 문화와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는 여유로움과 낭만이 있었고, 겨울이라는 삭막한 계절에도 불구하고 풍요가 깃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도시는 상냥했다. “꽃 피는 마을”이라는 뜻의 Florentia에서 유래된 피렌체는 그야말로 관념적인 의미에서 시들지 않는 꽃이 영원하게 피워진 곳이었다. 시간의 순서를 되돌려 과거로의 여행에 초대하는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영영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그 속에서 스마트폰, SNS, AI나 인공지능은 의미를 잃어버렸다. 오로지 과거와 현재의 사람이 교차하고 교감할 뿐인 피렌체는 인간을 위하는 사회로의 격동이었고, 인본주의라는 르네상스 사상의 출발지였다.

 

이제서야 피렌체에 10번 이상 와봤다는 그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이 도시에 대한 갈망은 한 번 스쳐 지나간 것으로 턱없이 부족했고, 두 번으로도 완벽하게 충족되지 못할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자의 발걸음을 붙잡고 자꾸만 끌어들이는 피렌체에게는 소소한 마법 같은 게 존재했다. “언젠가 다시 올 거지? 믿고 있어.” 하고 덤덤하게 말을 건네는 듯한. 그 마지막 모습에 몇 년이 지나 바다와 산을 건너서라도 다시금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지나고 드디어 피렌체로 돌아왔을 때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오가는 사람들을 상냥하게 맞이하는 붉은 지붕과 담벼락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컬쳐리스트 조유진.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