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일본 소년만화 잡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소년 점프'는 말 그대로 호황을 누렸다. 현재까지도 최고 인기작의 위치에서 연재를 지속하고 있는 '원피스'(1997년 연재 시작)를 필두로, '헌터x헌터'(1998년), '나루토'(1999년), '블리치'(2001년)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도 많이 회자하는 인기 작품들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앞서 언급한 전성기의 작품 중 '나루토'와 '블리치' 등은 2010년대에 이미 완결이 났으나 지금까지도 일본 현지는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나루토'의 경우 작년에 서울에서 애니메이션 방영 20주년 기념 전시회가 진행되었으며, '블리치' 역시 올해 서울에서 애니메이션 20주년 기념 전시회를 앞두고 있다.

 

상당한 세월이 지났어도 그 당시의 작품을 추억하고 사랑하는 팬들이 아직도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FMA_S_POSTER_1-1.jpg

 

 

2001년에 연재를 시작한 '강철의 연금술사' (이후 강철) 역시 이 시기의 작품으로, 소년 점프의 연재작은 아니었지만 큰 인기를 누렸다. 그렇기에 만화 연재 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일본,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을 거쳐 한국에 상륙하는 것을 많은 팬들이 기대한 바 있다. '나루토'나 '블리치'와는 다르게 애니메이션이 아닌 만화 원작 연재 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인 만큼, 원작을 재미있게 본 나로서도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전시의 시작은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다. '강철'의 주인공인 엘릭 형제가 모험을 떠나게 되는 이유인 인체 연성을 한 작중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었다. 어두운 공간 안에서 조명을 통해 재현된 연성진은 전시를 찾은 팬들이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만나러 왔다는 실감을 하고 이후 전시에 몰입할 수 있게끔 하는 최고의 오프닝이었다.

 

 

강철의연금술사전 07.JPG

 

 

이후 전시의 대부분은 연재가 진행된 시간 순서로 연재 원화(복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본어로 대사가 적혀 있는 원화 밑에 작게 한글 번역본을 부착해 두어 팬들이 그 장면을 더 쉽게 추억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세심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사이사이에는 캐릭터들이 쓰는 소품, 무기 등을 실물 크기로 제작하여 흥미를 높였다.

 

장면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당시 독자로서 느꼈던 감상이 되살아나는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강철의연금술사전 06.JPG

 

 

이렇게 전체적으로 추억을 되새기며 잔잔하게 흘러가는 전시였지만, 중간중간 템포 조절을 위해 관람자의 눈을 사로잡는 구간도 존재했다.

 

주요 등장 인물(엘릭 형제, 로이 머스탱, 리자 호크아이)의 전투 장면(원화)을 화려하게 편집하여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재탄생시키고 성우들의 목소리까지 덧입혔다. 작품의 결말 부에서 에드워드 엘릭이 찾아가게 되는 '진리의 문' 장면 역시 동일한 방법을 활용해 관람자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강철의연금술사전 05.JPG

 

 

게다가 전시를 위해 공개된 다양한 원화 일러스트에는 일러스트마다 원작 작가의 코멘트를 덧붙여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렸을 당시의 에피소드, 그림을 그리며 느꼈던 감상 등이 짧지만 유쾌하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전시의 포인트라고 느껴질 만큼 가장 즐거웠던 부분이었다. 전시를 보는 중간중간 마련된 스탬프 존에서 입장 시 받은 판에 주요 캐릭터 모양의 스탬프를 찍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전시를 모두 관람한 뒤 출구를 나설 때의 감상을 돌이켜 보면, 마치 '강철'을 짧지만 밀도 있게 한 번 더 복습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20주년 전시라는 이름에 걸맞은 화려함도 물론 있었지만, 그보다도 원작을 사랑한 팬들이 원작을 기분 좋게 추억하고 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 느낌이 더 컸다. 원작의 콘텐츠를 십분 활용하면서, 팬들을 충분히 존중했다는 느낌이 들어 만족스러웠다.

 

'강철'을 사랑했던 사람,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원작을 따뜻하게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할 본 전시는 3월 3일까지 홍대 덕스(DUEX)에서 진행된다.

 

 

 

유지현.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