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일 축하합니다 - 뮤지컬 틱틱붐
-
스무 살 때는 서른 살이 너무 까마득한 나이일 것 같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앞자리가 바뀌는 게 그리 먼 얘기는 아닌 것 같아 두려워지기도 한다. 나이를 먹는 게 두려운 이유는 나의 삶이 그것에 맞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다. 과연 나는 나이에 맞게 경력을 쌓으며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나이만 먹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리고 여기, 남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 사는 남자가 있다. 뮤지컬 <틱틱붐>은 서른을 앞두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예술가 ‘존’의 삶을 그려냈다.
틱, (Tick,)
작품의 주인공인 ‘존’은 서른 번째 생일을 앞둔 작곡가 지망생이다. 화려한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그는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별다른 성과 없는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의 막역한 친구인 ‘마이클’은 예술의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해 사업가로 성공한다. 그가 가진 외제차와 명품은 녹록지 못한 현실을 살아가는 존에게 비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설상가상 예술가로서의 삶을 꿈꾸며 함께 고민했던 연인 ‘수잔’과도 갈등을 겪는 그의 생활은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그에게는 늘 환청과 같은 ‘틱틱’소리가 들린다. 마치 시계가 똑딱똑딱 흘러가는 소리인 것 같기도, 폭탄이 터지기 직전의 소리인 것 같기도 하다. 매일 같이 들리는 틱틱 소리에 존은 괴롭기만 하다.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 존의 성과는 이룬 것 하나 없기에 불안하다. ‘시간을 멈추고 시계를 잡아라’라는 그의 외침은 타들어 가는 마음을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한다.
‘불행은 나의 고통을 세는 것이 아닌, 남의 복을 세는 데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힘든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 존이 마이클의 화려한 차와 멋있는 사업가로서의 삶을 보며 자신의 삶을 비관했듯이,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나 동료가 자신보다 앞서나가는 것을 볼 때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이론상으로는 비교하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백 번이고 익혔는데도 막상 실제로 맞닥뜨리면 왠지 모를 열등감으로 피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매번 느낀다.
끊임없이 들리는 틱틱대는 소리가 이제는 거슬려 미쳐버릴 것 같다는 존은 언제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을까.
틱... (Tick...)
그래도 존에게는 한 가지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
그가 5년 동안 준비한 워크숍 “슈퍼비아”가 성공하면 그는 작곡가로서 인정을 받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 역시 절대 쉽지 않다. 자신의 워크숍 제작에 도움을 주었던 제작자는 자신의 공연이 끝나고 어떤 말도 없이 일찍 나가버렸고, 연인 수잔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다른 길을 택하며 존과 갈등한다. 모든 게 완벽하리라 생각했던 친구 마이클은 치료가 어려운 병에 걸려 있었다. 틱틱 소리는 더욱 커져 존의 불안과 고통을 가중시킨다.
아무리 생각해도 온전치 못한 존의 삶이 그럼에도 어딘가 대단해 보이는 건 그가 자신의 목표를 절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서 취업하라는 아버지의 재촉과 이제 지쳤다는 수잔의 한숨에도, 큰 병에 걸린 친구의 소식에 좌절했음에도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더 한다고 뭐가 나아질지, 과연 그 끝에 원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도 그는 계속 시도한다는 것이다. 외부의 상황과 조건이 그를 흔들어서 마음이 괴롭다가도 이내 자신의 꿈을 기억하고 되돌아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명확한 신념과 용기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다고 해서 후회가 없을까. 진짜 순탄하게 일이 풀리기만 할까. 그건 또 아닐 것이다. 밝고 휘황찬란하게 보였던 마이클의 삶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잔의 뒷모습에서도 남아있는 슬픔과 씁쓸함은, 인생의 어떤 형태에서든 제각각의 고민은 늘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가는 것밖에는 없다. 지금의 내가 가는 길은 그때의 내가 선택한 가장 나은 방법이었을 테니까.
붐! (Boom!)
시간은 계속 흐르고 흘러 이제 존은 서른 살의 생일을 맞이했다.
늘 불안해 보였던 존의 표정은 막상 생일을 맞이하니 한결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친구들과 가족의 축하 속에서도 알 수 없는 건 그의 성공 여부이다. 작품은 등장인물의 대사나 넘버 어디에서도 존의 목표에 관한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확실한 건 그는 서른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극의 마지막에서는 틱틱 소리가 들리진 않는다.
다만 마지막 뮤지컬 넘버 “LOUDER THAN WORDS”는 그의 삶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왜 아플 걸 알면서도 불꽃에 손을 대고, 적당히 살아도 되는데 항상 최선을 다하는지를 묻는 가사에는 안전한 새장을 택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높이 날아오를 새의 모습이 담겨있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생일이 다가오면 암묵적으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지만, 누구도 그런 불안감을 꺼내진 않는다. 외려 생일 축하한다는 경쾌한 말과 함께 그날 하루를 진심으로 즐기길 바란다. 나이를 먹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삶을 기대해 볼 여지가 있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생일에 건네는 풍부한 덕담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리하여 극의 마지막 존이 모두가 아는 생일 축하 곡을 어딘가 서툴게 연주한 이후, 붐! 하는 효과음이 터지는 건, 비록 미숙할지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과 용기를 연상케 한다.
뮤지컬 <틱틱붐>은 서른이 다가오는 이의 삶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이는 단순히 서른을 목전에 둔 이에게만 국한되는 내용은 아니다. 똑같은 교실에서 비슷한 수업을 들으며 생활했던 십 대를 지나 이제 어른이 된 건지 의문이 드는 스무 살도, 또 다른 상황과 앞날에 직면한 40대와 50대 등도 모두 한 치 앞을 모를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을 것이다. 그래서 때론 막막하고 불안하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계속 흘러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내 맞이하게 될 시작점에서 앞으로 나아갈 그들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지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