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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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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두 달동안 필자는 아도르노의 '숭고론'의 세부적인 골자를 주차 별로 설명하였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아도르노의 숭고에 대한 긴 여정을 하나의 글로 총 정리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칸트의 구성적 주체와 숭고 개념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은 인간 주체의 인식 능력의 검토라는 공통의 기반 하에서 주체-객체 상호적 구성 모델을 발전적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주장하고자 했다. 아도르노는 두 논의에서 모두 칸트를 경유한다. 필자는 이를 바탕으로, 칸트의 구성적 주체 이념이 칸트의 숭고 모델에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아도르노의 논의를 통해 도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구성적 주체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과 재구성은 칸트의 숭고에 대한 비판 및 재구성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1) 구성적 주체 논의: 아도르노에 따르면, 칸트에서부터 시작되어 헤겔에 이르러 절대화된, 구성력을 가진 것으로서 객체의 인식 조건으로 자리하는 그러한 주체는 '구성적 주체'라고 칭해진다. 이때 필자는 이 '구성적 주체' 개념에는, 그러한 주체를 발생하게 만드는 실제적인 조건-사회·역사적 조건 및 심리·생리학적 조건-이 은폐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나아가 실제적인 발생적 조건의 은폐로 인해 실체화된 구성적 주체는 객체로부터 도출해낸 인식의 정당성을 보편타당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에 대해 필자는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중심으로, 인식이 보편타당함을 주장하는 테제에는 사실 ‘세 겹의 동일성 원리’가 그 발생적 근원을 은폐한 채 보편타당한 것으로 전제되고 있다는 점을 밝혀낸다. 이로부터 필자는 아도르노가 구성적 주체의 테제에 전제된 여러 발생적 조건을 검토함으로써, 주체의 실체화가 낳는 지배의 역설을 드러내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이러한 구성적 주체 비판 작업은 그 주체의 폐기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주체에게 자신의 실제적 발생 조건을 일깨움으로써, 주체의 질적 변화 및 주체-객체 관계 재정립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음을 필자는 강조한다.

 

2) 숭고 논의: 필자는 칸트가 숭고를 언급하고 있는 『판단력 비판』에서의 논의를 다루었다. 칸트에게서 숭고는 모두 외적인 대상으로부터 촉발되어 주체가 자신 내부의 인식 능력인 '이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종의 자기 고양의 경험이다. 이때 필자는 아도르노가 숭고 논의를 전개하는 두 가지 특유한 서술 방식에 주목한다. 두 방식의 공통점은 모두 칸트의 숭고를 경유하는데, 이를 통해 아도르노는 칸트의 숭고가 부정적(negative)으로 진리가 드러나도록 한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첫째로, 숭고는 미와의 관련 속에서 설명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미 내부에는 자신의 영역을 굳건히 정립하기 위해 두려운 것을 자신의 영역 바깥으로 배제하는 역학이 존재하여 왔다. 따라서 미의 영역은 평화롭기보다는 오히려 긴장 관계 속에 있는데, 그에 따르면 이러한 사실이 역설적으로 칸트의 숭고 모델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숭고는 자연미 및 역사성 개념과 관련되어 다뤄진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자연미 개념에는, 인간이 자연에 지배당했으나 자연과 자신을 분리함으로써 더 이상 자연이 자신에게 위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간 스스로가 깨달았다는 점이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자연미 개념은 그것의 핵심에서부터 역사적인 개념이다. 이때 마찬가지로, 그러한 사실이 칸트의 숭고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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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 및 『미학 강의 Ⅰ』을 중심으로, 칸트의 숭고에 대한 아도르노의 분석, 비판 그리고 재구성 방식을 다루었다. 아도르노는 칸트의 두 가지 숭고 중, 역학적 숭고를 중점적으로 비판한다. 아도르노는 칸트의 숭고가 위력을 가진 대상 앞에서 맞설 수 있는 저항의 계기를 강조했다는 점에서는 받아들이지만, 그 모델에서는 '실체화된 주체 이념'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아도르노는 진정한 숭고란 이중의 차원-즉, 주관과 객관의 차원-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칸트의 숭고가 주관에만 귀속되었던 것과 달리, 아도르노는 숭고가 예술작품의 객관적 속성이기도 함을 주장하면서 숭고의 객관적 지점을 보존하고자 했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예술은 자신의 개념상 과정적으로 형성되어 왔으면서도 계속 형성되어 가는 어떠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변화되는 것을 자신의 객관적 특징으로 가진다.

 

그런데 이때 그러한 양상은 현대 예술작품에서 급진화된다. 즉, 현대 예술에서는 정신이 자신의 영역을 정립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과 반대되는) 감각적 계기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도르노는 칸트의 모델에서 소극적으로 규정되었던, 대상의 주체 촉발 계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규정한다. 즉, 객체의 주체 구성적 계기를 주체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숭고에 대한 아도르노의 재구성 방식을 해석하는 두 가지 방향의 선행 연구를 설명하였다. 그로부터 필자는 두 가지 방향의 해석 방식이 가진 각각의 한계를 지적한 뒤, 앞에서 논의한 '주체-객체 상호 구성적 모델 틀'에 근거하여 아도르노의 숭고를 해석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즉, 필자는 아도르노가 인식론적 차원에서 논의한 주체-객체 관계 재정립의 가능성이 현실에 존재하는 예술의 영역에서 이미 구현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그러한 관계 맺음의 가능성을 그가 제시하고자 했다는 것임을 필자는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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