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가난한 국가의 모습을 상상했을 때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몸의 절반만 한 식수통을 어깨에 짊어지고 메마른 땅을 끝없이 걷는 여성,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 배가 볼록하게 나온 갓난아기, 허물어져 가는 움막의 모습…
마찬가지로, 여성이나 노인, 아동 등 특정 집단을 떠올렸을 때 방송에서 이들에게 자연스레 기대하는 특수한 ‘역할’이 있다. 프로그램 제작엔 문법이 있다. 방송은 우리와 남을 구별 짓는 ‘타자화’ 방식으로 내용을 구성한다.
‘타자화’는 특히 주류집단이 내부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비주류 집단에 행하는 것이다. 미디어학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더 우월하다는 선전, 프로파간다에 그 연원을 두고 있음을 고려했을 때, 방송이 역사적으로 ‘타자화’ 방식을 통해 내용을 구성해 왔음을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다.
방송 프로그램은 특정 집단에 특정 역할을 부여하며 이를 고착화한다. 시청자는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를 관념화한다. 이렇게 생산된 관념은 미디어에서 재사용된다. 미디어와 현실사회는 상호작용 하며 허상의 관념이 마치 실재하는 사실인 것처럼 부풀려간다.
미디어가 인식에 미치는 영향력은 과대평가 된 것이 아니다.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묘사를 이유로 중국동포가 연대하여 영화배급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법원이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는 미디어의 표현 방식이 대중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은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은 ‘타자화’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장애를 희화화해 웃음거리로 소비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수동적 존재로 묘사하는 등 미디어 속 장애인은 철저히 비장애인의 편협한 시각에서 그려져 왔다. 우리나라 인구의 5%가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나 예능 등 방송에선 대개 이들이 없는 존재나 객체로 다뤄졌다. 장애인 관련 콘텐츠는 장애인을 불쌍한 존재, 혹은 감동을 주는 존재로 기능하게 하여 ‘공익’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되어 왔다.
그러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다르다. 그동안 주변적으로 그려졌던 장애인을 극의 중심으로 끌고 왔다.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여겨졌던 장애인이 사회에서 독립적인 직업인으로서 당당히 자리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드라마는 시청자가 은연중에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음을 깨우치게 한다.
드라마 초반에선 주인공 ‘영우’가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사회적 인식에 부딪히는 모습들이 등장한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했음에도 입사에 어려움을 겪고, 로펌 의뢰인은 ‘영우’가 담당 변호사가 되는 것을 꺼린다. 만연한 고정관념을 미화 없이 드러냄으로써 우리 사회가 얼마나 편협한 사고로 장애인을 바라봤는지 낱낱이 고발한다. ‘영우’는 편견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해결하며 성장한다. 이처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그동안 미디어가 관습적으로 장애인을 타자화했음을 드러내며 시청자에게 인식 전환의 기회를 마련했다.
장애인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미디어는 철저히 강자의 시각에서 제작되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시간적 제약이 있는 제작 환경에서 고정관념을 활용하는 것이 쉽고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편견은 재생산되어 왔다.
때문에 프로그램 제작에 앞서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차별과 편견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드라마 전반에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이들의 삶을 철저히 조사하여 현실의 모습과 흡사하게 극의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들의 언어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드라마가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을 그대로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현실을 왜곡해 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작자는 미디어로 형성된 고정관념은 미디어로 해결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올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콘텐츠가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