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나 방학 시즌에 맞춰 항상 여행을 떠났다. 근래 몇 번 해외로 떠났던 것에 그새 익숙해졌는지 이번 겨울 여행은 날짜를 정하는 것부터 색달랐다. 빠르게 일정을 확인한 후 그에 맞추어 숙소를 찾아보았다. 후기가 괜찮았고 사진으로 보기에도 숙소가 참 예뻤다. ‘전통숙소’라고 불리며 그때의 한옥을 담아내고 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 과거의 향을 머금은 듯한 여행의 시작점이었다.
우리가 정한 국내 여행지는 전주였다. 어릴 적 당일치기 여행으로 찾았던 곳을 다시 한번 가보고자 했다. 버스를 타고 갔던 그때와는 달리 기차를 택했다. 이미 무거운 짐가방에 책 하나를 더 챙겨 넣기도 했다. 달리는 기차에서 책을 읽는 것,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노래를 듣는 것은 나름의 낭만이었다. 유달리 몸과 마음이 다칠 일이 많았던 올해의 끝자락만큼은 그 낭만으로 채워지길 바랐다.
전주역에 하차했다. 기와집처럼 생긴 역사의 외관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우리는 가까운 곳으로 이동해 점심을 해결하고 미리 찾아두었던 카페로 향했다.

한옥 카페 ‘행원’에 도착했다. 누군가의 집에 방문한 것처럼 신발을 벗고 입장했다. 마치 넓은 대청마루에 오르기 위해 발을 디디는 듯했다. 왠지 덜컹거리는 듯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중앙에는 큰 목제 테이블과 의자 여럿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그보다는 창가 자리에 택했다. 따사로운 햇볕이 자리를 데우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중앙 정원을 내다볼 수 있었는데, 겨울인 탓에 푸릇하지는 않아도 개방감을 주는 작은 정원이었다. 눈이 내린 새하얀 풍경이나 비가 올 때의 운치, 여름의 녹음이 모두 궁금해지는 곳이었다.
무겁게 깔리는 찬 공기가 발을 식힐 때쯤 주문한 음료가 모두 준비되었다. 흑임자 라떼에 고명처럼 올라간 떡을 씹으니 특유의 고요함에 즐거움을 한껏 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왁자지껄해야만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밀린 대화를 나누다가도 음료를 마시거나 공간을 보면서 말을 삼켰다. 그렇게 드문드문 찾아오는 정적을 그 누구도 일부러 깨지 않았다. 합의된 정적 속에서 모두가 고요함과 안정을 누렸다.

다음은 독립서점인 ‘카프카’로 향했다. 겨울철 난방으로 인해 건조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발을 딛자마자 목제 바닥이 삐걱 소리를 냈다. 오래전 외가에 방문했을 때처럼, 할머니가 반갑게 안아주던 때가 생각나는 따뜻하고 정겨운 소리였다. 외갓집에 이어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사용하던 교실의 바닥이 생각나기도 했다. 멋모르던 그때는 교실 바닥에 앉아 공기놀이를 했고 그러다 손바닥에 가시가 박혀 고생했었던 기억이 있다. 반질반질 윤기 나는 목제 바닥이 아닌 이곳저곳 긁혀 생활감이 남은 바닥이었다. 그 바닥이 내는 소리에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가득 밀려왔다. 추억에 잠긴 채 여유롭게 서점을 둘러보았고 시집 한 권을 구매하며 새로운 추억을 쌓았다.

해가 지고 캄캄해진 골목 끝에 다다르자 마침내 우리의 숙소인 ‘늦잠’이 보였다. 녹이 슨 경첩에서 나는 소리가 조용한 골목에 울렸다. 대문을 열자, 돌과 자갈로 채워진 작은 마당이 보였다. 외풍이 걱정될 만큼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 통창 덕분에 내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따뜻한 색의 조명을 켜둔 내부는 현대식 한옥에 걸맞은 인테리어였다. 이내 디딤돌에 신발을 벗어놓고 마룻바닥을 밟았고 여전한 한기에 발가락을 오므렸다.
좁은 마루를 지나 유리문을 열자 따뜻한 열기가 발에 닿았다. 그 보일러의 열기가 마치 온돌을 놓은 듯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소파에 눕자, 천장의 서까래가 보였다. 익숙지 않은 풍경에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했을 것들이 이토록 낯설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과거가 현재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옛것의 정취에 한껏 젖어 든 것만 같았다. 전통적인 인테리어 요소를 계승했다는 숙소의 설명문이 떠올랐다. 시간이 멈춘 듯한 한옥에서 과거이자 현재의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흐르는 시간은 멈출 수 없다. 그러니 그 시간을 최대한 붙잡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미래에서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도록 그 현재를 온전히 즐겨야 한다. 대화가 끊어져도 좋으니 마음껏 그 시간을 즐기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추억하는 방법도 있다. 과거의 시간을 닮은 현재를 찾아 그때 그 시간을 추억하면 된다. 그때를 닮은 장소와 그 장소를 이루는 소리와 냄새는 과거를 다시금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때를 보존하는 수밖에 없다. 미래의 본인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도록 과거를 계승하며 보존하면 된다. 흐르는 시간을 막아설 수는 없어도 한 번쯤은 붙잡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찰나다. 가끔 지나간 그 찰나가 그리워진다면 시간을 붙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