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 피드백 모임] 하늘의 별 따기보다 귀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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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시나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글쓰기를 더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좋아하는 동시에, 더 잘 쓰고 싶어서 집 밖을 나서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와 같은 그런 사람들이죠.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감각한 걸 밖으로 끄집어내야만 살아 숨 쉬는 걸 확신하는 그런 사람들이죠.
실은 잘하고 좋아한다는 표현만으로 우리의 진심을 드러내기는 너무 납작해요. 가끔씩 우리는 이 글에 싫증이 날 때도 있고요, 때로 쓰기 싫어서 덮어버리고 싶기도 하고요, 더 쓸 수 있는데 ‘그냥 이 정도면 됐지’ 하면서 타협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분명한 건 있어요. 적어도 글쓰기는 멈출 마음들은 눈곱만큼도 없죠.
사실 살아가면서 이렇게 부지런히 글 쓰는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요. 10초 만에 번뜩이며 도파민을 절여버리는 짧은 영상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시대가 아니겠어요? 신문이나 책을 통해 교양을 쌓던 과거의 빛은 어느새 한 세기 전의 일만 같아요. 5초짜리 영상 하나도 지루하면 스크롤을 넘겨버리는 이 시대. 기나긴 몇 페이지가 넘어가는 글을 쓰고 읽는 건,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단언컨대 하늘의 별 따기가 차라리 식은 죽 먹기죠.
그래서 글 쓰는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면 마치 오래전 헤어진 동족을 만난 느낌이 들어요. 난생처음 보는데 분명 어디서 만난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분명 다른 색깔을 가지면서도 비슷한 온도의 눈빛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어요.
특히 어떨 때 알아볼 수 있냐면요, 아주 열과 성을 다해서 만든 내 보물 같은 작품을 보여줄 때요. 여러분 혹시 장인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어떤 분야의 장인이든지 상관없어요. 뜨개질이든, 도자기든, 인형이든, 음식이든요. 그걸 만들어서 보여주는 사람 눈빛을 본 적이 있나요?
그들은 하나밖에 없는 자기 작품을 소중하게 다루면서요, 엄청 설명하고 싶어해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유심히 살펴보죠. 좋아하나, 뜨뜻미지근한가, 아니면 심지어 별로인가? 떨리는 마음을 뒤로 숨기고 최대한 차분한 톤 앤 매너로 상대의 반응을 살펴요. 그러면 반 이상의 마음은 이런 농도로 가득 차요. 상대가 어떤 반응과 피드백을 주든 일단 겸허히 받아들이자. 혹은 내가 더 보충 설명할 것이 있다면 이 작품의 의도는 어떤 것이고, 이래서 이런 모습이 나왔다고 오해 없이 풀어서 이야기하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내 고유의 색깔을 잃지는 말자.
아트인사이트 피드백 모임에서 만난 우리들은 그 장인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이었어요. 숨이 벅찰 정도로 바쁜 일상을 살다가도 서로 앞에 다가설 때면 이내 달라졌죠. 다른 어느 모임에서도 쉽게 나누지 못하는 글과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글의 주제 선정에 대하여, 더 매력적이고 시선을 끄는 제목을 짓는 법에 대하여, 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에 대하여, 문단의 양과 나누기에 대하여, 처음과 마지막 마무리에서 여운을 주는 말들에 대하여. 그리고, 글에서는 끝내 말하지 못한 그 이면의 삶과 드라마들을 그제야 풀어냈죠. 글이라는 무대 뒤편의 이야기들도 곧장 쏟아져 나왔어요.
아마 더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면 이렇게까지 깊고 구체적인 상호작용을 얻지는 못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글을 써본 사람의 ‘점(dot)’이 필요하거든요. 우리의 듬성듬성한 글을 끝내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점'들로 촘촘하게 메꿔야 하죠.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같은 길 위에 놓인 ‘점’들을 하나씩 밟아가고 있을지 몰라요. 글을 쓰기 전의 고뇌, 글을 쓰면서의 고충과 고민, 글을 쓰고 나서의 후회와 성취, 그리고 또다시 반복되는 다짐까지. 이 모든 여정의 굴곡은 마치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자취와 같은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모두 같은 점들을 밟아왔고, 앞으로도 든든한 발자취를 발판 삼아 계속 나아갈 거예요.
너무나 경이롭지 않나요. 나 홀로 외로운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저 멀리서 나와 같은 모양의 경로를 가고 있는 사람을 만난 거죠.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아요. 우리 만남의 시작과 끝은 정해져 있지만 이제는 확신할 수 있거든요. 적어도 우리들은, 이제 저 멀리서 서로의 이름 석 자가 보일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요. 그리고 궁금해할 거예요. 그때 우리가 이야기했던 많은 다짐과 결심들이 어떤 빛깔로 새롭게 탄생했을지.
행운이었어요. 머나먼 시간 전부터 예정된 만남이 결국 이뤄졌으니까요. 헤매면서, 눈보라와 바람을 맞아도 꿋꿋이 글을 적어내려온 우리들이 결국 만났잖아요. 이제 각자의 길로 씩씩하게 걸어갈 때도, 마냥 아쉬운 마음보다는 더 강한 믿음을 보내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또 만나요!
[신지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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