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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파리는 어떤 곳인가요 ③ 날 명예 파리지앤이라 불러줘 [여행]

by 송연주 에디터
2024.12.21 11:57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을 되돌아보면 파리에 대한 나의 감상이 [최악]에서 [보통] 정도로 올라왔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파리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아무래도 사랑에 빠진 것 같다.


나는 프랑스의 라로셸이라는 지역에서 8개월 정도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평화롭고 좋은 도시인 것은 맞지만 바다 말고는 놀 거리가 턱없이 부족한 도시이기도 했기에 공강이 생기는 날에는 무조건 파리로 올라가고는 했다. TGV 정기권을 구독해서 0원표가 뜨는 날마다 골라서 파리로 떠났다. 왕복 6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장거리였지만 그 당시에는 할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7시 차를 타고 내리자마자 점심을 먹은 다음 저녁 9시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강행군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러다 기차를 놓치기도 했는데 그럴 땐 기차역 근처 버거킹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 첫 차를 타고 돌아왔다. 자리를 지키느라 계속 음식을 주문하면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써 일행들과 끝말잇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파리를 와서 하는 것은 딱히 없다. 늘 갔던 식당을 또 가고, 뻔한 카페를 방문하고, 끌리는 미술관을 들어갔다가, 사지도 않을 옷들을 구경하며 쇼핑거리를 방랑한다. 사실 내가 파리를 사랑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 동행인에게 있다.

 

 

 

날 명예 파리지앤이라고 불러줘.


 

나의 동행인, 여행메이트 Y는 나와 함께 교환학생을 했던 2살 터울 언니였다. Y는 참 나긋하고 온화했지만 동시에 강단 있고 호기심이 많았다. 교환학생을 시작하고 4개월 동안은 서로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았으나 한 학기가 끝나고 Y와 나만 남자 그때부터 우리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앞서 말했듯이 라로셸은 놀 거리가 많지 않은 도시라서 매일매일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무료한 곳이다. 우리는 서로 시간표를 맞춰서 공강인 날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파리로 놀러 갔다. 파리를 올라가기 전에 보통 루브르 가기, 쏘 공원 가기와 같은 큰 목표를 세우고 떠났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무계획. 그냥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마음 가는 곳을 가고 또 갔다.

 

Y는 마음속에 낭만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나도 한 낭만 하는 사람인데, Y는 한 수 위였다. Y는 파리를 눈에 담으면서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그 눈빛과 말투, 기분을 보면 파리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Y의 시선으로 파리를 보면 누구라도 파리가 아름다워 보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미디어가 그려놓은 예쁘장한 모습으로 파리에 대해 환상을 품는 게 아니다. Y는 파리의 거리를 걸으면서 보이는 사람, 그림, 집과 동물, 모든 풍경들을 느긋하게 관찰했다.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위험과 지저분한 골목에서 시궁쥐를 맞닥뜨려도 아름다웠던 순간을 더 오래 간직했다. 그와 함께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Y의 시선으로 파리를 보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파리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날도 K 마트에서 이것저것 쇼핑하느라 정신이 팔려 기차를 놓친 날이었다. 첫 차표가 나올 때까지 남은 10시간을 어떻게 울지 고민하던 차에 우린 시내로 이동해서 파리의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파리는 자주 왔지만 야경을 보기 전에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반짝이는 파리의 풍경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반 충동적으로 메트로를 타고 시내로 돌아와 우린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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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이 내가 처음으로 파리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촘촘히 서 있는 노란색 가로등이 은은하게 발광했고 멀리서 보이는 에펠탑도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낮에 보았던 탁하고 지저분한 센 강은 가로등 불빛에 의해 윤슬이 부드럽게 반짝였다. 마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유유히 걸으면서 파리에 대한 인상을 나눴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을 오마주 하는 것처럼(로맨스가 빠졌지만). 11시 정각이 되자 에펠탑이 마구 반짝이기 시작했다. 5분 정도 반짝거리는 에펠탑을 구경하다 우린 다리를 건너 앵발리드까지 보고 돌아왔다.

 

※ 참고로 혼자서 밤에 파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절대로 권장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일행과 동행하고 외곽이 아닌 중심가 위주로 돌아다니는 것이 안전하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파리가 좋아졌다. 파리를 느긋하게 즐기면서 아름다움을 속속 파헤치는 법을 배웠다. 이젠 밤뿐만 아니라 낮의 파리도 사랑하게 되었고 가끔은 비 오는 파리도 참아줄 수 있다. 순전히 Y의 덕분이다.

 

원래 프랑스인들은 특정 지역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각각 있는데, 파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파리지앵이고 라로셸 사람은 호슐레라고 불렀다. 우린 우스갯소리로 '아무래도 난 파리 사람인 것 같아. 날 호슐레즈(호슐레의 여성형)가 아닌 파리지앤(파리지앵의 여성형)이라고 불러줘.'라고 말하곤 했다. 누군가 '넌 파리에서 살아본 적도 없잖아.'라며 짓궂게 핀잔을 주면 우린 허허실실 웃으면서 '명예 파리지앤이야!'라고 화답했다.

 

파리는 참 이상한 도시이다. 남들이 하는 걸 다 따라 해보려 하는 아등바등하지 않고 스스로 그 아름다움을 파헤쳐야만 파리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 느긋하게 시간을 가지고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아름다운 파리를 여러분도 찾아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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