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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때,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여름, 거짓말’의 첫 단편인 ‘성수기가 끝나고’에서 나오는 사랑 행위를 꿈꾼 적이 있었어. 사랑이 아니라 사랑 행위 말이야.

 

로렌초 베르니니의 ‘성녀 테레사의 환희’만큼의 충만한 황홀경을 원했던 건 아니야. 감히 내가 원한 건 ‘그들은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키스를 어떻게 하는 건지, 어떻게 신음 소리를 내는 건지, 얼굴엔 어떤 열정 어린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건지, 쾌감을 표현하기 위해 몸을 어떻게 비틀어야 하는 건지 전혀 보지 못한, 마치 19세기에 존재하는 한 쌍의 연인 같았다.’ 같은 거야.

 

요란한 박자에 맞추지 않아도, 단정한 네 이목구비가 뇌 속을 파고들 때까지 연명할 행위를 원했어. 이제는 정말로 매일 출근할 때마다 회사 한 정거장 지나 있는 남영역에서도, 한남동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잠원 한강 공원에서도, 가위바위보를 할 때마저도 네가 떠올라.

 

왜 하필 슐링크는 독일 작가일까? 그래서 그토록 좋아하던 그의 소설도 읽지 못하게 되었어. 네 덕분이야.

 

2. J를 만난 건 하노이의 한 재즈바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반년간의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고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발을 붙였다.

 

고지대인 산장에서 반소매로 얼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얻은 감기와 배가 끊어지는 듯한 요기가 오 분 간격으로 찾아오는 방광염 때문에, 화장실 앞 대기석에 자리를 잡고 캐리어에 얼굴을 파묻었다. 고통으로 지독하게 얽힌 와중에도 머릿속은 수납되지 않고 방치된 사념들로 정신없이 굴러갔다.

 

이 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지향이 있는 자는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에 홀랑 속아 넘어가 미치도록 불확실한 삶도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사실 이 일을 할 만한 재능이 없다는 건 애진작에 알고 있었다. 단지, 이 안정적인 꿈을 갈망했던 기간이 누구보다도 길었기 때문에 커다랗게 불어난 미련 덩어리를 차마 내 손으로 치우지 못했다.

 

그렇게 나에 대한 심판을 유예시키기 위해 도망쳤다. 아니, 도피가 아닌 망명이라고 정정해야겠다. 어쨌든 흙탕물이 잔뜩 튀어 밑창이 까매진 흰 컨버스를 신은 두 발은 호주에서 싱가포르로, 태국에서 베트남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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