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항상 들어온 말이 있다. “공부할 때 노래 들으면서 하지 마라.”
이 말에 대한 근거는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관련 논문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할 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데는 노래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무언가에 집중하려고 할 때 이어폰을 먼저 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가사 없는’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다.
혹시 나와 같이 음악을 들으며 할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업 곡들을 추천한다. 집중력은 물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곡들이다.
조성진 - Ravel: The Complete Solo Piano Works
피아니스트 조성진 하면 쇼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거지만 개인적으로 그가 표현하는 라벨의 음악을 가장 사랑한다. 그가 연주하는 라벨의 곡을 들으면 아주 아주 깨끗한 거울 위로 색색의 구슬이 굴러다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2025년 1월 17일, 조성진은 라벨의 피아노 독주 전곡을 연주한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그에 앞서 지난 11월에 Le tombeau de Couperin. M68, 쿠프랭의 무덤 프렐류드를 들으며 선공개했다.
그가 표현하는 맑고 통통 튀는 멜로디 따라 머리도 잘 굴러가길 바라보자.
히데유키 하시모토 - Piano Room
음이 아주 깔끔한 Hi-Fi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당한 잡음이 섞인 Lo-Fi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어느 쪽을 더 선호하냐고 묻는다면, 둘 다 좋아하지만, 작업할 때는 Lo-Fi 음악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적당히 섞인 잡음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집중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히데유키 하시모토의 "Piano Room" 앨범은 바로 그런 Lo-FI 감성을 완벽히 구현한 작품이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소리, 페달 밟는 소리까지 섬세하게 녹음되어 있어 마치 눈앞에서 연주가 펼쳐지는 듯한 현장감을 준다.
그가 표현하는 단순한 멜로디 안에 공간감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할 일에 몰입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루카 나카무라 - 青い森 AoimoriⅢ
일본의 아오모리시 출신의 하루카 나카무라는 싱가포르 기반의 레이블인 키친 레이블(Kitchen Label) 에 소속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그의 이름이 익숙하다면 아마 애니메이션 ‘룩백’의 음악감독으로 들어봤을 것이다.
츠타야 서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4부작 중 세 번째 앨범인 青い森 AoimoriⅢ는 숲을 테마로 하였으며 일렉트로닉 피아노의 섬세한 음색이 돋보인다. 이 곡들과 함께라면 자연 속에 있는 듯한 편안함 속에서 집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정재형 - Le petit piano
정재형, 무한도전 키즈라면 정형돈과 팀을 이뤄 만든 순정 마초 아저씨로 알고 있을 것이고, 요즘 유튜브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요정 재형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진행을 잘하고, 아주 굵직한 예능을 나왔던 적이 있어 예능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그는 작곡가다.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했으며, ‘내 눈물 모아’의 작곡가이다. 사실 나도 그를 무한도전에서 처음 알게 되었으나, 새로운 곡을 연습을 위해 피아노 악보를 찾던 중 "Le Petit Piano"를 들으면서 그의 진가를 더욱 느끼게 되었다.
그의 피아노곡이 담긴 Le petit piano는 2010년에 발매된 앨범으로 섬세한 연주와 따뜻한 감성이 돋보이는 곡들로 가득하다. 무빙과 조명 가게의 작가인 만화가 강풀도 이 노래를 들으며 작업을 한다고 작업 곡으로서의 믿음을 더해준다.
이 곡들과 함께라면 어떤 일이든 정재형처럼 우아하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FKJ - Just piano
French Kiwi Juice, FKJ의 음악을 듣다 보면 아주 맛있는 한 끼를 먹는듯한 기분이 든다. 그가 안내하는 동선을 따라 함께 듣기만 해도 다양한 식감, 맛, 향기까지 다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영화음악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해 New French House라는 음악 장르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Just Piano는 이전에 발매했던 재즈, 전자 음악들을 서정적인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앨범이다.
감정적으로 편안하면서도 집중력을 높여주는 옷으로 갈아입은 그의 곡들은 작업하는 순간의 동반자로 딱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