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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돌아온 바다의 길잡이, 모아나
11월 27일 영화 모아나 2가 개봉되었다. 전편 모아나에 이어 8년 만에 나온 후속작이다.
개봉 전에는 모두가 '여름에 개봉되었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보였지만 겨울에 보니 여름을 더욱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8년 전 모아나를 극장에서 보았을 때도 광활한 바다와 역동적인 캐릭터들의 춤과 노래에 깊은 매력을 느꼈는데 모아나 2 역시 푸른 바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모아나는 섬의 평안과 안녕을 불러다 준 영웅이자 부족의 가장이다. 후속편에서는 자신의 섬에서 벗어나 더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흩어진 부족들을 찾아나선다. 저주로 인해 막혀버린 바닷길을 다시 열기 위해서는 옛 선조들이 다시 가고자 했던 모투페투 섬으로 가야 한다.
모아나는 다시 한번 위험천만한 여정을 나서야 하는데 여기서 전작에선 볼 수 없었던 모아나의 새로운 갈등이 비친다. 이미 한 번 목숨을 걸고 여정을 떠났던 모아나는 다시 전과 같이 신에게 대항하여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기약 없는 여정을 떠나야 한다. 모투페투 섬이나 날로에 대한 어떤 정보도, 성공할 가능성도 보장되지 않는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서 모아나는 갈등한다.
모아나는 오직 구전으로 전해지는 옛 선조들의 이야기만을 바탕으로 여정을 떠났다. 부족들을 다시 모으기 위해서. 계시처럼 나타난 혜성의 빛을 따라서 무작정 배를 몰고 떠났지만 도중 혜성이 갑자기 폭발해버린다. 그렇다 할 이정표도 없는 막연한 상황 속에서 길을 잃고 만 모아나 일행. 그때 길을 막고 있던 거대한 조개 속으로 빠지고 만다.
각자의 삶, 각자의 길
조개 속에서 일행과 떨어진 모아나는 박쥐 여자 '마탕이'를 만난다. 음흉한 미소, 알 수 없는 속내, 그는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마탕이는 부족들이 서로 왕래하지 못하고 단절된 이유가 '날로'라는 신에 의해서 방해받고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날로는 바닷사람들이 모이는 모투페투로 인해 힘이 약해지는 것이 두려워 섬을 바닷속으로 가라앉혔다. 섬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다는 마탕이의 말에 모아나는 그곳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때 마탕이는 대답한다.
"여기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려줄게. 길을 잃어!"
What do you say? Look
어때? 봐
Don't you know how good you have it?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의 의미를 넌 몰라
You're all that's stopping you
널 가로막는 건 너뿐이야
For me, I'm stuck like static
난 꼼짝없이 갇혀있어
Can you imagine
상상할 수나 있겠니
A life this tragic in the gloom?
이 비참한 인생이?
You've got a chance, so take it
기회가 있을 때 잡아
I know you're scared, but life's unfair
네가 두렵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인생은 불공평한 것
It's full of choices, big and small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야
But trust the fall and you can have it all
하지만 용기를 내면 모든 건 네 뜻대로
Get lost, cut loose,
길을 헤매,
and lose your way
자유롭게
There ain't no fun in holdin' back
한 길만 고집하면 재미없잖아
You gotta enjoy the thrill of livin' dangerously
위험한 삶, 스릴을 즐겨봐
You've got a long, long way to go
갈 길이 멀잖아
Keep playin' safe, you'll never know
안전한 길만 가면 평생 모를걸
The rules are ours to break
규칙을 깨라고 있는 거야
모아나2 OST. 길을 헤매(Get Lost) 中
처음 내가 이 노래를 들었을 땐 막연히 순진하고 어린 주인공을 부추기고 괴롭히기 위한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길잡이에게 길을 잃으라니.
하지만 점점 노래가 흐를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마탕이가 하는 말은 마치 부모가, 선생님이, 멘토가 아직 사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싹들에게 건네주는 인생의 조언과도 같았다. '실수하면 안 돼.', '정도(正道)를 걸어야지' 이런 생각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하는 어린 초년생들을 어루만져 주는 익살스러운 격려였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나서 제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우리는 각자의 길이 있다는 걸 잊고 마는 걸까?
나보다 먼저 앞서가는 사람,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 좋은 성적을 거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나도 저렇게 해야만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나서 그들의 꽁무니를 쫓아가려고 한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길을 걷는 것뿐인데, 왜 나는 남의 길을 나의 길인 것 마냥 스스로를 속이며 마음고생을 했을까.
내가 계속 살아있는 한 나의 길은 계속 이어진다. 실수든 망신이든 모든 것은 자양분이 되어 내 길 위에 피어난다. 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두려워하지만 그럼에도 내 삶의 기로 앞에서 끊임없이 선택해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길이 없다는 고립감에 매몰될 필요없다. 나는 길을 만드는 개척자이자, 그 길로 나를 이끄는 길잡이기도 하다.
그대들은 '평생'이라는 길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나 역시 어떤 길을 만들지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 앞에 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