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딸기 쇼트케이크는 자존심의 한 조각이자 사랑의 전부 [도서/문학]

우리 사이에 억지스런 의미는 던져버려도 돼
글 입력 2024.11.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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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었다. 읽으려고 시도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부터였지만 아무리 도전해도 프롤로그를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책장을 덮다가 지난해 겨울, 병원에 입원하여 혼자가 되고 나서야 책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나서 1년이 지난 후에야 언급을 하는 것은 꽤나 큰 도전이다. 나는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아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고 현재는 책을 읽으면서의 감정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 상실의 시대 영화를 잘라놓은 숏츠 동영상을 보게 되었고 귀로 듣게 된 미도리의 대사가 사랑에 대한 나의 생각을 뒤집었으며 나는 이에 대해 나의 견해를 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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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의 딸기 쇼트케이크>

 
 
미도리는 소설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이 끝난 후 미도리만이 기억에 남았을 정도로 엄청난 임팩트를 선사했다. 그녀는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밝고 개성 있는 인물로 그가 느끼는 어두운 감정들과 대비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이름처럼 온몸에 여름의 반짝임과 생을 담아 가상의 추억을 새롭게 선사한다.

미도리는 와타나베나 나오코와 달리 매우 자유롭고 직설적이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타나베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데(물론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지만) 그녀의 낙천적이고 순수한 모습은 '상실과 고독'을 중심으로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소설 속 인물들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독자들이 뽑는 미도리의 명대사는 매우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아래와 같다.
 

 

"가령 지금 내가 자기에게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말이야. 그러면 자기는 모든 걸 집어치우고 그걸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헐레벌떡 돌아와서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야.' 하고 내밀겠지. 그러면 나는 '흥, 이런 건 이제 먹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그걸 창밖으로 휙 내던지는 거야.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거란 말이야."

 

"그런 건 사랑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은데."

 

"관계있어. 자기가 알지 못할 뿐이야. 여자에겐 말이야, 그런 게 굉장히 소중할 때가 있는 거야."

 

 
내가 본 숏츠 영상의 댓글들을 보면 이 대사에서 왠지 모를 답답함과 불쾌감을 느낀 독자와 관객들도 있었던 것 같다. 미도리의 답변이 제멋대로에 뻔뻔하고 감정적이기까지 한 최악의 연인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그런 캐릭터성을 가진 인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사랑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한 사람이다.

그녀는 겉으로는 쾌활하고 철없는 여대생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픈 아버지를 정성껏 돌보고 있다. 나아질 기미 없는 사람을 간병하는 것은 때론 무의미한 것으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꾸준히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도리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는데 그녀가 얼마나 아버지에게 지극정성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녀의 사랑은 언제나 헌신과 희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타인에게도 그러한 사랑을 바랄 뿐이다. 소설에서 미도리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것만을 타인에게 제안한다. 이것이 그녀가 바라는 사랑의 핵심이다. 실제로 저 장면의 마지막에 "난 그렇게 받은 것만큼 분명하게 상대방을 사랑할 거야."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사랑은 그 어떠한 체면과 자존심을 부리지 않고 상대방의 순간순간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던지는 것이다.
 
딸기 쇼트케이크는 단순히 '케이크'를 의미하지 않는다. '딸기 쇼트케이크'란 사랑의 크기를 시각화하기 위해 표현한 메타포이며 버려지는 딸기 쇼트케이크는 꼬깃하게 버려지는 상대의 자존심을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알았어, 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사과할 겸 다시 한번 뭔가 다른 걸 사다 줄게. 뭐가 좋아? 초콜릿 무스, 아니면 치즈 케이크?"라는 대사의 초콜릿 무스와 치즈 케이크 또한 미도리가 바라는, 상대방의 끝없는 사랑의 깊이인 것이다.

 

*

 

미도리가 말하는 사랑을 아무렇지 않게 행한 적이 있었다.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연인의 집으로 달려갔고, 잠들 때쯤 품에 안겨 오는 연인을 보며 영원을 결심했으며 엄지손가락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는 연인에게 언젠가 난 당신 대신 죽겠다며 숭고한 희생을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상실과 실연을 경험한 후 어느 날부터 나는 나오코처럼 사랑을 회피하고 와타나베처럼 사랑의 행위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으려 했다.


매일 밤 모든 관계에 있어 미도리와 같은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마음은 가치에 대한 대가를 바란다. 언젠가 다시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까?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게 나의 마지막 사랑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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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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