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는 같은 세상을 볼 수 있을까요?

글 입력 2024.11.0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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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곧 돈’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와닿는 때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돈이 없어서 시답잖은 대화에도 끼지 못하는 세상이 올 것만 같은 두려움도 느낀다. 이 영문 모를 무서움을 안겨준 건 인공지능(AI)이다. 세상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나온 인공지능이 그 차별을 더 커지게 할 것만 같다는 게 참 미묘하다.

 

얼마 전 애플이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서비스 'Apple Intelligence'를 발표했다. 늘 그러하듯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자랑하면서 아이폰 15 프로 아래의 기종으로는 해당 기능을 이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럼, 그 밑의 아이폰을 쓰고 있던 기존 사용자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100만 원이 넘는 최신 기기를 새로 구입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애플 AI로 무엇을 하는지 구경만 하거나. 그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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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ong Deng Xiang via Unsplash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생소한 기술이기도 했지만, 가격대가 높은 편이라 아무나 쓰지는 못했다. 다행히도 금방 보급형 기기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보급형 스마트폰은 고사양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일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고, 덕분에 스마트폰이라는 기술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널리 퍼졌다.

 

하지만 AI는 그렇지 않다. 고사양의 하드웨어와 최신 기술이 필요하다. 애플이 아이폰 15 프로 이상이라고 못 박은 이유이자, 고사양의 최신 스마트폰 기종을 보유할 여력이 있는 사람만 새로운 기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수준의 차이라는 계급 구조는 물질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과거에는 문화라는 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던 일종의 특권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개막으로 누구나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생비자의 시대가 열렸고, 그게 나아가 유튜브라는 거대한 플랫폼을 우리 손안에 안겨줬다.

 

하지만, 이 AI 때문에 다시 과거로 회귀할 것 같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이미 초등학교 아이들도 AI 기술을 활용한 교육을 받고 크리에이터들도 AI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그 기술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장비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게 당연한 이 문화소비 행태에 참여할 수 없다. 돈 때문에 도전의 기회조차 박탈당하며 여가생활에서도 저들과 나 사이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저들 모두가 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대화의 벽을 쌓아 올린다. 같은 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저 사람과 나를 갈라놓고, 그 벽이 수준의 차이를 만들며 경제적 능력의 격차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계급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그들만의 리그가 열리는 게 아니라 일상이라는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이런 계급의 차이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협한다. 한창 서로 어울리면서 세상을 배워가야 할 아이들로 가득한 학교 안에서 친구 사이가 아니라 우월하고 열등한 사람의 관계가 형성될지도 모른다. 그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라 끌어 나가는 사회 속에 과연 평등이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문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 사람이 생각하는 힘을 키운다. 그렇게 넓어진 세상은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더 나은 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그 문 앞에 서는 위치부터 누군가는 저 멀리 서 있고 다른 누군가는 코 앞에 서 있고, 혹 또 다른 누군가는 같은 선상에 서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새로움이라는 문이 열릴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눈부신 마법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그 빛이 한 곳만을 향한다면 그림자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어디를 향해서 자라야 할까.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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