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는 같은 세상을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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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곧 돈’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와닿는 때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돈이 없어서 시답잖은 대화에도 끼지 못하는 세상이 올 것만 같은 두려움도 느낀다. 이 영문 모를 무서움을 안겨준 건 인공지능(AI)이다. 세상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나온 인공지능이 그 차별을 더 커지게 할 것만 같다는 게 참 미묘하다.
얼마 전 애플이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서비스 'Apple Intelligence'를 발표했다. 늘 그러하듯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자랑하면서 아이폰 15 프로 아래의 기종으로는 해당 기능을 이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럼, 그 밑의 아이폰을 쓰고 있던 기존 사용자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100만 원이 넘는 최신 기기를 새로 구입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애플 AI로 무엇을 하는지 구경만 하거나. 그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생소한 기술이기도 했지만, 가격대가 높은 편이라 아무나 쓰지는 못했다. 다행히도 금방 보급형 기기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보급형 스마트폰은 고사양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일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고, 덕분에 스마트폰이라는 기술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널리 퍼졌다.
하지만 AI는 그렇지 않다. 고사양의 하드웨어와 최신 기술이 필요하다. 애플이 아이폰 15 프로 이상이라고 못 박은 이유이자, 고사양의 최신 스마트폰 기종을 보유할 여력이 있는 사람만 새로운 기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수준의 차이라는 계급 구조는 물질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과거에는 문화라는 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던 일종의 특권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개막으로 누구나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생비자의 시대가 열렸고, 그게 나아가 유튜브라는 거대한 플랫폼을 우리 손안에 안겨줬다.
하지만, 이 AI 때문에 다시 과거로 회귀할 것 같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이미 초등학교 아이들도 AI 기술을 활용한 교육을 받고 크리에이터들도 AI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그 기술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장비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게 당연한 이 문화소비 행태에 참여할 수 없다. 돈 때문에 도전의 기회조차 박탈당하며 여가생활에서도 저들과 나 사이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저들 모두가 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대화의 벽을 쌓아 올린다. 같은 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저 사람과 나를 갈라놓고, 그 벽이 수준의 차이를 만들며 경제적 능력의 격차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계급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그들만의 리그가 열리는 게 아니라 일상이라는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이런 계급의 차이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협한다. 한창 서로 어울리면서 세상을 배워가야 할 아이들로 가득한 학교 안에서 친구 사이가 아니라 우월하고 열등한 사람의 관계가 형성될지도 모른다. 그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라 끌어 나가는 사회 속에 과연 평등이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문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 사람이 생각하는 힘을 키운다. 그렇게 넓어진 세상은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더 나은 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그 문 앞에 서는 위치부터 누군가는 저 멀리 서 있고 다른 누군가는 코 앞에 서 있고, 혹 또 다른 누군가는 같은 선상에 서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새로움이라는 문이 열릴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눈부신 마법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그 빛이 한 곳만을 향한다면 그림자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어디를 향해서 자라야 할까.
[김상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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