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철학자 아도르노의 예술론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11.0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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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는 독일 관념론 전통, 특히 헤겔 미학의 노선에서 예술론을 견지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예술은 그 자체의 개념상 원래부터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형성돼 오면서 계속 형성되어 가는 어떤 것(ein Geworden)이다. 아도르노는 마술적이고 애니미즘적인 종교적 실천과 같은 행위를 예술의 이전 형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이때 예술이 역사적 과정에서 예배의 기능 및 그 잔재들을 떨쳐버린 이후에 자율성을 획득하면서 예술의 향유라는 견해가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본다. 즉, 아도르노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자신의 고유 영역을 정립하기 위해 역사적 과정에서 경험 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방식을 통해 자율성을 획득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현대에 접어들면서 예술의 그러한 움직임은 정지되어 있지 않고 그 방식을 급진화하기에 이르러 심지어는 자신을 구성하는 요인들에 대해서조차도 반대하며, 그로부터 예술은 가장 깊숙한 조직에 이르기까지 불확실한 것이 된다. 따라서 예술은 전통적으로 기초 지층으로 확고하다고 여겨지던 요인들을 장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질적으로 어떠한 다른 것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자신의 '객관적'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이 자체의 통일성을 갖춘 구성물로서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자기 자신까지 부정하는 역설적인 방식으로서만 가능하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한편, 아도르노는 현대에 접어들면서 현대의 예술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특유의 현상들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설명한 예술작품의 객관적 특징이 현대에 와서 급진화된 상황을 '정신화'라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다. 정신화는 예술작품을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라고 규정한 헤겔의 예술 용어로, 예술에서 정신이 예술작품이라는 감각적 매개체를 통해 감각적으로 구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도르노는 예술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자연에 대해 가공을 가함으로써 직접적인 실재를 부정하고자 하는 실천의 한 형태였다는 헤겔의 견해를 이 점에서는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도르노는 예술에 대한 헤겔의 규정은 현대 예술을 설명하는 데 가장 중심이 되는 현상을 포착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예술작품은 작품(Werk)이라는 점에서 사물 중 하나이지만, 정신을 통해서 사물적인 것과 다른 것이 되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는 예술에 있어 그러한 '정신'의 계기는 사물적 혹은 감각적 계기들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역시 존재할 수 있다고 곧바로 덧붙인다. 이 점에서 예술에 있어 정신적이지 않은 모든 것은 정신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헤겔의 견해와는 달리, 그는 예술에 있어서 정신이 감각적 계기에 갖는 의존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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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가 현대 예술에서 주목하는 것은, '불협화음' ,'폭발', '마찰음' 그리고 '착란' 등의 징후들이다. 그는 20세기 초에 일어난 표현주의와 구성주의라는 두 예술운동을 놓고서 현대 예술이 다음과 같은 아포리아(aporia)적 상황에 놓이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즉, 현대 예술은 표현주의적 충동으로부터 관습적 형식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 구성의 계기가 현대 예술에서 절대적인 것으로 되도록 자극하며, 그로부터 예술은 이제 형식에 아무것도 주어진 것 없이 의미를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예술은 역사적인 과정에서 예배의 기능 혹은 귀족 계급을 위한 봉사의 기능과 같은 종속적 특징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주장해왔다. 그런데 고유한 영역을 정립하고자 하는 예술의 그러한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 목적에 대한 상실을 유발했고, 이로부터 예술은 그것의 깊숙한 부분에서부터 불확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가지의 예술사조 각자가 자신의 힘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상황에 놓일 경우, 그것은 예술의 존재 이유가 상실되는 것으로도 귀결될 수 있는 아포리아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도르노는 그러한 아포리아의 상황을 해소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의미의 위기'라는 예술이 처한 그러한 현상은 추상화된 세계 자체가 처한 위기 상황을 예술이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진리가 드러나고 있다고 본다.

 

즉, 실제로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추상적인 상태로 된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의미의 위기에서도 무엇인가를 말함으로써, 어떤 의미를 재료에 대한 가공의 진행 과정들에서 찾아내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하는데, 이로써 예술은 부조리에 빠져든다. 바꿔 말해서 예술이 자신의 순수한 영역을 규정하기 위해 수행해온 움직임이 역설적으로 예술의 부조리를 낳는다는 상황은 오늘날 세계정신이 처한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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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는 현대에 와서 급진화된 예술작품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동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술작품은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구축함을 통해 자율성을 획득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자기-동일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그 지점에서 자기-동일성을 구축하기 위해서 자신과 동일하지 않은 것, 즉 이질적이고 아직 형식화되지 않은 요인들을 역설적으로 필요로 한다. 따라서 예술작품은 자신과 동일한 것과 비동일적인 것 간의 동일성을 과정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바꿔 말하면 예술작품이 자기 자신으로 존립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과 동일하지 않은 것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지만, 예술이라는 자신의 영역이 소멸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기 위해 타자성에 저항하면서 작품은 자체의 형식 언어를 명료화하여 형식화되지 않은 타자성이 자신의 영역 안에 남아 있도록 분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작품 자체는 또한 과정이 아니라 존립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사물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예술작품이 존립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인 사태를 지시한다. 즉, 본질적으로 힘의 특성을 가졌기에 고정될 수 없는 것이 마치 사물적인 것으로서 고정된 채 존립하고 있기도 한 어떤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이 예술작품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사태는 모순적으로 작품이 자신을 부정하면서도 작품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작품의 역설적인 평형 상태, 즉 자신이 아닌 것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도 자기 자신과 구분되는 타자를 받아들이는 예술작품의 객관적 속성에 아도르노는 주목하고 있다.

 

 

[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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