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런 나도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가 전하는 용기와 희망
글 입력 2024.11.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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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취업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관문 앞에 서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동안은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다 보면 내가 가야 할 길이 나올 거라고 믿었다. 사람들이 하는 대로 맞지도 않는 내 몸을 주어진 현실에 끼워 맞추고,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이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았는데, 정작 내가 깨달은 건 나는 여전히 이 길에 대한 확신이 없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 사이토 뎃초 작가의 에세이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를 만났다. 처음엔 ‘씨네필,’ ‘히키코모리,’ ‘소설가’라는 세 단어의 조합이 너무 흥미로워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히키코모리로 지내며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작가의 영화 같은 인생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고 멈춰 서 있는 내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아도 분명 어디론가 가고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도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 말이다.

 

사이토 뎃초 작가는 4년간의 대학 생활과 취업에 실패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영화라는 유일한 탈출구를 찾았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인디 영화를 섭렵하던 그는 〈경찰, 형용사〉라는 루마니아 영화와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루마니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서 사귄 루마니아 친구들과 소통하고 루마니아의 다양한 웹사이트를 서핑하면서 그는 루마니아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사소한 슬랭까지 아는 루마니아어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소설가가 꿈이었던 그가 루마니아어로 쓴 소설이 루마니아의 온라인 문예지에 실리면서 그는 결국 일본인 최초로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지난 대학 생활이 떠올랐다. 기대했던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만성적인 우울감에 휩싸여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나도 작가와 같이 영화의 세계로 도망쳤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학 생활의 2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면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영화 모임을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와 매일 영화를 보고 이따금 블로그에 후기를 썼으며, 친구들과 함께하기보다는 혼자 학원에 다니며 영화 비평과 시나리오 작법을 배웠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영화를 사랑했고, 영화에 집착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졸업을 앞두고 뛰어든 취업 시장에는 수많은 자격증과 여러 번의 인턴십과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쓸 만한 내용이 없어 칸이 텅텅 빈 나의 이력서는 그동안 내가 해온 것이 그저 싸구려 도피였을 뿐이라는 처절한 현실을 일깨워 줬다.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지난 4년이 써먹을 데 없는 무용지물처럼 느껴져 속이 상했고,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 온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감이 잡히지 않아 막막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건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삼천 명이 넘는 루마니아인에게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하고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은 작가의 집념에 비하면 내가 한 노력은 아무것도 아닐 테다. 하지만 책의 제목처럼 그는 정말 뭐든 하다 보니 뭐가 됐다. 어떤 능력도 의지도 없을 것 같던 히키코모리는 방구석에서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됐다.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이 경이로운 일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나아간다면 이런 나도 무엇인가가 될 수 있을 거란 자그마한 희망을 내 마음속에 불어넣어 줬다.

 

 

그래도 나는 이런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자신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해도 좋다고 본다. 이런 자의식을 사춘기의 방황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인생의 미학으로 키워가는 놈이 있어도 좋지 않은가. 나는 이런 독아론, 즉 하나뿐인 자기 자신을 끝끝내 파고들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나는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인생을 걸었다.

 

 

‘쉬었음 청년’ 40만 시대, 은둔형 외톨이 청년 약 24만 명 추정. 인생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시기의 우리 한국 청년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기성세대는 이들이 단지 배부르고 등 따시게 자라서 어려움을 모르고 나약한 거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 스스로 갇히기보다 너만의 방식대로 살아도 좋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사이토 뎃초 작가처럼 말이다. 더 활짝 피기 위해 조금 오래 웅크리고 있을 뿐인 청년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다르게 살아갈 용기를 얻길 바란다.

 

 

[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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