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역동적인 탐구 - 내가 물에서 본 것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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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환이나 증상으로 병원에 꾸준히 내원한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의사 앞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증상이나 병명으로 치환되는 경험을 종종 한다.
김보라 안무가를 필두로 제작된 무용 공연 “내가 물에서 본 것“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파생되었다. 자발적으로 난임 시술에 참여한 김보라 안무가는 난임 시술이 개인의 선택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 자신의 선택은 점점 퇴색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물에서 본 것의 물은 물질(material)과 문제(matter)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몸이 근본적으로 물질적 존재임을 인지하고 이로써 시작되는 몸 그 자체에 대해 탐구한다. 의학은 기술이지만 그 주체를 이루는 몸은 기술보다는 중립에 가까운 자연적 발생이다. 그 어긋남에서 느끼는 불편감이 공연 내내 여과없이 다루어진다.
모순을 인정하고 탐구하기
몸, 특히 보조생식기술에서 여성의 몸은 행위의 주체이자 존재론적 위치에 있지만, 여성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기대와 역할 부여에서 한계를 느낀다. 사회 속에서 온전한 개인으로 이해되기는 누구나 어렵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이 모순을 말해온 시간은 길지 않다.
이런 모순을 김보라 안무가는 탐구한다. 공연의 시작, 무용수들이 바닥에 붙은 비닐을 찢으며 움직인다. 신체 내부의 감각을 형상화할 때 비닐이 찢기고 뭉치는 소리가 음악과 중첩된다. 새된 소리와 함께 쭉 늘어나는 비닐에서 안무가들이 끊임없이 구르고 밀고 당긴다.
김보라 안무가는 자신이 느낀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무용으로써 박제한다. 안무가들이 물을 가글하듯 뱉는 소리, 공사장 소리 등으로 본인이 보조생식기술을 통해 느낀 것들을 대체한다. 공연을 보다 보면 몸속에서 그녀의 3년을 짧고 강하게 체험하는 듯하다. 일상적인 소음들이 공연의 한 요소로 부각되고 동시에 무대의 소리가 함께 들리며 시시각각 연출할 수 없는, 음악이 표현된다.
생명의 탄생은 아름답지 않다. 학창 시절 뭉뚱그려 교육하는 여성과 남성의 몸이나 신화 같은 ‘아름다운 잉태’에서 크게 발전하지 않은 채 여성들의 발화는 희미해져 왔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적당한 단어로 다루어지고 그 과정은 오히려 생략된다. 하지만 시술 과정 중 자기 자신을 상실하는 느낌을 받아왔다는 김보라 안무가의 서술처럼 이 공연을 표현하는 과정 또한 아름답기보다는 불편하고 힘겨운 편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과정에서 여성은 주체성이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또한 그동안의 클리셰를 답습할 뿐이다. 무대에서 김보라 안무가를 지칭하는 듯한 무용수는 쓸려가듯 무대를 나갔다가 다시 등장한다. 이 모든 경험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 은유적으로 전달되는 지점이다.
엄마를 위한 기술이지만 그에 수반되는 고통과 부작용, 수십번씩 주사되는 약물은 응당 감내해야할 것으로 여겨진다. 엄마를 위하기보다는 아이의 탄생을 위해 여성의 몸은 도구가 된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기술이란 이런 모순을 늘 만들어낸다. 우리가 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또한 그 모순이다. 임신 성공 및 실패로 잣대를 나누는 게 아닌 ‘물에서 본 것’을 표현하는 것에도 분명 의미가 있을 테다.
무용이 보여주는 무용
무대에는 별안간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감돌기도 하고 날계란은 마구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안무가들의 몸짓으로 한번,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으로 두 번, 대리 경험을 한다. 물(matter)을 경험하고 물질(material)을 느끼는 여정에 관객은 함께 동화된다.
프로그램 북에는 이들의 창작 과정과 함께 나눈 자료들이 설명되어 있다. 그중 공연 이해에 도움이 된 문장이 있었다.
스스로를 탐구하는 ‘신체 담론’을’무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미래 예술> 서현석, 김성희
어찌 보면 개인의 경험으로만 여겨질 수 있는 이야기를 공연은 끝없이 쫓아간다. 일상적 소음에서 탈출하고 불편함을 느끼고 편안해지기도 하며 절망하기를 표현한다. 공연에서 여성의 몸은 “자궁”으로 환원되지 않고 그 내부에서 경험되는 것들. 보조생식기술에 대한 감각이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각각의 세포 같은 무용수들의 모습이 모여 신체 자체이자, 이들이 말하는 문제의 시공간으로 느껴졌다.
공연이 말하는 주제는 복잡하지만, 목적은 간단하다. 잊지 않고 담론의 장을 만드는 것. 그 자체에 공연과 무용의 존재 이유가 있다. 복잡하고 첨예한 문제를 계속 탐구하는 “내가 물에서 본 것”은 결과가 아니라, 이 모순을 이야기하는 그 자체를 원한다. 그 고민과 함께한 공연을 보며 개인의 경험 아래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는지, 관객들은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 감각했다.
공연의 끝에 이상하게 해방감을 느꼈다. 비유적이지만 강력한 표현들은 난임이라는 경험을 포함해 여성이 느끼는 답답함을 해소해 주기도 했다. 고민을 말하기만 하는 것으로도 한결 나아지는 것처럼 어쩌면 일련의 관객인 내가 느낀 이 해방감조차 의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LG 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내가 물에서 본 것”은 지난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공연을 했다. 공연은 종료되었지만, 무료 배포되는 프로그램 북에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밀도 있게 담겨있다. 이들의 촘촘한 탐구가 궁금한 이들에게는 공연을 본 것만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노현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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