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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바보 온달은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이야기의 히로인 중 한 명이다. 정확히 말하면 신데렐라 맨이라고 할 수 있다. 똑똑하고 아름다운 선화공주를 만나 고구려의 장군으로 신분 상승을 꾀한 온달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원하는 게 있을 땐 서동요 기법을 사용하자? 집 중에 최고의 집은 ‘취집’이다? 아마 그건 아닐 거다. 그렇다면 신데렐라라는 고전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어디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재력이 부족한 주인공이 부유한 상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이제 클래식이 되었다. 과거에 키다리 아저씨처럼 젊고 외모가 뛰어난 여성의 후원자 형태를 지나, 자유연애가 보편화된 시점부턴 나를 변화시켜 줄 멋진 왕자님과 극적인 만남을 꿈꾸기 시작했다. 콜레트 다울링은 본인의 저서에서 이를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지칭했다. 타인에게 나를 의탁하여 의존하고자 하는 심리를 말한다. 설명만 들으면 이런 수동적인 주인공은 전혀 매력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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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나라의 20세기 이후 콘텐츠를 살펴보면 신데렐라 스토리의 흥행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1960년대엔 개인의 능력과 욕망을 긍정하는 자본주의가 생활에 보편화되며 신분 상승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에 바보 온달과 같은 신데렐라 맨의 이야기가 대중문화에 등장하게 되었다. 계층 사다리가 손에 닿을듯 하고,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던 1990년대에는 그야말로 신데렐라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IMF가 터진 후엔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긍정은 희망 고문이 되었다. 그래서 2000년대부터 현재에는 판타지적 혹은 만화적인 설정이 가미된 장르물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그 중 하나가 2006년 방영된 드라마 <궁>이다.

 

 

 

대한민국은 입헌군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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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궁>은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여 황실이 존속하는 나라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황실의 황태자 이신은 예술고등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지만 본인의 지위와 위치 때문에 원하는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상황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에 반해 같은 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신채경은 평범한 집안의 명랑하고 당찬 장녀로 태어난 꿈 많은 소녀일 뿐이다.

 

다른 세상 사람처럼 살아가던 둘은 어느 날 신의 할아버지인 선대 황제와 채경의 할아버지가 맺은 약속으로 엉겁결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그렇게 채경은 하루아침에 서민에서 황태자비로 레벨업을 하며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두 사람은 짝짝이 양말처럼 억지로 붙여 놓은 것 마냥 어색하기만 한 사이지만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황실의 규율에 맞추어 인형처럼 움직이는 데 익숙해진 신의 무력함과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 많은 일반인 채경이 받게 될 관심의 무게는 티격태격하는 서로가 있기에 지탱된다.

 

 

 

결혼 무효 선언


 

채경은 아버지가 진 빚으로 집안이 휘청이게 되어 정략결혼을 수락한 것이었기에 단호한 거절이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기울어진 가세를 위해서라도 황태자비 앞으로 들어오는 거액의 돈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채경은 신분 상승이라는 측면에서 신데렐라적 인물이지만, 동시에 공양미 300석에 맹인인 아버지 눈을 뜨게 할 효녀 심청 모티프가 함께 나타난다. 심청이에게 바다에 뛰어들 용기가 있었듯 채경은 어린 나이에 혼인할 결심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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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족과 떨어져 거처를 옮기고, 익숙한 삶에서 멀어진다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자유롭게 사람을 마음껏 만날 수 없다는 데서 향수병을 느끼고, 지겹게 느껴졌던 소소한 여고생으로서 일상은 사라진다. 세상을 바꾸는 디자이너라는 꿈이 있지만 사회인으로서 직업을 갖지도 못한다. 채경은 자신의 소중한 일상과 자아를 찾기 위해 결혼 무효를 선언한다. 21세기의 신데렐라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그녀는 틀에 박힌 공식을 깨려고 시도를 한다. 이에 신은 어른들의 눈속임을 위해 이혼을 전제로 한 위장 결혼을 제안한다. 끝을 바라보며 시작한 결혼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궁을 떠난 왕세자비


 

한편 궁에서는 왕위 서열 구도가 잡히기 시작한다. 신은 아직 황제가 아닌 황태자 후보 서열 1순위이기에 사촌인 율과 왕위 쟁탈전을 벌인다. 궁이라는 새장을 답답하게 여기는 신은 황제의 자리에 큰 뜻이 없으나 채경을 짝사랑하는 율이 신경 쓰기 시작하며 대립하게 된다. 그때 황실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정황상 신이 의심받고, 불륜 이슈를 환기하기 위해 채경은 신과 떨어져 마카오로 보내지게 된다. 동양과 서양의 상반되는 세상이 한 데 뒤섞인 마카오에서 채경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부딪히며 더 넓은 세계를 맞이한다.

 

몇 년 후 신은 왕위를 누나인 혜명 공주에게 넘기고 채경을 만나러 마카오에 간다. 재회하게 된 둘은 더 이상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아니지만 표정은 한결 더 가벼워 보인다. 채경은 신에게 따뜻한 가족의 정, 진정한 사랑과 더불어 궁 바깥의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발맞추어 알려준 등대가 되어주었다. 채경을 어쩌다 운이 좋게 평민에서 로열패밀리에 입성한 여자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겐 이 삶이 실패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채경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럭셔리한 우물 속 개구리였던 신의 인생은 구원받을 수 있었다. 신데렐라는 이제 왕자의 세계 바운더리를 무도회장 바깥으로 넓혀 줄 부드러운 강인함이 있기에 12시를 알리는 자명종 소리가 두렵지 않다.

 

 

 

신데렐라 실종사건: 고전도 변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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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Y2K의 유행으로 다시 각광 받게 된 드라마 <궁>은 심오한 메시지를 던지는 드라마는 아니다. 오히려 사용하는 어휘나 패션이 촌스럽고 유치한 면이 있어서 추억 속에 아름답게 남겨 놓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자꾸 이 드라마를 꺼내 보게 되는 이유는 그 시대에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두고 왔기 때문 아닐까 싶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구조를 단순히 차용하기만 했다면 당시 대중들에게 외면받았을지 모른다. 70-90년대 초반처럼 경제 성장기의 상승 욕구만을 노래했다면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예술은 언제나 시대의 태동을 확인하고 반영하여 나타나는 증후적인 것이다.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하는 거울에서 고전은 늘 길라잡이가 된다. 시대착오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새살을 덧붙일 때 더 사랑받는 오마주가 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 자체는 변함이 없기에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따라서 고전의 탄탄한 문학성은 우리에게 비유와 상징 체계를 미리 제시함으로써 현실과 같은 몰입감을 더해준다.

 

하지만 익숙한 것을 조금씩 비틀어 낯설게 만들 때 찾아오는 신선함은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유쾌함까지 선사한다. 그렇기에 사실 신데렐라라는 잿빛 도상은 맥거핀이다.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처럼 보이지만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선물 포장지일 뿐이라는 것이다. 포장지의 시선을 잡아 끄는 색깔과 무늬가 내용물의 기대감을 끌어올려 주지 못하게 된다면 발길이 끊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는 대중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전형적인 신데렐라의 플롯만으로 전달하는 게 과연 매력적인가를 고민해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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