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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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관념적 미술관의 하반기 기획전 <필자의 세계: 신성은 展>에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본 전시를 해설해 드릴 도슨트 한서밀입니다. 이번 전시는 아트인사이트 셀프 큐레이션 글 기고 이벤트와 연계되어 기획된 것으로, 현재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로 활동 중인 필자 신성은의 글쓰기 세계관을 시기별, 주제별로 나누어 깊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필자 신성은이 아트인사이트에서 100번째 기고 글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획전의 시의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저희 미술관의 이름이 관념적 미술관입니다. 따라서 본 전시는 한 필자의 내면이라는 관념적 대상을 또 다른 관념적 집약체인 문화적 오브제로 상징하여 ‘다분히 관념적으로’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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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부크라니움


 

관념적 미술관의 전시 기획 의도가 다소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리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 한 가지 예시를 들며 여러분의 이해를 도와드릴까 하는데요. 혹시 전시장 입구 위에 부조된 동물의 머리를 보셨나요? 맞습니다. 수소의 머리가 꽃 줄 장식과 함께 조형된 부조이죠. 단수형으로  부크라니움, 복수형으로 부크라니아라 불리는 이 수소의 머리 부조는 고대의 희생 제의를 단적으로 상징하며 고대 그리스 로마 등지에서 신전 제단의 기둥이나 벽면을 장식하고는 했습니다.


필자 신성은의 글쓰기 세계관을 다루는 전시 초입에 이 부크라니움 부조를 장식해 놓은 것은 필자의 글쓰기 시작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필자는 자신을 드러낸 글쓰기의 시작점을 2020년 경이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의 인생에서 글쓰기는 글을 초등학생 시절 부활동에서 이야기를 지었던 때부터 함께 한 것이지만 필자 본인이 지칭한 글쓰기 인생의 변곡점이자 제2의 시작점은 바로 이 무렵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글 안에서는 달라요. 글을 쓰며 느낀 건 나를 드러낼 필요가 있을 때 주저하면 글에 그 망설임이 고스란히 들어가더라는 점이에요. 글이 어떤 정보를 요구하는데 쓰는 사람이 주저하면 그 부분이 헛헛한 게 그대로 드러나요. 그게 싫어서 저는 글을 쓸 때 진솔하고 담백해져요. 글에서까지 ‘말 없는 사람’이고 싶지 않아요. 글 안에서 빈 말도 하고 싶지 않구요.

 

셀프 인터뷰 [Rain on me, Light on me]

 

 

당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었고, 필자의 개인사 측면에서는 필자가 앓던 극심한 우울증을 치료해 나가는 시기였습니다. 죽음과 가까웠던 두 가지 키워드 아래서 필자는 이대로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품었고, 이 본능은 작가 마음속의 기록에 대한 집념을 일깨웠습니다. 코로나 시국의 불확실성으로부터 공개된 지면에 글을 쓰고 싶다는 결심이 비롯되었으며, 이에 필자는 2021년 우울증을 다룬 한 단행본 만화책을 소개하는 오피니언으로 아트인사이트에 첫 글을 기고합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울증에 빠지기 시작한 당신이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자신을 아껴주기를 바란다.


[‘기분이 없는 기분’의 의미를 알았더라면] 中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우울증을 극복하고자 한 필자 개인의 욕구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으로 확장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을 기억하시나요? 판데믹 시기 평온한 일상을 잃고 현대인들에게 만연해지던 우울감은 그것을 목격한 필자로 하여금 자신의 사적인 글쓰기와 공익적인 측면이 맞물리는 순간을 경험하게 했을 것이고, 이는 곧 필자가 자신을 드러내어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심리를 극대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넓은 세상에 나만 이 문제로 속앓이를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 자체가 하루, 한 달, 한 해 더 살아볼 엄두를 내게 했다. 그래서 글을 다시 쓸 수 있을 만큼 집중력과 지성,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다면 나도 그런 글을 써서 내가 도움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마음에 맞는 문장을 주고 싶었다. ‘할 말’을 나누고 싶었다.


[한적하지만은 않은 글쓰기] 中

  

 

이처럼 필자 글쓰기 인생의 특정 시기에 따른 심리적 반향을 집약하여 여러분께 ‘관념적으로’ 보여드리는 것이 이 부크라니움과 같은 관념적 오브제입니다. 필자가 서양근세미술사에 깊은 흥미를 느껴 오래 공부한 영향으로 각 전시실의 메인으로 놓인 전시물들은 모두 서양근세미술의 모티프를 외양으로 띠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 및 전시 방식이 여러분께 잘 전달되었기를 바라며, 자, 이제 본격적인 전시 해설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금파리 모자이크 


 

제1 전시실에서 보실 작품은 ‘사금파리 모자이크’입니다. 따로 작품을 얹은 좌대가 없는 대신 1 전시실이라는 화이트큐브 전체가 모자이크 작품이 되었음을 아실 수 있습니다. 다음 전시실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벽면과 여러분을 둘러싼 삼면의 온전한 벽, 천장은 물론 바닥의 일부까지도 모자이크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자이크 미술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네, 어떤 분은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를, 또 다른 분은 이슬람 문화의 기하학적인 모자이크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방의 모자이크와 언급하신 미술사 속 모자이크의 차이를 한번 비교해 볼까요? 각기 다른 작품을 비교하실 때에는 재료, 기법, 재현 대상의 영역 차이로 접근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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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속 모자이크의 예

 

 

네, 고대의 모자이크와 달리 필자의 내면세계 모자이크에는 파스텔 색조가 많이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파스텔 색조는 기본적으로 필자의 색감 취향을 드러냅니다. 모자이크 색유리 중 유독 색감이 짙은 붉고 푸르러서 시각적으로 도드라지는 조각들은 당시 필자가 앓고 있던 우울증의 잔해로 추정됩니다.


또 다른 점이 무엇이 있을까요? 발견하셨나요? 맞습니다. 모자이크 일부가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움직이긴 하지만 이것은 미디어 아트가 아니라 엄연히 모자이크가 맞습니다. 눈속임을 하는 트롱푀이유도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희 미술관은 관념적 오브제를 전시하는 관념적 미술관이니까요. 필자의 아트인사이트 활동 초기를 조명하는 모자이크지만 필자의 마음이 반영되는 모자이크인 만큼 이 내면세계 모자이크는 ‘계속 완성 중이며 재조합과 재발견, 그리고 재의미화가 가능한’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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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료인 색유리는 사실 한 차례 와해되었던 필자 마음의 조각들로, 처음에는 다수가 끝이 날카로운 사금파리였으나, 이제 구체적인 형태를 재현하도록 고정된 부분들은 재료가 둥글게 다듬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재료의 출처와 가공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루는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읽게 되었다. (…)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는 위로가 될 듯 말 듯했다. 마음이 부서졌을 때도, 그래서 무언가를 포기했을 때도 제로나 마이너스는 아니라는 말 같은데 막상 나는 산산조각으로 살기는 싫었다.


(…) 앞서 언급한 시에서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다 했던가. 한동안 나는 사금파리 같은 유리 조각들을 웅크린 마음에 둔 채로 계속 베이고 상처 입었는데, 적어도 해가 바뀐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시간에 날카로운 파편의 끝이 닳아 둥그레졌는지, 아니면 내 마음의 외연이 넓어져 조각에 계속 찔릴 일이 없는 것인지….


[한적하지만은 않은 글쓰기] 中

  

 

필자 내면에서 모자이크가 만들어질 당시 제작을 위한 도안이나 방식이 정해진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필자는 좋아하는 것의 흔적을 따라 기억을 걸으며 색색의 사금파리를 줍고 그것들을 글줄로 고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읽는 일기가 아니라,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글을 쓴다면 나는 당연히 잘 아는 분야에 대해 쓸 줄 알았다. 그러나 글감은 의외로 규명해내고 싶은 것들에서 온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좋아하지만 왜 그런지는 아직 잘 모르는 것들’이다. 적게는 몇 번에서 많게는 수십 번씩 다시 볼 만큼 좋아해도 정확히 무엇에 끌리는지 쉬이 짚어낼 수 없는 것들. 아니면 어느 부분에 끌리는지 알지만 아직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는 것들.


[무형의 취향을 잡아내는 일] 中 

 

 

물론 필자에게 이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신경이 죽어가던 필자였기에 좋아하던 것을 다시 좋아하는 힘을 기르는 일마저 많은 에너지가 소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골목골목 작은 가게들이 있는 거리 산책, 편안한 분위기인 단골 카페에서의 독서와 일기 쓰기, 공감되는 글귀를 필사하는 시간, 우울증이 심해진 이후 듣지 못하던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게 된 일 등이 필자의 심리적 재활을 든든하게 받쳐주었습니다.


좋아하던 거리와 골목골목의 가게들, 산책로에 피어난 들꽃들, 글쓰기를 통해 삶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며 서재 및 작업실의 의미가 덧씌워진 필자의 방, 좋아하지만 선호의 원인이 마음에 차게 분석되지 않을 때 떠올리던 릴케의 글 속 ‘언젠가는 읽을 수 있는 외국어로 쓰인 책’ 등의 형상이 이 내면세계 모자이크에 나타나 있습니다. 필자가 글로 남긴 장면 장면들이 필자의 내면 모자이크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입니다. ‘계속 완성 중인’ 이 모자이크에서 글줄을 통해 고정된 이 형상들은 어쩌면 필자가 다시 쌓아 올린 자존감과 자아상과도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나 또한 내가 그려왔던 인생의 그림이 크게 변한 후로 쓴 글들이 내 정신을 바느질하듯 기워주는 것을 느꼈다. 내 공간에 대한 애정은 결국 삶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고개를 들며 나온 초기 징후 같은 것이었다.


- [한적하지만은 않은 글쓰기] 中

 

 

어떠신가요. 사금파리였던 것과 지금도 사금파리인 색유리들의 향연에서, 여러분은 필자의 치열한 사투 끝 애정이 느껴지시는지요. 자기도 모르던 사이 마음이 깨진 분들이 이 내면세계 모자이크의 방에서 작게나마 위안을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전시는 1 전시실에 한해 ‘촉각 전시’로 운영되오니 고정된 부분에 한해 모자이크를 만져보실 수 있습니다. 단단히 고정된 부분은 쉽게 훼손되지 않지만, 전시된 작품이니 조심스레 대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아직 색유리 조각들이 움직이는 부분은 사금파리 조각의 날이 서 있으니 만지지 않도록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계신 분들께지만 전하는 여담입니다만, 사금파리라는 단어는 필자가 어릴 적 주변을 관찰하고 관찰한 바를 말할 때 그 관찰력이 ‘사금파리 같다’는 말을 자주 들어 익숙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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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에서 필자의 글쓰기 변곡점 및 새로운 시작점을 상징하는 부크라니움으로 시작하여 아트인사이트 활동 초기 필자의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사금파리 모자이크를 감상하셨습니다.


다음 전시실에서는 필자가 세상을 탐미하던 주된 감각이 다른 감각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와 안정기에 쓴 글들을 또 다른 관념적 오브제로 대표하여 여러분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기에 앞서 전시의 도입부와 1 전시실에 걸린 작품들-글들을 충분히 둘러보실 시간을 드리고자 합니다.


관념적 미술관의 전시와 큐레이터 한서밀의 해설은 계속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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