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형의 취향을 잡아내는 일 [사람]

글 입력 2021.06.1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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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읽는 일기가 아니라,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글을 쓴다면 나는 당연히 잘 아는 분야에 대해 쓸 줄 알았다. 그러나 글감은 의외로 규명해내고 싶은 것들에서 온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좋아하지만 왜 그런지는 아직 잘 모르는 것들’이다. 적게는 몇 번에서 많게는 수십 번씩 다시 볼 만큼 좋아해도 정확히 무엇에 끌리는지 쉬이 짚어낼 수 없는 것들. 아니면 어느 부분에 끌리는지 알지만 아직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는 것들.


그런 대상과 주제에 대한 생각들이 내 안에 가득해져 웅웅거릴 때가 있다. 그 소리를 명확한 말로 바꾸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때 글을 쓰게 된다. 싫어하는 것에 말을 더 많이 보탤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좋아하는 것들, 좋아서 자꾸 생각나는 것들에 더 몰두한다. 애정과 관심을 이끌어내는 대상을 뜯어볼수록 나는 새로운 것들과 만나고, 종국에는 나 자신도 만나게 된다.

 

 

 

1. Cameo Lover



몇 해 전 콘텐츠 스토리텔링 강의를 들었을 때 강사님이 각자 기획하는 콘텐츠의 톤을 마련하는 과정으로 ‘자기만의 명작’을 소개해보자고 하셨다. 마음이 지쳤을 때 위안을 주거나 다시 힘을 내게 해 주어 계속 보게 되는 콘텐츠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의 연료가 바닥나 만사 무미건조할 때 무엇을 보는지 떠올려보다 팝 가수 킴브라(Kimbra)의 'Cameo Lover'라는 노래와 그 뮤직비디오를 소개했다.

 

    



 

'Cameo Lover'는 가히 연심의 축제 같은 노래다. 듣고 있으면 누군가를 오래 좋아한 사람이 있고, 이제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려는 사람이 있는 한 편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내 마음을 알아주길, 내가 여기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당신의 마음을 열어달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화사하고 동화적인 색감의 의상, 대칭적인 대열을 이룬 사람들의 춤과 악기 연주는 애정의 숱한 두드림을 축제 같은 분위기로 전달한다.


화사한 색감의 영상미와 선율 자체도 취향이지만 언뜻 보면 밝기만 한 분위기 안에 애타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 좋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 그 두근거림이 다시 일어난다. 그래서 지친 마음이 버석거리다 못해 비어 있는 것 같을 때 긴히 들었다. 이 노래를 듣고 기쁨이나 달콤함, 애틋함이나 초조함 한 점이라도 느끼면 내가 아주 텅 비어 있지는 않다고 안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노래를 멘탈 상태의 시금석처럼 쓰던 시기는 오래전에 지나갔고, 혹여 다시 그런 시기가 오더라도-물론 안 오면 제일 좋겠지만!- 이제는 나를 더 적극적으로 돌볼 지혜와 용기가 있다.


그럼에도 'Cameo Lover'를 여전히 집요하게 음미하는 이유는 이 곡이 명곡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가 내가 좋아하는 소리의 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너의 마음을 열라고 외치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겹겹의 소리들이 서로 부딪혀서 들을 때마다 가사와 영상, 이 청각적인 부분이 다 합쳐져 강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긴 시간, 그 사이사이에 뿌려진 크고 작은 애정이 상대에게 인지되는 순간 그것들이 하나로 모여 비처럼, 빛처럼 단숨에 쏟아지는 것 같다. 하나 되는 화음이라기보다는 겹쳐져 부딪치는 듯한 소리들이 그런 인상을 강화한다.


샹들리에가 흔들려서 잘 세공된 수정 장식들이 저들끼리 부딪치면 소리뿐만 아니라 빛 조각도 사방에 흩뿌려질 것이다. 그 장면의 시각적인 화려함과 아찔함만을 떠내어 청각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그게 꼭 'Cameo Lover'의 그 부분일 것만 같다. 음들이 서로 부딪히지만 소리가 찢어지진 않는다. 저들끼리 마찰하지만 그조차 계산된 조화 안에 있어 긴장감 있는 쾌미를 전하는 그런 소리가 좋다. 이걸 깨달은 후로 나의 청음 취향에 이런 조화로운 마찰의 소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전보다 표현이 내가 받는 인상에 가까워졌지만 아직 그 소리에서 받은 인상을 영감 삼아 머릿속으로 일러스트를 그리는 단계인 것 같다. 이대로 만족할 때도 있지만, 나는 'Cameo Lover'의 클라이맥스를 더 직관적이거나 아예 전문적인 지식으로 간결하게 풀이하는 말을 마련하고 싶다. ‘~한 소리를 좋아해요’ 라거나 ‘~로 연주해서’ 혹은 ‘~의 이펙트를 걸어서 ~한 효과가 나는 소리가 좋더라고요’처럼 명쾌하게 전달해 보고 싶다.


한때는 지인들에게 들려주며 이 부분이 어떤 것 같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별 반응이 없거나 내가 규명하고 싶은 것과는 다른 포인트에서 다른 표현을 해 줬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딱 떨어지는 표현을 얻을 때도 있지만 적어도 이 건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내가 원하는 말로 입이 트일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나를 사로잡은 감각적인 순간이 톡 튀어 오르는 깨달음이 될 때까지.

 

 

 

2. 무형의 취향을 잡아내는 일



천사나 뮤즈의 손길이 내 손 위에 얹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린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꽂힌 무언가에 계속해서 다가가 시간을 쓰고 애정을 보낸다. 좋아하는 것 안에 든 내 취향의 실체를 만날 때까지 걸리는 그 시간을 나는 그저 기다림이라 부른다. 능동적인 기다림의 시간은 예상외로 다채롭다.


끌리다 못해 그 감정을 글로 정리하고 싶은 작품 하나를 돌려 보고 듣는 것만으로 답이 나오지 않을 땐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가장 쓰고 싶은 것’ 주위의 소재들을 건드려 본다. 같은 가수의 다른 노래를 들어도 좋고, 상관없는 노래를 듣기도 한다. 다만 다른 노래를 듣다 비슷한 구석이 있으면 그 곡을 'Cameo Lover'와 엮어 기억해둔다.


한편으로는, 즐거운 기억과 함께 있어 그 순간을 더 빛나게 기억하게 해주는 음악이나 외로운 순간에 버팀목이 되어준 음악에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들, 그중에서도 애청곡을 한데 모아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탐구하고 영업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차곡차곡 내공을 쌓다 보면 언젠가 'Cameo Lover'에 대해서도 쓰고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다 점점 기억과 감성만으로 ‘음악 글쓰기’를 하기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관련 지식을 채우려고 노력 중이다. 아티스트들의 인터뷰나 다른 사람들의 음악 에세이를 읽어 보기도 하고 음악 웹진 Izm에 들어가 앨범 리뷰를 읽어 본다. 장르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웹진의 라이브러리 카테고리를 뒤적거린다. 그렇게 점점 음악을 소재로 한 글쓰기에 진심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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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은 이렇게 새로운 꾸러미의 글을 쓰게 하고, 내 관심사가 아니라 여기던 것에 욕심을 내게 만들고, 전에는 낯설고 어렵다 여긴 분야의 지식에 마음을 열게 한다.


이는 다른 매체의 작품이나 다른 일에서 이 정도로 ‘알고 싶은’ 취향을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꼭 쓰고 싶은 소재가 있는데 아직 내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이 모양을 전부 갖추지 못했을 때, 혹은 그것을 써낼 능력이 현재는 미진하다고 여겨질 때 차근차근 작품의 일부를 뜯어보거나 다른 작품들을 접하며 새로운 것을 배운다. 쓰고 싶지만 아직 멀리 있는 것에 직선으로 다가가는 길은 아니더라도, 지금 내 손에 닿는 것들로 새로운 관심을 싹 틔우다 보면 언젠가는 가장 알고 싶었던 것 근처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과정까지 내가 뭔가를 애호하는 방식에 포함된다.


기다림의 시간은 몇 주가 걸릴 때도 있고 해가 바뀔 때도 있다. 비교적 빨리 잡아낼 수 있는 시각적인 요소 외에 어떤 작품이나 순간의 주된 정서, 운치, 메시지와 힘은 무형의 아름다움들이다. 그 무형의 취향을 잡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러나 이것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고 의식 한편에 묵혀두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언어로 풀고 싶은 모호한 아름다움은 내 머릿속에 항상 몇 가지씩 들어차 있다. 어쩌면 기다림의 시간은, 내 이해를 넘어선 좋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과정을 겪게 만든 것들은 결국 나를 알게 해 준다.


이와 관련하여 릴케의 말이 떠오른다. 그가 젊은 시인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 만든 그 유명한 책을 읽을 때면 매번 그의 통찰에 감탄하고 반하게 된다. 다음의 얘기 또한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당부했던 삶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당신 마음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를 가져주십시오. 그리고 물음 그 자체를 닫혀 있는 방처럼,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해주십시오. (...)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 송영택 역,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주)문예출판사, p. 35)

 


릴케는 그리하면 먼 미래에는 해답을 살아가게 될 거라고 덧붙인다. 인생에서 이해하기 힘든 문제를 언젠가는 읽을 능력이 생길 ‘아주 낯선 언어로 된 책’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에 얼마나 위로를 받았던가. 무형의 취향을 알아내고 싶은 조급함 또한 물음을 살아가자는 마인드로 달랠 수 있었다. 릴케의 글을 만나기 전에도, 그의 글을 만난 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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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면의 선반



형상 없는 취향을 간파하고 나서 또 한 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무형의 아름다움을 좇다 드디어 그것의 윤곽을 잡게 되었다면 그 형체를 새겨놓아야 한다. 형체 없는 것을 실컷 좇아 놓고 감각과 생각만으로 그것을 기억하게 둔다면 흘러가도록 놓아주는 꼴이다. 내게는 생각을 맺어놓는 수단이 글이다.


글을 쓰는 건 무형의 취향에 대한 생각과 그걸 찾는 데 들인 시간, 과정을 정리하며 사랑하는 작품의 편린이나마 가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너무 좋아서, 나도 그 작품에 뭔가를 하고 싶어서 내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나의 언어로 마음에 새겨본다.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감상은 진정 작품에서 비롯된 내 것이어서, 언어로 새기고 나면 그 작품이나 그 순간을 보지 않아도 내 안에서 꺼내 와 다시 푹 빠질 수 있다.


누군가의 작품 말고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간들, 소중한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따스한 순간들도 그렇다. 내가 느끼지만 손으로 잡을 수는 없는 것들. 마음에 드는 햇빛의 색채나 각도 같은 걸 무슨 수로 가지겠는가.


아쉬운 대로 일상 속 미적인 순간을 글로 고정해 본다. 그런데 고정이란 게 박제의 의미는 아니다. 박제라 하기에 글짓기는 유동적인 행위이고 파생을 부르는 행위다. 글을 쓰기 전과 쓰는 동안, 그리고 쓰고 나서의 생각의 결이 또 다르다. 더 깊은 생각을 발견할 수도 있고 전에 갖고 있던 생각과 당장 쓰고 있는 글의 주제가 예상치 못하게 이어질 수도 있다. 그 과정을 모두 거쳐야 나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쓰고 싶은 무형의 아름다움을 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새롭게 파생되는 생각까지. 취향을 발단으로 하고 싶은 말이 늘어나 다음 글을 부르게 된다.


기다림 속에서 작은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트인 시야로 드디어 낯선 언어로 된 책을 읽어 보고, 그 내용을 내 언어로 되새기며 나를 매료시킨 순간들을 가져본다. 그리고 글 쓰는 동안 생각이 발전하고 불어나는 것을 느낀다. 공들여 포착해 놓은 무형의 취향과 그것에 반응했던 내 마음의 어떤 지점에 대한 정보, 생각의 파생물들을 모아 내면의 선반을 채워 넣는다. 필요할 때 그것을 꺼내어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도록. 문장 하나하나 열심히 빚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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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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