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목싸목 S의 골목길] 열정 열정 골목

글 입력 2022.07.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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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책하는 고양이


 

S의 성격을 굳이 따지자면 산책하는 고양이에 가깝다.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고 그래서 사실 산책하는 고양이는 스트레스나 위험 사항이 있는 것이라는 고양이 집사들의 열변을 알지만 단지 그 애의 성격을 친근한 동물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렇다. 골목 산책은 S의 취미이자 활력소이고 S가 어떤 공간에 머무는 시간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S가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그 애는 엄마의 친구분 집에 살고 있었다. 그분이 타향살이를 하느라 비어있는 집을 관리하며 사는 것이었는데 사실 큰 호의를 받은 셈이었다. S가 용산 집 근처에서 제일 좋아하던 것은 하나의 조그마한 ‘거리’였다. 후일 그가 연남동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골목골목 숨은 가게들을 찾아내는 재미와 모퉁이를 끼고 돌 때마다 결이 다르게 펼쳐지는 정취를 즐겼기 때문이었는데, 아예 열정도라는 하나의 ‘거리’가 용산 집 근처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우울에 휩싸인 그녀를 밖으로 유인할 한 가지 거리가 되어주었다.

 

그 거리의 이름은 비교적 최근에 붙은 새로운 것이었다. 열정도. 검색해보니 열정도 거리는 일종의 인스타 핫플에 해당했다. 쇠락한 옛 인쇄소 거리에 청년들이 힙한 감성으로 가게를 열어 사람들을 모은 것이라 했다. 열정도에는 두 줄의 체인처럼 길게 늘어진 상점들로 이뤄진 메인 거리가 있었다. 그 건물들 각각의 뒤편에는 또 다른 가게들이 있었다. 대로만큼 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짧지도 않은 그 거리에 제법 많은 가게가 숨어 있던 셈이었다. 대부분은 음식점이었다. 그곳 가게들은 주로 오후에 열렸으며 밤이 깊어지면 술을 파는 맛집들이 또 문을 열었다. S는 인터넷이나 인스타를 검색해보거나 직접 돌아다니며 어떤 맛집들이 있는지를 파악했다.

 

그런가 하면 여기는 작은 소품샵, 저기는 빈티지 옷가게, 또 여기는 향초를 만들어 파는 가게. 거리 끝쪽에는 또 하나의 옷가게가 있고. 메인 거리 뒤쪽에 있는, 슬쩍 지나가며 보았던 가게는 과연 인테리어 사무실이 맞는지를 종종걸음으로 확인해보고 다녔다. 여기에 손님이 많이 오는가 싶은 비교적 드문 업종의 가게들도 유리창 너머로 기웃기웃 눈도장을 찍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 유리창에 자기 그림자를 비추면 딱 그 자리만큼 속이 반투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들어갈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게와 자신이 들어갈 용무는 하나도 없는 가게, 자신이 한 번이라도 들어가 봤던 가게와 들어가 본 적 없는 가게를 구분하며 소소한 도장 깨기를 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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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정도 메인 거리에서의 기억



메인 거리에는 비교적 큰 카페들과 음식점들이 있었다. 걸음마다, 시간대마다 맡을 수 있는 냄새들은 각기 달랐다. 낮에는 보통 옅은 원두 향이 감돌았다. 어떤 모퉁이 앞에서는 낯선 고수 향기가 기름진 소고기 육수 냄새와 함께 났다. 주로 낮에는 카페와 쌀국수 집 등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거리 끝부분에 있는 감자튀김 전문점에서부터 지글거리는 기름내와 그것에 튀겨진 감자의 냄새, 그리고 S에게 그보다 식욕을 돋우는 양파 튀김의 냄새가 흘러나와 거리를 물들였다.

 

그러다 밤이 깊어 그 거리를 걸을 때면 레트로 컨셉의 오락실 네온 조명이 시야를 넘어 뇌리에 강렬하게 들어오고 매콤한 향이 코를 찔렀다. 매운 주꾸미 요리로 제법 유명한 집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 주꾸미 집 앞에는 박스 한 면을 뜯어 만든 간이 입간판에 주꾸미 그림과 함께 ‘쭈꾸 싶어?!’라는 말장난이 쓰여 있었다.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그녀는 매운맛에 죽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 입간판을 아직 밝은 오후 시간대에 지나쳐 보기만 할 뿐 가게에 직접 들어가 주꾸미 요리를 먹어본 적은 없었다. 다만 겨울 저녁에 사람들이 몸 덥히며 먹기에 나쁜 음식은 아닐 거란 생각을 했다. 둘이, 혹은 삼삼오오 일행을 모은 사람들이 많이 서 있는 것을 보면. 목도리에 얼굴을 더 파묻고 그들이 줄 서 있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매운 냄새는 곧 겨울바람과 함께 희미해졌다.

 

어쩌면 그 시기 그녀는 혼자 있던 나날이 더 많아 청년 사장들의 열정 어린 그 거리에서 유명한 주꾸미 집이나 곱창 집 같이 걸진 음식에 분위기 왁자한 식당을 들를 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종종 식사를 해결하던 가게들은 보다 단출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뭣하면 포장해서 집에 가서 먹기도 복잡하지 않은 그런 식사들이었다. 주로 샌드위치로 구성된 카페 브런치 메뉴와 디저트류 같은 것. 큰 개를 무서워하지만 샌드위치를 먹고 싶을 때는 철문을 열고 애견 카페에 몇 번 갔다. 그 카페가 제일 식사다운 브런치를 팔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시 개와 함께 있는 것, 사람을 좋아해서 종종 헥헥거리며 다가올 준비를 하는 개들이 너무 낯설어 자주 가지는 않았다.

 

전통과 현대의 퓨전 컨셉 카페가 으레 그렇듯 자개장 문짝을 벽 장식이나 테이블로 쓰던 두유 전문 카페는 위장 문제 때문에 앞으로 비건 생활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녀가 처음으로 비건 메뉴를 인지하고 만난 곳이 되었다. 그곳 앞은 지날 때마다 생명력 강한 꽃들로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목이 기다란 화분에 꽃을 예쁘게 심어놨었고 아스팔트 길 위에선 쉽게 보기 힘든 나비들이 종종 그 위에서 놀다 갔다. 그녀는 그 앞을 지날 때 푸른 계열의 진보라색 팬지꽃을 자주 눈에 담았다. 어렸던 눈에 한없이 벙글어져 어린 S의 손바닥만 하던 판판하고 커다란 꽃이 낯설어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별로 좋아하던 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본 보라색 팬지꽃은 그 쨍한 빛깔 때문에 누구보다 생생해 보였고 그게 참 예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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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카페 R: 탐색에서 한 점 안정의 공간으로.



가까이 가야 맡을 수 있는 향이 있다. 작은 들꽃의 향기, 은은한 향수를 뿌리던 친구의 목덜미에서 나던 향수 냄새, 며칠 전 입었던 외투를 다시 걸칠 때 전에 뿌렸던 향수의 잔향이 옷소매에 아직 묻어 있는 것,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던 동생의 그래도 아직 아기 같던 살 냄새…. 그리고 카페 R의 원두 향이 그랬다. 카페 R은 열정도에서 S가 사랑하게 된 카페다. 상점들의 체인이 잠깐 끊어지는, 그러니까 체인의 틈새에 있는 작은 골목들 중 하나에 카페 R이 있었다. 골목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작은 카페였기 때문에 카페 R의 원두 향은 그 카페 근처로 가야 맡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미 몸이 카페인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던 상태였으므로 그곳에서 커피를 자주 마시지 못한 그녀가 메뉴판에 허브티도 없던 그 카페를 늘상 찾은 이유는 커피 자체에 있지 않았다. 어떤 원두를 쓰는지, 그곳 원두 조합이 취향에 딱 맞는지 어땠는지 따지기에 S의 위장은 이미 너무 많은 스트레스와 카페인을 받아버린 상태였다. 사실 S는 그냥 그 카페 R이라는 공간, 그 분위기 자체를 사랑했다.

 

카페 안은 살짝 어둑하다 싶을 정도지만 막상 테이블에 앉으면 앉은 이의 눈에 딱 맞게 아늑한 조도를 가진 테이블 등,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테이블 네 개가 들어가는 아담한 공간. 회색 벽, 문학과 라이프 스타일 잡지, 달고 새하얀 크림 아래 콜드브루가 전해주는 이질적인 매끄러움과 차가울 정도의 깔끔함-속이 아파도 새로 간 카페의 아인슈페너는 맛봐야 한다-, 자주 가도 지겹지 않게 이따금 추가되는 새로운 메뉴, 친절한 사장님과 직원분들,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한 분위기. 거기에 카페 내부에 딸린 화장실도 깨끗했다.

 

한번 인식하고 나서 음료의 맛이나 그 카페가 가진 공간감, 나른하고 아늑한 분위기 등등보다 중요해진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카페를 채우던 음악이었다. 당시 S가 음식 말고 잘 소화 못 하던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이 참 애석하게도 음악이었다. 노래의 어느 부분이 트리거가 되어 S의 우울을 퍽 터트리거나 넘실거리게 할지 몰랐으므로 S는 노래를 ‘함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더불어 우울증으로 노래를 듣는 집중력도 떨어졌고 노래의 변화무쌍함을 따라가길 힘들어한 듯하다.

 

그녀가 거기 음악을 잘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흘러나오는 곡들의 통일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카페 R은 벽과 천장 사이에 붙어 있는 스피커를 통해 멜론 음악 탑 100 음원을 트는 게 아니라 그날 정한 하나의 앨범을 작은 오디오 플레이어로 틀었다. 그리고 그 앞에 그날 튼 앨범의 케이스를 비스듬히 기대 세워두어 앨범 아트가 보이게 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잠시 고민하다 카페 직원에게 ‘죄송한데 지금 나오는 곡 제목이 뭐예요?’라고 물어볼 필요 없이 어떤 아티스트의 어떤 앨범에 있는 몇 번째 트랙인지도 바로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카페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동떨어지지 않는 음악들을 틀었기에 기본적으로 그녀의 취향과 맞아 더 잘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그녀는 조금이라도 책을 읽고 싶어지거나, 조금이라도 일기를 써 보고 싶은데 우울감과 불안감에 잘 읽히지도, 잘 써지지도 않을 때 카페를 도피처로 삼았다. 공간을 바꾸면 조금이나마 읽고 쓸 수 있었다. 카페의 기능 중 하나가 ‘이완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한몫했다. 그렇게 산책 고양이 S는 집 근처의 여러 카페를 탐색하고 다니다 카페 R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듣는 음악은 거의 괜찮아. 여기 있으면 집에 가서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이 생겨. 그렇게 카페 R은 S가 안정감과 음악을 얻어가는 공간이 되었다.

  

탐색에서 안정으로. 모험의 장소에서 피난처로. 그렇게 열정 열정 골목에서의 여행은 성격을 달리하게 되었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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