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움직이는 축제, 파리 [도서]

Ernest Hemingway, <A Moveable Feast>
글 입력 2024.09.3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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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평범하지 않은 분이셨다. 썩 마음에 드는 묘사는 아니지만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그분은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나를 꿰뚫어 보시는 듯했다.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해주셨고, 가장 무서워하는 상황을 던져주셨다. 당시의 나는 한순간이라도 속이 편할 날이 없었다.

 

고3. 끼니를 걸러야 할 정도로 많은 일을 벌여두었고, 얼마 되지 않는 끼니마저 소화시킬 수도 없었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나를 진단하자면, 완전한 긴장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까지 하셨어야 했나-라는 섭섭함 섞인 말 대신,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해'주셨고', 가장 무서워하는 상황을 던져'주셨다'-고 하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많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영어 선생님이자 담임 선생님이셨기에 나의 대학 입시를 전적으로 담당하셨다. 많이도 울었고, 많이도 깨졌다. 누군가는 혹은 미래의 나조차 그건 별것도 아닌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인정욕구가 강하고, 싫은 소리를 견디지 못했던 그때의 나에게는 그만한 위기가 없었다. 벼랑 끝에 내몰리는 경험. 그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솔직함'뿐이라는 것을 배웠고.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시각을 넓혀주었다.

 

헤밍웨이를 좋아했던 나에게. 그가 왜 좋으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마치 엄마가 왜 좋으냐는 물음을 받은 아이처럼 한참을 고민하다, 끝내 잘 모르겠지만 그냥 담담하고 솔직한 문체가 좋다고 대답하였다. 형태를 만들어서 꺼낼 수 있는 말이 저것뿐이었기에 그렇게 대답을 한 것이지만. 지금도 저 대답에는 변함이 없다. 그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지만 딱딱하지만은 않으며 적절한 위트가 섞여 있고 무엇보다도 큰 생략이 매력적이다. 질리지 않는 문체랄까. 막힘없이 술술 읽히지만 머릿속은 빠릿하게 움직이게 한다. 솔직함의 미덕을 배워가는 나에게 헤밍웨이는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졸업한 우리들은 졸업 앨범을 택배로 받을 수 밖에 없었고, 내 택배에는 책 한권이 같이 들어있었다.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 그리고 그 책을 약 2년 만에 파리에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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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내게 언제나 영원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나는 평생 파리를 사랑했습니다. 파리의 겨울이 혹독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가난마저도 추억이 될 만큼 낭만적인 도시 분위기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아직 파리에 다녀오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하고 싶군요.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 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 1905년, 헤밍웨이와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

 

 

헤밍웨이에게 파리는 특별한 곳이다. 누구에겐들 그러지 않겠냐마는. 헤밍웨이는 파리를 사랑했다. 1920년대의 파리는 예술가들의 성지였다. 든든한 조력자이자 대모, 거트루드 스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타인 살롱에는 피카소, 고갱, 세잔, 마티스, 피츠제럴드 그리고 헤밍웨이를 비롯한 여러 유명한 화가와 작가들이 모였다. 그중에서도 헤밍웨이는 거트루드 스타인을 유독 잘 따랐다.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의 도입부에는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이다. (You are all lost generation)' 라는 말이 쓰여있다. 이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무능력한 자동차 정비공에게 쏘아붙인 말이다. 그녀는 전쟁에 참가한 젊은 이들은 모두 술에 취하기나 하고 아무것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헤밍웨이는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세대가 잃어버린 세대이고,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머리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며 공감하고 싶다. 내가 고전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어떠한 것도 특정한 시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반복되고 동일하지만 또 다 제각각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1920년대 파리의 젊은이들과 202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이다. 다른 것들을 각자 다 다른 이유로 잃어버린 것이겠지만 말이다.

 

헤밍웨이의 책을 읽다 보면 피식 웃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결코 유쾌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할까. 1차 세계대전 당시 운전병으로 참전했던 것, 그리고 기자와 특파원 일을 하며 기사를 작성했던 것은. 그를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만들어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이후 찾아오는 씻어낼 수 없는 결핍과 피할 수 없는 회의감은. 그의 작품 곳곳에 강하게 묻어서 실존에 대하여 자문케 한다.

 

한 문장도 버리지 않고 꼼꼼히 읽어야 했던 그의 장편, 그리고 단편 소설과는 다소 다르게. <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일기처럼 읽힌다. 내가 지금 있는 이곳 파리에 헤밍웨이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팡테옹 광장과 뤽상부르 공원, 심지어는 가을이 다가오는 이 변덕스럽고 까칠한 파리의 날씨까지. 그가 겪었던 것들을 내가 그대로 겪을 수 있다니. 헤밍웨이가 자주 다니던 단골 서점 'Shakespeare and Company'에서 < Fiesta >를 구매하여 나갈 때에도, 베르갈랑 광장을 지나 퐁뇌프 거리를 걸어갈 때에도. 설렘을 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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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읽었다. 뛸르히 정원에서 바게트를 먹으면서. 베르사유 운하가 보이는 벤치에서. 에펠탑을 보러 가는 지하철에서. 뤽상부르 공원에서 비를 피하면서는 같은 책을 다른 언어로 읽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7일간 야금야금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고. 단순히 재밌는 책을 완독했다는 기분을 넘어서는 감정을 느꼈다. 추석 연휴와 시차를 계산하여, 담임 선생님께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다.

 

젊음이 부럽다고, 타지에서 외롭지는 않냐며 연락줘서 고맙다고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은 좋아 보이셨다. 이곳저곳 헤밍웨이의 흔적이 남은 장소를 알려주셨고, 오늘 런던으로 떠난다고 말씀드리자 프림로즈 힐에서 꼭 노을을 볼 것을 강조하셨다. 나의 고등학교 3학년이 이제서야 끝이 난 것 같았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감정들과 경험을 똑바로 마주하고 새로 이름을 붙여서 재정리할 수 있었달까. 무엇인지도 모를 것들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요즘은 아무도 스키를 신은 채 산을 오르지 않고, 스키를 타다가 다리를 부러뜨리는 사람도 많다. 지금은 모든 것이 부러지는 시대이고, 지나고 보면 부러졌다 다시 붙은 자리가 더욱 단단해진다고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보다는 다리가 부러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몹시 가난했고 무척 행복했던 우리 젊은 날의 파리에서는 그랬다.

 

- <파리는 언제나 축제>, 290p


 

9월의 파리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뜨거워진다. 이 변덕스러운 날씨에 불평 않고 익숙하다는 듯 대충 모자를 뒤집어쓰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우습게도 삶의 태도를 배운다.

 

가슴이 찢어질 바에야 다리를 몇번이고 부러뜨릴 준비가 된 자들은. 그 어떤 가난 속에서도 행복을 향유할 수 있으리라. 나 또한. 언제까지나. 정말 중요한 것들을 정말 중요하다고 여길 수 있길. 예측할 수 없는, 통제할 수 없는,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이 파리의 비와 바람과 햇살을 똑똑히 기억할 수 있길. 내 삶의 모든 불확실함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길.

 

 

[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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