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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밝히자면, 나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못하다. 반대로 흐려지게끔 농도를 낮춰 나를 숨기는 일에는 꽤 열심이다. 사람의 무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상 영원히, 그리고 절대적으로 배타적이게 살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현실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모순과 역설을 몸 구석구석에 칠 한 것처럼 보여도 나름 이성적인 편이라 사회성이라는 것을 길러보고자 나를 알리는 한 걸음을 내디뎌 보려고 한다.

 

 

 

서론: 나를 움직이는 기본 공식.

[Opinion] 인간실격 - 비(非)인간 실격; 실로 인간은 누구인가?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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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의 Unseen Studio

 

 

일본의 소설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한다. 애정이나 동경보다는 흠모와 사모 사이의 어딘가쯤에서 방황하는 연민에 가깝다. 참으로 부끄러운 생애를 살 수밖에 없었겠다 싶음과 동시에, 자각하고 있었다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나 싶고, 또 나라고 별다른 것 없는 삶을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이나 있을까에 대해 의심한다.

 

내가 보는 세상은 다자이 오사무가 보던 세상에서 어느 쪽으로나 약 10에서 15도 정도 틀어져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에 큰 애정은 없지만 무조건인 혐오를 품거나 맥락 없는 공격성을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런 감흥도 자극도 없는 지극히 안정된 상태의 회한. 딱 그 정도에 달하는 척도에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본다.

 

 

 

본론: 너 T발 C야?

[Opinion] 호박과 마요네즈 - 낭만은 없지만 있어야만 했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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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의 Jr Korpa

 

 

말했듯이 나는 상당히 현실적이며 간혹 지나칠 정도로 냉정하다. 가뭄에 시달리는 감수성은 무덤덤함을 금세 회의감으로 변태시킨다. 번데기를 찢고 부화할 때쯤이면 타협이 되어 낭만은 그 껍데기로 남겨두고 현실 속에서 비실비실한 날갯짓을 반복한다.
 
나풀거림에 가까운 바람 소리는 낭만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꿈이라고 속삭인다. 이성은 현실에 충실한 태도가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거기에 맞장구를 친다. 그럴싸한 핑계 뒤에 숨어 살다 보면 몰아치는 현실의 벽에 잡아먹혀 삶의 여유 따위는 상실한다.

 

잡아먹히지 않으려 도망치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면 이미 잠겨 죽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서 있지만 더 올라갈 곳도 없고 내려가지도 못하는 곳이다. 이는 곧 결핍이다. 꿈과 낭만의 결핍. 생활고와 돈으로 가득한 현실. 아무개의 삶은 곧 내 삶이 됐고, 어느 쪽도 갈 수 없지만 어느 쪽도 안 가고 만다는 정신 승리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의지는 사라지고 의무만 남은 삶이지만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덤덤하게 버틴다.

 

 

 

결론: 대분화

[에세이] 나는 미치광이를 미치도록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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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의 Piyanut Suntaranil

 

 

지렁이는 밟으면 꿈틀하고 생쥐는 궁지에 몰리면 달려들지만 억눌림의 끝에 다다른 나는 분출한다. 내적 댄스를 추는 부끄러움이 많은 누군가처럼 내 마음속에서만 지구 종말 급의 욕망과 욕구가 폭발한다.

 

이 뒤틀린 일탈은 세상의 규칙과 질서를 무시하고서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동경으로 이어진다. 위대한 개척자의 여정이 아니라 그 앞에 놓인 모든 걸 뭉개며 나아가는 불도저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 뒷모습은 굳건하게 나아가는 영웅인 것만 같다.

 

싸이코패스 성향이 가득한 캐릭터에게 강렬하게 끌리는 건 아무도 모르게 저지르는 소심한 일탈이다. 누군가는 세상의 모든 족쇄를 끊어내고 나아간다. 누군가는 그 제약을 교묘히 휘둘러 자기가 원하는 걸 쟁취한다. 어느 쪽이라도 좋다. 내가 그들을 동경할 수밖에 없는 건 무언가를 확실하게 원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이어지는 길을 선명하게 그려나가는 태도 때문이다.

 

억눌리고 굽혀진 나와는 다르게 꺾일지라도 올곧게 서 있는 모습이 사무치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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