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실격 - 비(非)인간 실격; 실로 인간은 누구인가?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6.24 10:39
댓글 8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지간해서는 별 탈 없이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여지는 도덕적인 기준에서, 저건 좀 많이 아니다 싶은 사람에게 ‘사람 같지도 않은 놈’,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따위의 험담을 던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침 드라마에 과하게 몰입하신 분들이나 뉴스에서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흉악범 소식이 나올 때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너무 익숙한 표현이라 별로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요즘에는 글을 쓰는 탓에 사소한 것도 한 번 더 생각하느라 이런 말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인간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할 터인데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자, 나는 인간일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인간일까.

 

 


나는 광대로 소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에 깊게 공감한다. 당장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마음이 너무 달라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마당에 다른 사람의 심정을 알아차리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덧붙여 나는 공감 능력이 몹시 낮은 편이다. 낮다기보다 선택적으로 공감 능력의 값을 내리기도 하고 올리기도 한다. 나와 친분이 없거나 크게 득이 될 사람이 아니라면 내 공감 능력의 값은 거의 0에 수렴한다. 나를 생각해주고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에게 쓸 에너지도 부족해 효율적인 운용을 추구한다. 내가 아닌 사람이나 내 울타리 안을 허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있을 때는 그저 공감하는 척을 하며 최소한의 배려만 할 뿐이다.


아버지를 위해서, 아니 자신을 위해서, 그게 곧 아버지를 위하는 것이라 자신을 위한 게 되니 또 결론은 자신을 위하는 게 되는 그 모호함 속에서 아버지의 기대에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어린 시절의 그는 아버지의 수첩에 사자탈을 갖고 싶다는 속이 빈 애정을 휘갈겼다. 아버지가 사 온 사자탈을 쓰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췄다. 학교에서도, 친척들 앞에서도 언제나 익살스러운 모습을 억지로 끄집어내 자연스러운 척을 하며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의 모습을 보는 관중은 그 무거운 광대 짓에 가벼운 웃음을 터트리며 그 어린 소년을 재밌는 사람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의 얼굴 아래로 무겁게 가라앉은 알맹이에서는 눈을 돌리고 위로 떠오르는 가볍디가벼운 껍데기만 보고 그 사람에 대해 정확히 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들은 양반마냥 점잖 떠는 부류에 비하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런 부류는 적어도 자기 자신을 속이지는 않는다. 자신은 그럼 사람과 다른 척하며, 정확히는 정말 그렇다고 믿으며 나는 너의 속을 알고 있다는 듯 다가오는 그 위선자들은 되려 비난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보고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척 하면서 스스로가 좀 더 깨어있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착각으로 자기를 위로하고 싶을 뿐이다. 정작 위선자들의 기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기에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광대놀이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더 위의 선에 가깝다.


아무개가 품은 힘겨움은 직접 겪거나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면 진심으로 공감하고 공유할 수 없다. 내가 힘든 것에 어설프게 공감하는 척을 하는 사람에게는 환멸을 느낀다. 당신은 공감할 수 없음을 솔직하게 밝히고 들어주는 것만은 해줄 수 있다 말해 주는 사람에게 더 큰 위로를 받고, 더 큰 고마움을 느끼며, 더 크게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삐뚤어졌다거나, 속이 꼬였다거나, 성격이 모났다는 말이 나를 후벼 판다. 해도 내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그것들을 돌려준 사람들은 모른다. 광대 짓을 하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실격이라 말하는 그와 인간인 척하며 만들어진 착함을 덕지덕지 덧바르는 저 그런 척하는 사람 중에 실로 인간이라는 자격에 실격된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고 싶다.

 

 

 

인간관계



인간관계라는 것은 그 말의 형태처럼 인간과 인간이 형성하는 관계이며 인간 사이의 연결이다. 인간이 아닌 그 무엇과의 연결이나 그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는 인간관계라고 할 수 없다. 요컨대 인간과 인간이 모였을 때만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사람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신뢰라는 말을 누구나 한 번쯤, 혹은 그 이상, 어쩌면 귀가 닳을 정도로 들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사실이다.


나는 손에 갈고리를 쥐고 있고 이걸 던져 어딘가에 걸어야만 한다.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이 갈고리가 걸릴지 아닐지 확실하지 않을 정도로 구멍이 작다거나,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질 것 같은 고리에 던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면 갈고리가 걸릴 정도로 충분히 구멍이 크고 하중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고리에 던지려고 한다.


인간관계는 인간 사이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고 했다. 인간관계에 있어 갈고리를 던지는 행위는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려는 시도이고 그 고리는 믿음이다. 고리가 없는 곳에 갈고리를 던져봐야 의미가 없다. 아무것도 없는 벽에 갈고리를 던져도 고리를 던지는 것일 뿐이다. 관계를 만들려는 시도도 실패도 아니다. 그냥 던지는 행위다. 결국, 믿음이 없는 이는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 남을 신뢰하지 않는 것도, 신뢰할 구석이 없는 것도 인간의 자격이 없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손에 갈고리를 쥐고 있지 않다. 신뢰할 구석이 없는 자는 갈고리를 던질 고리가 없다. 어느 쪽도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최소조건을 부합하지 못한다. 인간이 아닌 자들 사이에서 인간관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인간 실격



고리가 없는 이들보다 더 열등한 것은 충분히 구멍이 크고 튼튼한 고리를 붙여놓은 척을 하는 쪽이다. 누가 봐도 문제가 없기에 갈고리를 던졌더니 어디선가 나타나 그 고리를 때버린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배신당한 그는 이제 어디에도 갈고리를 던지지 못한다. 위선으로 다른 이의 기회를 앗아간 자는 인간의 자격이 없음이 분명하며, 설사 있다 하여도 그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의 세상은 속아 넘어간 자에게 위로와 포옹 대신 비난과 질타를 안겨주고 사양하지 말고 넣어두라며 점잔뺀다. 세상은 자격을 잃었다.


그는 신뢰가 죄냐 묻는다. 신뢰는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신뢰에 배신당한 여인이나, 신뢰에 배신당한 여인을 향한 신뢰를 배신당한 그나 인간의 자격이 충분하다. 배신의 배신을 만들어낸 그 아무개가 가장 인간의 자격을 논할 가치가 없는 자다. 헌데도 그 아무개는 인간인 양 웃으며 살아갈 터다. 되려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고자 사자탈을 수첩에 끄적였던, 여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던, 자신에게는 인간의 자격이 없다며 자책만 하던 그가 인간으로서 실격했다며 마음에 병을 안고 앓아가다 쓸쓸히 저 하얀 곳에서 새하얗게 바래간다.


취업할 때, 지원자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지원자가 아니라 면접관이다. 회사에서 구를 대로 굴러 잔뼈가 굵었고,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 면접관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 중 일부는 적반하장으로 그 사람들은 보는 눈이 없다느니 하는 소리로 자신이 실격이라는 처지를 덮어버린다. 그를 매도하던 사회는 비인간에 찌들어 비인간을 보는 눈이 있는 면접관이다. 그들의 눈에 자신을 광대라 부르며 자책하던 그는 비인간으로서의 자격이 턱없이 부족했다. 인간으로서 실격된 자들이 그에게 내린 판단은 ‘비인간 실격’이다.

 

 

131.jpg


 

1김상준.jpg

 

 

[김상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8
  •  
  • 권은미
    • 컬쳐리스트 김상준님께.

      안녕하세요 에디터 권은미 입니다 :)

      저는 어쩌다보니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정의를 가진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네요.
      그래서 아직도, 아니 여전히 제 삶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을 갖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사실 전공 공부를 할 때도 "인간이 인간의 잣대로 인간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느끼기에는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 중 여러 방면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것 정도 입니다. 과연 정의를 말끔하게 할 수 있을까요? ^^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란 사람도 한 인간이고, 제 주변을 포함하여 글을 통해 만난 김상준님께서도 '인간' 이실테니까요 ^^

      아마 정의할 수 없음이 당연한 것이고 결국 정답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웃음)

      아트인사이트 기고 글을 통해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금 던질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늘 평안하세요.
      감사합니다.

      권은미 드림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BLURAH
    • 2021.08.16 00:25:46
    • |
    • 신고
    • 권은미안녕하세요, 권은미님.

      저라는 한 개인에 관한 정의도 제대로 내리지 못 하는 처지에 방대한 개인을 아우르는 인간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말씀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제가 내린 인간에 관한 정의가 있고 어느 곳의 아무개가 내린 정의가 또 존재하겠죠.

      이런 정의가 모이고 모여 참다운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류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ㅎㅎ
    • 0 0
  •  
  • waterloo
    • 안녕하세요. 지정현입니다.
       
      인간관계의 매커니즘에 대해 항상 고민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공식처럼 인간관계를 견고히 하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투입되는 값에 비례해 결과가 나온다면, 아마 세상에는 분쟁이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글 중에서 말씀하신 갈고리 얘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가끔씩 사람들의 기대, 신뢰 때문에 중압감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저에겐 얼마나 많은 갈고리가 걸려있을지. 누군가 갈고리가 매달린 쇠사슬을 힘껏 잡아당기고 있어  휘청거리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저 스스로 갈고리를 떼어버린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타인에게 큰 기대를 안하게 되기도 하고요.

      최근에 별 다른 날도 아닌데 저에게 선물을 해 준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 이건 또 어떤 갈고리일까. 하는 생각에 극구 사양을 했지만, 바라는 것 없이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제 생각이 나서 선물을 샀다는 겁니다.

      김상준 에디터님의 글을 천천히 읽으면서, 어쩌면 나 혼자 스스로 존립한다는 건 착각이 아닐까. 가로수가 쓰러질까 지지대를 받혀 놓은 것처럼, 저는 저에게 이어진 갈고리 없이는 홀로 서있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누군가 갈고리를 잡아당겨주기 때문에, 누군가 걸어놨기 때문에 굳건히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선물을 준 것처럼 나를 인간답게 해주는 건 결국 또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갈고리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나의 갈고리에는 얼마나 많은 의도가 담겼는지 말입니다.

      김상준 에디터님의 글 덕분에 현재 저의 상태를 점검해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BLURAH
    • 2021.08.16 00:28:08
    • |
    • 신고
    • waterloo안녕하세요, 지정현님.

      저의 작은 글이 도움이 됐다는 것이 누군가의 갈고리가 제게 남긴 상처를 치료해주네요 ㅎㅎ

      말씀처럼 인간은 개인으로는 존재하되 혼자로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갈고리는 상처를 남기지만, 어떤 갈고리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지정현님이 던진 갈고리는 누군가의 버팀목으로 남아있길 바랍니다
    • 0 0
  •  
  • 이다영
    • 안녕하세요, 상준님. 에디터 이다영입니다. :)

      왠지 모르게 입안에 계속 맴도는 씁쓸함을 애써 삼키면서 상준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건 무엇일까요. 그리고 내가 여태껏 맺었던 깊고 얕은 관계는 '인간'적인 관계일까요, 아니면 '비인간'적인 관계일까요. 이러한 질문들이 떠오르는 글이었습니다.

      문득 그런 말이 스치듯 떠올랐습니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인지하고 정신과를 찾아 치료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보다도, 정작 치료가 필요한 이들은 이 사람들이 아니라, 이 사람들을 정신과에 오게 만든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어디서 들은 말을 옮겨 적느라 말에 논리적인 비약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됐건, 제가 이 말이 떠오른 이유는 이것입니다. 결국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알며, '비인간'과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는 이들이, 도처에 널린 '비인간'적인 일들로부터 더 반응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럼으로서 '인간스러움'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상준님의 글에서 이 단락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광대 짓을 하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실격이라 말하는 그와 인간인 척하며 만들어진 착함을 덕지덕지 덧바르는 저 그런 척하는 사람 중에 실로 인간이라는 자격에 실격된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고 싶다.'라는 부분이요.

      단락에서 나타나는 '인간인 척'하며 만들어진 착함을 덕지덕지 덧바르는 위선적인 이들은, 실로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삶에서 단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거나, 고민할 필요를 못 느꼈거나, 고민만 했지 실천하지 못한 이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는 이런 결론에도 도달했습니다. 계속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더러운 가면을 쓰지 않도록 채찍질하는 것만이 가장 '인간스러운' 일이라는 결론입니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으면, 서로의 '인간스러움'에 대해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세상이니까요. 똥은 더러워서 피하면 그만인 세상입니다. 그냥 까놓고, 솔직하게, 모든 인간들이 '인간스러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요.

      씁쓸한 현실에 대해서 담담하고 차분하게 풀어내는 상준님의 글로 인해,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잠시 멈춰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다시 탐독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네요.

      좋을 글 기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준님의 나날은 늘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BLURAH
    • 2021.08.16 00:30:18
    • |
    • 신고
    • 이다영안녕하세요, 이다영님.

      인간실격을 일는 내내 저 또한 그 씁쓸함의 여운이 짙게 남았습니다.

      책을 완독하고 난 이후에도 그 씁쓸함이 사라지지 않아 이렇게 글까지 썼네요 ㅎㅎ

      다소 날이 선 글이었지만 세상에는 인간다운 사람이 더욱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영님의 주위에는 부디 인간다운 인간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 0 0
  •  
  • jo__oy
    • 안녕하세요. 안지영입니다.

      우선, 글의 앞에서 언급해 주신 것처럼 ‘인간’의 정의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상준님의 글이 더 반가웠던 이유는 바로 최근에 제가 가장 관심 있었던 주제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인간과 인간이 모였을 때만 형성할 수 있는 인간관계.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쩌면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서로에게 ‘신뢰’라는 중요한 요소가 충족되어야 좀 더 인간다운 관계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기준에서 인간적인 모습이 조금 엇나간다면 그마저도 '인간실격'으로 인식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다운 모습을 벗어난, 비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비인간실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인간실격>을 읽고 기고하신 글을 다시 향유하고 싶네요. 좋은 글과 함께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BLURAH
    • 2021.08.16 00:31:31
    • |
    • 신고
    • jo__oy안녕하세요, 이다영님.

      제가 서 있던 곳과는 다른 곳에서 바라보며 만들어낸 의견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누군가는 그것을 깨닫는 것 만으로도 인간이라는 자격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곘네요 ㅎㅎ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