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는 미치광이를 미치도록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글 입력 2020.10.09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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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인류의 역사를 곁에서 함께하며 사방팔방에서 자신의 존재를 피력했다. 사회나 역사 시간에 배웠던 시체의 산을 쌓아 올린 전쟁들과 선거철이 되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유세 차량이 돌아다니는 것도 갈등 때문이며 나 또는 당신이 친구, 가족, 혹은 연인과 어디에 갈지 침 튀겨가며 떠들어대는 이유도 갈등이다.

 

하지만 이렇듯 사회를 어지럽히기만 할 것 같은 갈등 덕분에 태어난 예술 작품이 태어난 경우도 많았기에 예술에서도 취향이나 도덕, 가치관 따위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다수의 윤리나 가치관에 들어맞지 않는 예술은 언제나 질타받고 매도됐으며 이런 취향을 가진 이들도 언제나 피해자였다.

 

 

 

사이코패스 - 어쩌면 부러운 사람


 

사람의 심리나 정신세계는 마치 바다와 같아서 꾸준히 연구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더 많다.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정확한 것은 모르나 일반인인 내 처지에서 정신학은 다수가 공유하는 공통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잡고 이 기준에 어긋나는 이를 소위 말하는 정신 이상자로 분류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근래에 각종 미디어에서 캐릭터로 차용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분류되는 사이코패스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사이코패스들의 특징은 우리가 사회에서 공유하는 가치관들이 결여된 부류로 남을 해하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언제, 어떤 이유로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이 비어있음이 비어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데 우리는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불안해하는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대부분 사람들은 외출할 때 반드시 챙겨야 하는, 달리 말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항상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이 있다. 지갑, 핸드폰, 시력이 나쁜 사람들이라면 안경, 차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차 키가 이런 물건들에 해당하며 이런 것들이 내 수중에 없는 경우 우리는 불안해하고 어디에 두고 온 것인지 또는 잃어버린 것인지 걱정한다.

 

재밌는 점은 가끔은 꼭 필요한 게 없을 때가 더 좋은 일도 있다. 외출할 때 스마트폰이 없다면 우리는 연락도 연락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그 지루한 시간을 뭘 하며 버텨낼 것인지 걱정하며 불안해한다. 분명 짜증 나고 불안한 상황이지만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오랜만에 집중해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에서 여유를 찾을 수도 있고, 항상 화면 쳐다보느라 지쳐있는 눈도 쉬고,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체크하느라 외면했던 눈앞의 친구와 좀 더 온전히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을 두고 나왔지만 그날 하루가 좀 더 알차게 흘러가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마치 우리가 일부러 스마트폰을 두고 나오기로 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많은 사회 속에서 살다 보니 이따금 감정과 사회적 관념이라는 게 필요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서비스직에서 일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을 유달리 자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관용과 아량을 베풀어 이해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의무로 주어지는 처지에 있으니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되려면 꼭 필요한 것은 맞지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이럴 때마다 감정의 한 편에 존재하는 결여가 부러워진다.

 

 

 

혁신적인 또라이의 쾌감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는 못 먹기 때문에 대신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먹방을 즐겨 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대리만족이라는 것은 우리가 각박한 사회에서 잠시나마 숨통을 틀 수 있는 합법적인 환각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울고 싶은 날에는 슬픈 영화나 노래를 찾고 속이 답답할 때는 화려한 액션 영화를 찾으면서 실제로 하기 어려운 일들을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겪는 것에서 약간의 후련함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문득 나는 지나친 감정의 범람에 너무 오래 절여져 있었나 싶었다.

 

좋아하는 만화, 영화, 혹은 드라마 캐릭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한니발, 데드풀, 조커, 모리아티 교수. 사이코패스 기질을 여감없이 보여주기도 하나 이들은 모두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이나 관념, 혹은 PC라고 부르는 것들을 쥐뿔도 신경 안 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관과 마음의 평화 혹은 인생의 성취감뿐이다. 오로지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그 태도에서 오는 희열감 때문에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그들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내 취향에 대해 독특하다거나 다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을 볼 때 내가 대중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인지할 수밖에 없고 그 덕에 나는 감정의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광기에 미친 듯이 홀리다


 

마치 이들을 찬양하는 듯한 어조로 흘러가는 기분이 들지만 저런 캐릭터들을 눈앞에서 마주한다면 아마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한 공포를 느낄 확률이 높다.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지라 나는 어떤 일에도 확정적인 결론은 내리지 않기에 내 나름의 확실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다. 그런데도 나는 이들의 매력을 떨쳐낼 수가 없는 것이 미치광이라는 낙인에서 비롯되는 광기가 나를 점점 홀리도록 만드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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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via Bloody Disgusting

 

 

최근에는 한니발 시즌3를 보는 중이다. 기존의 사이코패스 캐릭터들과는 달리 신사적이고 기품 있는 태도 속에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광기를 품격있게 숨겨둔 태도에서 묘한 섹시함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이 캐릭터에게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끈질기게 추구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에 순수하게 미쳐있는 그 태도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진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이 시행되면서 나는 내 진로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왔고 이 일 저 일 꽤 다양하게 해봤지만 흥미가 동하거나 꽤 재밌는 일은 있어도 정말 좋아하는 일은 아직 못 찾았기에 거기에서 오는 공허함이 있다. 그 공허함을 채울 방법을 아직 못 찾은지라 조금 잘못된 길인 것 같기는 하나 한니발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아슬아슬하게 한계를 유지 중이다.

 

지금 내 장래 희망이 미치광이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마 그 즉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뱉는 순간 모두가 나에게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할 게 뻔하니 얼마나 쉬운 일인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말로 뱉는 재주를 배운 덕분에 이런 헛소리를 하고 있으나 장난스러운 이 말에는 내 진심이 가득 담겨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에 미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인생에 대한 갈증이 채워지는 날이 없어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에 지금도 미칠 것 같다. 어차피 미칠 거라면 좋은 쪽으로 미쳐버린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싶다.

 

세상을 바꾸는 건 천재 아니면 미친놈이라고 했으니 한 번 사는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으나 머리가 나쁜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미친놈이 되는 것밖에 없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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