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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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어요."라는 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일 것이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눠보자면, '계획 없이 살겠다는 말을 느슨하게 바꿔 표현한 게 아닌가?, 능동적이지 못한 인생을 살겠다는 건가?' 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쪽과 "흘러가며 산다"는 말에 공감 혹은 긍정하는 사람들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여름의 초입까지만 해도 필자는 전자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마 거의 평생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표현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결과 매번 예능 <아빠 어디가?> 속 성동일 배우의 물아일체 짤처럼 힘을 완전히 뺀 채로 사는 모습을 상상했다. 주체적이지 못 하게, 마주한 현실에 눈을 감으며 회피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라며, 그저 흘러간다는 말 표현 자체로 사는 모습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름이 끝나기 전에 필자는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는 말 속에 도전과 노력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닫고 나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후련하다. 숨바꼭질 게임 속 술래가 되어 찾고 싶었던 대상을 결국 발견한 기분이다. 이번 기고 글엔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필자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는 올해 여름의 경험을 모아보았다.

 

니트 후드티를 꺼내 입었다. 뉴스에선 아직 대대적인 옷장 정리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며, 가을이 왔음을 선언하기를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이해한다. 쌀쌀하다고 느낀 내 옆에 반팔, 반바지 차림을 하고도 땀을 흘리고 계신 분이 계셨기에. 하지만 체질적으로 추위를 많이 타는 필자는 가을은 이미 초인종을 누르고, 24년이라는 집 안에 들어왔다고 표현하고 싶다.

 

가을이 왔다. 그리고 필자는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2n 년을 살면서, 챕터를 넘겼다고 느꼈던 적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역순으로 돌이켜 생각해 보자면, 4학년 1학기 개강과 어학연수, 그리고 대학 입시가 가장 최근의 목차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4학년 1학기가 시작된 현재, 챕터의 제목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어요"이다.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을 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에 지원했다. 글을 끄적이는 것을 좋아해서 블로그에 글을 종종 올리곤 했지만, 주기적으로 글을 쓰는 성실함을 얻으려면 강제성이 부여 되어야 했다. 뮤지컬, 음악, 독서를 좋아하는 내게 아트인사이트는 꽤 매력적인 플랫폼이었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지원했고, 굉장히 만족스러운 에디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필자에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써보라며 아낌없이 응원해 주는 공간이 참으로 다정하다는 생각을 매번 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 여행을 혼자 무사히 해내고 난 후,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피어올랐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용감 인증을 해 준 순간이었다. 그 후부터, "고민되면 go! 일단 도전해 보자"는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르는 다짐을 시작했다. 덕분에 생애 처음 패션 동아리에 가입했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만들고, 꾸미는 행위를 사랑했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여러 차례의 선발 기준을 거쳐 들어간 영재 미술원에서 말도 안 되게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을 본 후,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너무 허무하게 미술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뽑아보라면 매번 이 시절을 언급한다. 그때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밀고 나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좋아하는 것을 너무 쉽게 놓아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현재 필자가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하는 습관은 어릴 때의 후회로 비롯된 것인 듯싶다.

 

낮아진 예술적 자존감에도 여전히 취향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을 즐기며, 패션 관련 직업에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다. 과연 패션 모임에 들어가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지만, 베를린 여행 때의 다짐을 방패 삼아 디렉터로 지원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의 활동 또한 용기를 줬다. 글을 쓰는 것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져보라고. 하반기의 잡지 발행이 기대된다.

 

24년도 가을에 어떤 모습일지 예상이 안 되었고, 계획도 없었다. 여름부터 흘러가는 대로 살았더니, 24년도 가을의 필자는 좋아했던 그리고 좋아하는 모든 것을 품고 있다.


국어 사전 속 "흘러가다"의 마지막 뜻 설명은 이러하다. [3. 이야기나 글 따위의 흐름이 진행되다.]

 

"흘러가다"라는 뜻의 확립을 새로이 했다. 좋아하는 것을 맘껏 좋아하고, 도전하고 싶은 것에 맘껏 도전하고,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맘껏) 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진행해 보자. 더 이상 내게 "흘러가다"는 텅 빈 채로 유영하는 모습이 아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적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때 오는 상실감에 허우적거리기보단, 좋아하는 것을 품고 도전을 안은 채로 유영하는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예상치 못하게 닥친 일을 찬찬히 살펴본다면, 다 우리들의 조각에서 파생된 일들일 것이다. 우리들이 뿌려놓았던 많은 씨 중 어느 한 곳에서 드디어 꽃이 핀다. 앞으로 필자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현재로선,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만은.

 

끝으로 선선한 가을 밤, 퇴근길 혹은 하굣길에 들으면 뭉클한 나상현씨밴드의 [길] 노래를 추천하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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