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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 여행하는 나혜석②

 

 

이처럼 여성과 가족제도에 대한 답을 얻은 나혜석은 아이러니하게도 귀국 후에 남편 김우영과 이혼하며 가정의 해체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나혜석은 최린과의 만남과 이혼의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 「이혼고백장」을 발표하고 극심한 비난을 받으며 그녀가 유럽에서 확인한 여성해방론과 조선의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서양에서나 동경 사람쯤 하더라도 내가 정조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 관념이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남의 정조를 유린하는 이상 그 정조를 고수하도록 애호해주는 것도 보통 인정이 아닌가. 종종 방종한 여성이 있다면 자기가 직접 쾌락을 맛보면서 간접으로 말살시키고 저작시키는 일이 불소하외다. 이 어이한 미개명의 부도덕이냐.

 

나혜석, 「이혼고백장」, 『삼천리』, 1934.8-9

 

 

나혜석은 이때 조선 사회와 남녀 모두에게서 비난과 몰이해를 경험하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구와 조선, 서구 여성과 조선 여성 사이의 간극을 크게 확대시키고 더욱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신생활에 들면서」 등에서 ‘정조란 하나에 취미에 불과하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하며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불합리한 정조관을 비판하고 정조문제를 담론화 시켰다. 하지만 이렇게 그녀 스스로 현실과 이상 간의 간극을 넓힐수록 그녀의 여성해방론은 조선 사회에서 점차 설득력과 방향성을 모두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나혜석의 서구에 대한 과도한 동경은 당대 식민지 남성 지식인들의 서구를 근대와 문명으로 등치하는 동경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 차이는 귀국 이후 현실에 좌절한 나혜석의 글에서 나타나는 ‘파리’라는 공간의 의미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신생활에 들면서」에서 나혜석은 다음과 같이 파리에 대해 말한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 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에 가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공(空)인 나는 미래로 나가자.

 

나혜석, 「신생활에 들면서」, 『삼천리』 제7권 제2호

 

 

위에서 나혜석이 ‘파리로 가자’고 외칠 때의 파리는 실존하는 프랑스의 수도가 아니라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공간을 의미하는 메타포로 기능하고 있다. 나혜석의 파리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며, 유일한 변화와 재생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환상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러한 메타포의 등장은 나혜석이 자신의 여성주의적 가치관과 충돌하는 현실에서의 탈출을 절박하게 원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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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김일엽 선생의 가정생활, 1920

 

 

이처럼 나혜석의 구미여행기는 동시대 식민지 남성 지식인의 여행기와는 성격과 시선에서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고, 그 차이는 그녀의 기본적인 여행 동기를 ‘만유’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그녀는 제국관료의 부인이자 동양인, 조선인, 식민지인, 여성, 서양화가라는 다중적인 위치성을 바탕으로 서구를 인식했기 때문에 시선의 다층성은 곧 외부에서의 관조나 평가가 아닌 내부자적 서술을 야기했다.

 

나아가 서구의 다양한 요소를 직접 사회적 교류와 상호작용을 통해 접촉하면서 자신의 다중적인 정체성을 점차 공고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역시 여성으로서의 자신이었다. 구미여행의 경험을 통해 나혜석은 여성주의적 정체성을 성찰하고 가치관을 정립했지만 여행 후의 현실에서 그녀의 여성주의적 정체성과 가치관은 현실과의 타협에 실패하고 좌절되고 말았다.

 

따라서 나혜석의 「구미만유기」는 그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좌절이 요약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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