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다면적 재현 - 해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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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방자들(The Liberators)’은 ‘해방자호(The Korean Liberator)’라는 이름의 열차를 연상시킨다. 광복 직후 국내에서 생산되었던 증기기관차 ‘해방자1호’와 이에 객차를 연결하여 서울과 부산을 이었던 열차 ‘조선해방자호’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서울과 목포를 다녔던 ‘서부해방자호’가 만들어졌다.
일제의 수탈이 철도와 함께한 역사를 떠올려본다면 최초로 국내 기술로 제작하여 국토를 누빈 ‘해방자호’라는 명칭에는 자부심과 희망이 느껴진다.
<해방자들>의 서문을 여는 것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요한이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에 드러난 첫 해방은 광복,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이는 소설에서 다루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시작이 일제 강점기라는 점을 암시한다. 그러나 해방된 시대에도 여전히 스스로를 해방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고국을 떠났다.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 이국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고향에서 이국으로 터전을 옮긴 이들과 그들의 후손을 포괄하며 이들의 문학을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부른다.
사전적 정의에서 살펴볼 수 있는 디아스포라의 의미는 물리적 혹은 정신적 근원을 떠나 있는 상태를 강조한다. 여러 뿌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뿌리내리는 일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와 ‘저기’에 속하지 않은 듯 속해 있으며 떨어져 있는 듯 이어져 있다.
요한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주요 배경은 1980년대 군부 독재 시기이다. 소설이 초점을 맞춘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그 시기의 이주라 볼 수 있다. 공산주의자로 몰린 요한이 죽게 된 이후 <해방자들>의 이야기는 요한의 딸 인숙과 그의 남편 성호에게로 축을 옮긴다. 이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여 아이를 기르고 직업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을 사귄다. 흥미롭게도 서울 1988 하계 올림픽,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세월호 참사 등 한국의 사건과 인숙 가족의 반응이 차지하는 분량에 비해 이방인으로서의 삶이나 이민자 가족의 적응기들은 간략히 서술된다.
한국을 떠난 이들 가족과 한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교차하는 동안 인물의 체험으로 역사적 사건이 되어버린 변화를 묘사한다. 그 사이로는 주변 인물과 그들의 과거를 통해 인숙 가족이 직접 겪지 못했던 역사의 조각을 밀어 넣음으로써 과거가 현재에 이르렀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오히려 가족 간의 갈등, 한인 사회의 에피소드, 혹은 역사에서 비롯된 의견 대립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타국에 내린 뿌리의 일부는 여전히 한반도와 그들이 떠나온 시절에 머무는 듯 보인다. 그리움과 애증, 한 많은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등장인물들에게, 특히 인숙 가족에게 서로의 희망은 가족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시간도 지나고 나니 가장 오래 함께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었다. 그리하여 멀어졌던 이들이 가까워지고 응어리도 풍화되어 스러지며 곁에 있는 사람이 버팀목임을 일깨운다. 거칠게 쓰자면 홀로 살던 로버트는 자살했으며 가족이 있었던 인숙은 살았다. 다시 써보겠다. 경계 너머라도 이어져 있다면 다시 연결될 수 있다, 가족도 마음도 어쩌면 사회도.
또 발이 향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를 바랐다. 이 종이에 쓰인 말들은 전부 바다만큼 오래되고 친숙하게 울부짖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쪽
<해방자들> 속 삶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흘러간다. 소설이 통과하는 다수의 사건들과 인물들의 행적을 통해 이들의 소망이나 욕망을, 다시 그로부터 해방의 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의 ‘해방자들’은 어떠한 뉘앙스를 풍기는가. 근현대사를 관통하여 지금에 이른 인숙, 성호, 헨리, 제니, 하루. 그들과 함께 숨쉬었던 요한, 후란, 로버트. 이들은 각자를 얽었던 혹은 얽고 있는 여러 경계들, 보이지 않는 선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지만, 우선 답은 내리지 않겠다. 인물들도 답을 찾거나 결론을 내린 다음에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후에 의미가 부여되는 일이 많다.
‘해방되었는가’라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삶이 지속되는 동안 자유로워지는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의식적이지 않은 노력이라도 말이다. 인연, 이주, 이별, 투쟁, 화해, 수용, 거부, 혹은 아직 명명하지 못한 변화로 우리는 계속해서 벗어나고 자유로워지려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옭아매는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가를 알아채려 애쓸 때에야 ‘해방’이라는 말의 무게가 와닿을 것 같다.
[이승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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