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간은 무의미해지는 고전, ‘캐드펠 수사 시리즈’

글 입력 2024.08.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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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1권, 집필 기간 18년, 전 세계 22개국 출간된 세대와 언어를 뛰어넘은 영원한 고전. BBC 드라마 [캐드펠]의 원작이자 전 세계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 생생한 캐릭터, 선과 악, 삶과 죽음, 신과 인간 등 인간사 최고 난제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이 녹아 있는 역사추리소설의 클래식 ‘캐드펠 수사 시리즈’. 원작의 시리즈 완간 30년을 기념해 전면 개정된 한국어판이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고 독자들을 만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으며 느꼈다. 이야기는 돌고 돌며 시대를 거듭해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1977년, 꽤 오래전 발표된 이야기이자 중세라는 더욱 오래된 배경으로 쓰인 이야기. 하지만 현대의 독자도 충분히 이해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배경으로 쓰인 이야기가 살아보지 못한 과거에 발표되었고, 그 이야기는 사장되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남아 현재의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시리즈의 첫 번째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의 일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캐드펠 수사 시리즈’ 특유의 세밀하고 생생한 묘사가 이야기를 상상해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어떠한 상황이나 사건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묘사는 매우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때 그 진가가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정보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사건이 전개되는지를 차치하고도 어떠한 배경 속에서 어떠한 성향을 지닌 인물이 움직이는지 파악해야 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주요 인물이 지닌 성향이나 어떤 외양을 갖추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묘사되어 있다.

 

["잘생기고 출중한 외모에 자세도 꼿꼿한 이 젊은 수사는 권세 있는 노르만 귀족 가문 출신답게 둥글고 큰 노르만인의 두상을 가지고 있었다. …뻣뻣하고 꼿꼿한 금발, 크고 푸른 눈동자, 겸손한 몸가짐과 창백한 안색에 가려져 그 단단한 근육질의 체격은 곧잘 잊히곤 했다."] -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中

 

기존에 갖고 있던 정보를 기반으로 어림짐작해야 하는 묘사가 아니다. ‘이 표현은 이런 걸 의미하겠지.’ 하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각 인물의 특징을 분명하게 묘사하여 여러 인물이 등장함에도 헷갈리거나 존재의 필요성을 잃는 인물이 없었다. 이 점이 익숙하지 않은 배경에서도 자연스럽게 상상하며 읽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다.


수사, 수도원, 교회, 성인과 성녀. 중세에는 당연했을지라도 현대에서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요소를 현 사회에 대입하여 생각했다. 지나치게 현대적 관점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사고 흐름이었다.


특히 이야기의 서막을 알리는 부분,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을 찾기 이전. 갈등이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관리가 안 됐기로서니 무덤을 파헤쳐 성녀의 유골을 가져오는 행위에 그저 순수한 신의 뜻만이 존재했을까. 누군가를 위한다는 이타적인 목적뿐이었을까. 존 수사가 의심의 말을 뱉기도 하고 이후에 귀더린 주민의 반대가 이어지니 그 목적이 그리 순수하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 위에 현대의 권력, 청탁, 시위 등이 겹쳐 보였다.


주교와 왕자의 허락이 쉽게 떨어졌으나 실상 귀더린 주민들은 반대가 이어졌던, 그 상반된 양상은 현 사회 속의 대립과도 닮아있었다. 권력을 가진 소수들은 저들만의 논리에 따라 정책이나 사업을 기획하고 발표한다. 이후에 사람들의 극심한 반발에 이어지면 한걸음 물러서는 듯하지만 잠잠해지면 다시금 머리를 드러낸다. 약 900년의 세월이라는 간극이 존재하여도 그 폐단의 모습은 유사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회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어느덧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처럼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이 마냥 중세의 이야기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 지점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나에게까지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이지 않을까. 또한, 그 시대이기에 전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충분히 공감될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특징적인 묘사와 전개로 중세기의 추리를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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