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웃음과 섬뜩함의 중간 속 마주하는 진실 - 연극 너츠

글 입력 2024.08.1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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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은 대학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평일에도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붐볐다.

 

그중, 대학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복합 코스메틱 매장의 옆 건물 지하에서는 이 무더위를 가득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웃기고도 오싹한 한 연극이 무대 위를 오르고 있었다. 바로 극단소년의 미스터리 극 <너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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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소년은 2015년,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1기 졸업생들 5명으로 시작되어 현재 총 9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는 극단으로,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창작연극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현재 공연을 올리고 있는 연극 <너츠>는 극단소년에서 처음 선보이는 미스터리 극이다. 장소는 더굿씨어터로, 미스터리 극이라는 것을 떠올려보았을 때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 순간에서부터 관람객들은 섬뜩한 연극에 몰입할 수 있는 준비과정처럼 느껴졌다.

 

연극은 한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어쩐지 그리우면서도 슬픈 듯한 멜로디가 잦아들며 극의 시작을 알리자마자 거대한 총성이 극장 안에 울려 퍼졌다. 관람객들의 숨소리조차 조용해질 때, 새미(배우 표지훈)와 레온이 등장한다. 이들의 정체는 FBI 요원으로, 미국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펍에 일어난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급하게 파견되었다.

 

잘 맞으면서도 조금 엉성한 새미와 레온의 호흡으로 이끌어나가는 초반의 극은 마치 패트와 매트 같은 유쾌함을 품고 있었다. 둘의 관계는 주로 새미가 자신의 파트너 레온을 구박하는 포지션으로 표현되었는데, 엉뚱하면서도 허술한 레온과 그런 레온을 구박하면서도 레온의 페이스에 조금씩 휘말리는 새미의 모습 덕분에 관객들의 웃음소리는 극장 안을 자주 메웠다.

 

극의 초반에는 보기 시작하면 기존에 안내되었던 다양한 트리거 워닝들이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가 그저 코미디극이라고 해도 이상할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을 계속 보다 보면, 결국 그 유쾌함 속에서도 이 극은 '살인사건'을 큰 주제로 시작했다는 것을 잊지 못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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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의 주변인을 찾았던 새미와 레온은 이후 자신이 살인사건의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세 명의 용의자를 마주하게 된다. 모두가 '나는 범인이 아니다'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서로 티격태격하며 스스로가 가해자임을 증명하려고 하는 이 상황. 이후 알리바이를 하나씩 찾기 시작하며 새미는 살인사건의 정체를 마주하게 된다.

 

이 극은 '살인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조금 더 깊이 파고들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이야기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으로 유년 시절이 산산이 망가진 세 명의 용의자는 같은 사람임과 동시에 다른 인격이다.

 

즉, 이 극은 주인공 새미의 불운한 과거와 그 트라우마에서 파생된 다중인격으로 인한 살인사건으로, 자신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을 거부하는 새미가 '진실'을 직면하게 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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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풀어지는 새미와 레온의 과거는 캐릭터의 굉장한 입체성을 심어주었으며, 그 외에도 세 명의 용의자들이 풀어내는 각자의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관람객들은 각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수많은 반전을 품고 있는 극이기에 극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숨 가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웃음이 극의 곳곳에 공존하여 관람객들이 무리 없이 극을 소화해낼 수 있도록 한다. 배우들의 명연기와 함께 흘러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충격적인 진실을 다 본 후 동행인과 함께 열띠게 극에 대한 토론을 하며, 극단소년의 다음 극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귀가할 수 있는 연극이다.



 

[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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