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필사적으로 '노력 중, 극복 중, 회복 중'인 사람들의 이야기 - 까마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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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 이제 더는 참고 살 수 없다고 다짐한 사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믿고 함께 분노할 사람을 찾습니다. 당신을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연극은 <까마귀 클럽>이다.
2024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지원사업 선정된 프로젝트 연극으로 예술공간 혜화에서 공연되었다.
원작은 이원석 소설가의 소설로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곽예진 연출가는 "나를 화나게 했던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화 한번 내지르고 싶어 무던히 노력하는 이 클럽의 속성이 비극적"이라고 말하며, 최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있는 무분별한 분노 범죄와도 깊게 맞닿아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본격적인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난 이 책을 읽지 않고 연극을 봤고, 지금 이 글도 쓰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사실 원작이 있는지도 몰랐고, 이번 연극 리플렛을 받고 천천히 읽고 나서야 아 소설원작이구나 알았다. 그럼에도 스토리, 연출, 무대 등등에서 최근 본 연극 중 가장 넓게, 그러나 얕지 않게 사회적 문제를 포용하는 연극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일히 말로 표현하지 않고도 은유하는 힘, 이야기와 캐릭터의 힘이 굉장한 연극이다.
극의 초반 까마귀클럽이 보여지는 방식은 서로를 위로하는 긍정적인 모임 정도이다. "집단의 선한 영향력" "꼭 필요한 소통"과 같은 아주 교육적인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느낌말이다.
주인공이 아름다운 방식으로 성장해나가고, 주변인들은 극의 적당한 감초가 되어주고, 이야기는 예상가능하다. 모두가 아는 패를 초반에 다 까고 가는 이야기라면 뒤에 전환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함이 더해졌다.
관객의 입장에서 첫 전환점은 까마귀 클럽 안에 커플이 있었다는 점. 이게 동성커플이어서나, 혹은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커플이여서 놀랐다기 보다는, 이 집단에서 이렇게나 사적인 관계가 가능하다고? 라는 점에서 놀라움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두 번째 전환점은 닉네임이 아닌 서로의 진짜 이름을 알게된 술자리 씬이기도 했다. SNS속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던 사람들이 현실에서 접속되는 순간이자 이 클럽의 역사, 뒷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술자리에서 주인공은 많은 것을 알게되고, 어떤 의심을 마음 속에 품게되기도 한다.
이 의심은 연결되어서 세 번째로, 모임의 회장인 별의 통제를 잃은 분노을 표출하는 순간으로 간다.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라고 해야할까. 사실 극을 보는 순간에는 빠르게 진행되는 서사에 조금 어안이 벙벙해진 순간이었지만, 연극을 곱씹고 나자 모든 것이 연결이 된다.
그러면서 극 내내 어쩌면 가장 조용했던, 가장 사회적인 자아가 강했던 인물 "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끝끝내 자신의 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극의 관점에서는 끝까지 은밀한 인물로서 말이다.
그렇기에 '별의 분노'에서 극의 메세지를 추측해 보자면 이 모든 이야기가 별의 강력한 내적 동기에서 시작했다는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 별은 사회적 가면이 너무 두꺼워서 이중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인물이다. 공무원에, 적당히 아름다운 외모, 말투, 예의바른 행동 등 사회적인 자아상의 매우 번듯하다. 그렇기에 사실 별은 가장 이 모임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어쩌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모임을 떠난 주인공이 가장 극적인 인물이다. 현실엔 별과 같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 필사적으로 '노력 중, 극복 중, 회복 중'인 사람들 말이다.
주인공의 마지막 독백 "저는 우리의 만남을 우연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우연이 아니다. 이 모든 판은 결국 별이 만든 판이다. 자신의 문제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더 용감하고 치열하게 극복하고자 마음먹은 사람이 이 클럽을 만든 사람이 아니고 누굴까. 이건 별이 만든 필연이다.
[한승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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