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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한 가지 기술(One Art)

- 엘리자베스 비숍


상실의 기술을 통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너무 많은 것들이 상실될 목적으로 채워져 있는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매일 무언가를 잃어버려라.

잃어버린 문 열쇠들, 서툴게 써버린 시간이 주는

낭패감을 받아들여라.

상실의 기술을 통달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 이상으로, 더 빠르게 잃는 것을 연습해라:

장소들을, 이름들을, 그리고 여행하려 했던 곳들을.

그 어떤 것도 재앙을 불러오진 않을 것이다.

 

(...)

 

 

스물두 살에 처음 배웠고, 스물일곱 살에 좋아하기 시작한 시이다.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은 ‘상실의 기술을 통달하는 건 어렵지 않다’는 문장을 반복해 사용하며, 역설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을 떠나보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얼마나 노력해 얻었던 간에, 얼마나 고대해 왔던 간에 상관없이 모든 기쁘고 영광스러운 순간은 존재함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실’될 운명을 타고난다. 그 상실이 아프다는 게 당연하기에 추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다. 떠내 보내기 힘들어서 아직도 과거를 붙잡는 것이 보편적이기에.

 

하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이 시인의 태도를 갖추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아프다는 것을 알지만, 뒤이어 ‘이게 원래 그런 거야’라고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아프지 않다는 것, 또는 아픔의 존재를 진정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까지를 함부로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상실의 아픔이 충분히 많이 쌓여서 그것이 필연적인 삶의 원리로 존재하고 있음을 머리로는 배웠고, 아픈 와중에도 ‘너무 많은 것들은 상실될 목적으로 채워져 있다’고 누군가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것, 그 태도의 존재가 이전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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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나이를 먹으며 어른이 된다. 글을 쓰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목록을 한 번 작성해 보았다.

 

1. 힘들 때 운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

2. 더 나아가 우는 행위가 문제 해결에 있어 시간과 체력을 얼마나 빼앗는지를 알게 되는 것, 그래서 울음을 참게 되는 것

3. 인생 영화 또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작품들에 대해 어느 순간 ‘이게 왜........’ 라는 의문과 허무함을 갖게 되는 것

4. 영원히 처음과 같은 열정으로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을 아는 것

5. 이전만큼 남이 잘되는 것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 것

6. 성취가 있을 때 자랑하기보다 혼자 뿌듯하게 품고 있는 것이 많아지는 것

7. 타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는 날들이 얼마나 부질없을 수 있을지를 아는 것

8. 내게 주어진 일이 힘들어도, 왜 이 길로 날 이끌었냐며 원망할 사람이 실질적으로 없는 것


이 목록의 작성 자체가 나에게는 내가 이전보다 더 나이가 들었음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만약 내가 여전히 울음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들을 앞에 두고 그저 ‘왜 해결이 안 되지’ 하고 울고 있었더라면 목록의 1번과 2번은 작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 영화를 보며 ‘이게 왜 예전처럼 재미있지 않지’라는 우울함에 잠식되어 있었다면 목록의 3번과 4번을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미 그 시기를 지나왔다.


그리고 나에게는, 요즘에 깨달아가고 있는 목록의 9번이 있다. ‘상실되는 순간은 사실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고등학교 때 더 좋은 성적을 받아 더 좋은 대학을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다른 대학에 갔다면 나는 내가 교환학생 생활을 했던 학교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 학교에서 나는 내가 비전공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극에 대한 나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덕분에 유익한 과목들을 수강했고, 무대에도 최대한 많이 설 수 있었다. 그 때의 경험으로 나는 지금 연극을 한다. 다른 대학에 갔다면 지금 연극하는 나는 없을지도 모른다.

 

올해 초에 온 시간과 정성을 쏟아 준비하던 연극 작품 하나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면 취소되었다. 이후 '내가 그 연극을 하지 않았더라면'을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랬다면 나에게는 어제 밥을 같이 먹은 친구들과의 관계도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깊이 속상해할 정도로 열심히 몰입해 본 경험도 없었을 것이며, 내 의지와는 다르게 속상한 상실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결국 받아들이게 된 조금의 단단함도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만 생각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일상에 있어서 나비효과는 생각 이상으로 커다랗다. 내 인생의 한 순간이라도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후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나 자체가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깨달음은 시차를 두고 와서, 상실의 당시에는 그 순간이 그저 뭔가를 이루지 못해 놓쳐버린 ‘서툴게 써버린 시간’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상실의 의미가 나에게 닿는 순간 나는 그 시차만큼 나이가 들어 있다.


그렇게 모든 상실된 순간들이 결국은 내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을 거라는 믿음, 상실이 상실만은 아니라는 믿음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을 없애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결국 상실은 상실이 아니라는 배움이 더 나은 상실을 가능하게 한다는 모순적이고 어려운 이 사실을 나는 깨달아가고 있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이를 온전히 깨닫고 나의 목록에 적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목록에 몇 개의 항목이 있던 간에, 목록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마치고 싶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되는 것 (Growing Up)


오랜 친구들이여

이젠 어른이 될 때야

책임지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봐

진실을 마주해 

도망치지 말고

계속 꿈을 꿔

다만 재구성하는 거야.


모든 길은 꺾어지고

그게 우리가 계속해서 배우는 방법이야


(...)


융통성을 가져

길이 꺾어지면 맞춰서 몸을 굽혀 봐

꿈을 더 가져 봐

기존의 꿈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되는 데에는 끝이 없다는 걸 이해하는 것

 

(...)

 

 

손드하임의 뮤지컬 ‘ Merrily We Roll Along’의 넘버인 ‘어른이 되는 것(Growing Up)’의 가사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는 데에는 끝이 없다. 펼쳐지는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하는 것들이고, 그렇기에 상실도 늘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늘 제각각의 시차를 가진 새로운 깨달음이 따라올 것이다.


글의 맨 앞에 인용한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의 제목은 ‘One Art’이다. ‘Art’는 예술이라는 뜻을 가지지만, 동시에 숙련을 통해 터득하는 기술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이 단어가 좋다. 예술이 가지는 아름다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노력과 깨달음, 숙련을 통해 꽃피워진다는 걸 것을 상징하는 것 같아서. 시인은 상실을 통해 얻은 것들을 ‘시’라는 예술로 꽃피웠다.


나도 그렇게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며 시차를 넘어 속속들이 도착하는 메시지들을 머리에 저장하는 것을 넘어서, 삶을 예술로 빚어내는 기술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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