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불확실함을 사랑할 용기

글 입력 2024.06.0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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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던 나날들이 있었다. 하루아침에 머리가 하얗게 세고, 입가에 주름이 깊어지는 상상. 햇살이 따스할 땐 뒷짐을 지고 나와서는 아파트 단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싶었달까. 하루하루를 단조롭지만 여유롭게 채워나가고 싶었다. 더 이상 마음의 들쑥날쑥함을 겪지 않고, 내 마음이 평온함을 찾아서 단단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할머니는 그러한 사람이었고 할머니쯤에서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도 할머니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때와 같은 마음은 아니다. 자잘하고 구구절절한 이유들이 있겠다만, 일단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정말로 되고 싶은 사람이 과연 그런 사람이 맞는 것인가 하는 것. 애초에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것. 그쯤 되겠다.

 

전자는 부연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충분할 테지만, 후자에는 우르르 따라 나오는 말들이 많다. 웃기게도 나는 더 이상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혹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변덕스럽고 조심성 많은 나는 매 순간 바뀐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르고, 여기에서의 나와 저기에서의 내가 다르다. 내가 이렇게나 다양하고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사실은 얼마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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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면서 써 내린 글에는  '내 자신을 구하고 싶어요'라는 대사가 나오는, 제목은 기억 나지 않는 영화의 한 장면과 함께. 나의 다짐이 빼곡히 적혀있다.

 

".... 나에 대해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이게 바로 내 최대의 목표이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고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에 대해 거짓 없이 알고 싶다. 2022년의 나만큼은 내 마음의 이끄는 대로! 스무 살의 온갖 방황과 자유로움을 즐길 수 있길. 내가 그리던 청춘 그 자체를 담아낼 수 있길..."

 

누군가가 나의 스무 살을 물어본다면, 부끄럽지만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만 싶어진다. 힘들었다. 누군들 안 힘들었겠냐마는, 뭐랄까.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고, 지하철을 얼마나 타야 하며, 코로나가 어떻고 이런 것들의 힘듦과는 결이 달랐다.

 

가장 날 힘들게 했던 것은 불확실성이었다. 처음 마주하는 그 거대한 불신. 나의 모든 것들에 대한 불안, 불확실함, 불편함은 나를 텅 비게 만들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느끼고, 하루에도 수백 번씩 내가 무너지고, 새로 생긴다. 차곡차곡 쌓아왔다고 생각한 나의 것들이 사실은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나를 갉아 먹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도통 무엇이 미덕인지 모르겠다. 정정하자면, 무엇을 미덕으로 삼아야할지 모르겠다. 도전과 안주, 익숙함과 낯섦. 양가적인 것들에 쌓여 길을 잃는다. 내 삶에서 어떤 것들이 가치가 있을까.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 애초에 그런 것들을 정하는 게 의미가 있긴 한 걸까. 하는 심심한 생각을 하며 산다.

 

여전히 그 갉아먹음은 여전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이빨이 나에겐 더 이상 그렇게 치명적이진 않다는 것. 나는 왜 답을 얻질 못할까- 하며 한탄하지는 않는다. 그저 과감하게 고민하다 보면, 더 잘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단정하여 답을 내리는 그 순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옳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흐린 눈으로, 두개로 서로 겹쳐지게 바라본다.

 

그러니까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 에 대한 나의 답은. 결국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면서'가 되겠다. 모름을 정확히 알아가는 것이 나의 길이려나. 그 모르겠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용기를 위해.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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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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