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은 때였다. 아트인사이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과 어울리는 내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다. 마침 한 달에 한 번이라 해서 과감히 신청을 했고 3월부터 오프라인 모임 활동을 시작했다. 날 것 그대로의 후기를 공유한다.
3월 30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한 작가의 전시를 보기 위해 모였다. 첫인사를 하는 순간 이 모임이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두 시간 후면 집에 가겠거니 하면서 대충 모임에 머물렀다. 전시를 이유로 모였지만 각자 빠르게 둘러보고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책장처럼 보이는 문을 열면 보이는 파스타 집. 내부는 어린 왕자를 테마로 데코 되어 있었고, 그릇은 금색 테두리로 둘러져 있었으며, 식기는 무겁고 미끄러웠다. 음식(점) 위주로 상황을 기억을 하는 편이라 사람보다 전시보다 식당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하다. 침을 섞은 연인 사이가 아닌 이상 음식은 따로 주문하여 먹는 것을 선호하지만 잠자코 있었다. 한국에서 재수 없다는 소리를 종종 들어왔던 터라 가만있는 게 익숙하다. 역시 여러 메뉴를 시켜 나눠먹는 분위기였고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포크가 제일 자주 넘나드는 디쉬에는 도저히 손댈 용기가 없었다. 하얀색 치즈가 뒤덮인 라구 파스타는 어떤 맛이었을까.
식사 후 작은 카페로 이동했다. 테이블에 띠처럼 둘러앉았다. 양옆의 허벅지는 매우 단단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렇게 가까이 붙어 앉는 것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만석으로 방법이 없었다. 대화에 집중해야지 하면서 커피와 함께 오늘 전시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SD는 작품이 예쁠 것이라 예상했듯 실제로 보니 정말 예뻤다고 했다. 본인은 가을을 좋아한다며 계절에 대한 얘기도 했다. 나는 SD가 작품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보다 일과 삶의 밸런스에 대해 얘기했을 때가 더 좋았다.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포기할지를 알고 적용하는 것 같았다. IK의 전시 후기는 꽤나 구체적이었다. 그림을 볼 때 본인은 붓터치를 많이 본다는 점과 그림의 재료 과슈에 대해 설명했다. 최근 관심 있는 아티스트에 대해 소개하기도 하고 다방면으로 유식해 보였다. KS는 그림이 너무 밝게만 표현된 것 같아 아쉬웠다고 했다. 그림자도 있어야 빛이 더 밝은 법이라고 했을 때 너무나 공감했다. 그리고 블러셔 색상이 그녀와 찰떡이라 복숭아처럼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세 사람의 후기를 듣다가 내 얘기를 깜박할 뻔했다. 머리카락으로 표현한 잔디를 봤을 때 바람을 표현할 줄 아는 작가 같았다, 그림자를 표현하는 방식이 새로웠다 등 뭔가를 떠들었던 것 같다.
슬슬 집에 갈 때가 됐다 싶을 때 보드게임방에 가게 됐다. 이 상황이 웃겼다. 아브라카왓, 다빈치코드, 바퀴벌레포커 등 각 게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겨우 따라갔다. 안 하던 것을 하려니 두통이 왔지만 끝까지 열심히 했다. 나를 포기하지 않는 그들은 히어로처럼 든든했다.
4월 20일 토요일 오후 12시 30분.
두 번째 모임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늦잠을 포기하고 수원 행궁동으로 향했다. 각자 원하는 덮밥 세트를 시키고 그동안의 일상을 나눴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나눴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옆 테이블 군인들의 군복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과 느끼한 위장을 달래기 위해 와사비를 공략했던 것만 기억난다.
어찌어찌 식사를 마치고 어떤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전체적으로 회색빛 콘크리트였다. 청소하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에 그들은 옆에서 열심히 카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그들이 신기했다. 각자 선호하는 커피와 사이드로 딸기 빙수를 시켰고 첫 모임 때와 같은 이유로 나는 빙수에 거의 입을 대지 않았다. 과일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를 위해 과일을 먹거나 같은 빙수 국물을 떠먹는다면 그건 흡사 사랑 고백이니 함부로 플러팅하지 않았다.
이제 집에 가려나 싶었을 때 상점 구경으로 이어졌고 막걸리 집까지 가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를 관찰하는 것이 재밌었다. 여럿이 술과 안주를 먹는 것은 매우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자연스럽게 농담과 사적인 얘기를 주고받는 SDIKKS는 마치 외계인 같아 부러웠다.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여전히 낯가림을 느낀 나는 김치전을 대충 씹으며 창밖을 감상했다.
만난 지 약 7시간 후, 드디어 굳바이를 할 수 있었다.
5월 18일 토요일 오후 12시 30분.
내가 왜 성수역을 제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성수역에 모였다. 양파가 버거를 훼손시킬 수 있으니 빼고 시켰다. 새우버거와 가지튀김을 먹는 동안 그들의 말소리가 울렸다. 한 쪽 귀는 SD에게, 한 쪽 귀는 KS에게 맡기고 사랑니, 신경치료, 컨디션, 직장, 스트레스 등 대화 주제를 그리며 음식에 집중했다. 그러다 밑받침 종이에 적힌 식당의 홍보용 단어가 보였다. Bodaciously. bold와 audacious의 합성어 같았다. 이 단어로는 어떤 예문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바빴다.
식사 후에 미리 점찍어둔 바겸 카페로 이동했다. 아아를 홀짝거리며 듣던 중 IK까지 합류하여 나의 귀를 세 등분 했다. 전시에 관한 책과 영상을 보고 와서 느낀 점을 나누는 시간으로 함께 열심히 나누긴 했는데 쓰려고 보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다. 이것보다는 나누는 과정에서 느낀 멤버들의 장점이 기억에 남는다.
SD는 다른 사람들이 오픈할 수 있도록 자신의 TMI를 먼저 오픈했다. 넘치는 TMI에 멀미가 나기도 했지만 SD가 있기에 어떤 이야기든 끝말잇기처럼 이어졌다. 그의 말속에는 언제나 상대를 향한 인정이 있었다. 자신이 만났던 아트인사이트 멤버들을 높여주었고 그를 통해 아트인사이트 전체를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IK는 대화를 주도할 뿐 아니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던졌다. 좋은 질문을 하고 싶다는 그는 이미 좋은 질문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의 질문에는 상대를 파악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KS는 바쁜 일상으로 피곤할 수도 있는데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 호응하며 칭찬했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칭찬하며 상대가 편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서로의 조합이 잘 맞아서인지 화창한 날씨 탓인지 어딘가 핑크빛 분위기가 감돌았다.
SD는 인정으로, IK는 질문으로, KS는 칭찬으로 모임을 이끌었다. 나는 그들을 믿고 묻어갈 수 있었다.
날씨도 좋으니 다같이 서울숲으로 향했다. 서울숲에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가임 여성 한 명당 약 0.7명이란 출산율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뛰놀았고, 미래의 아이들을 탄생시킬 법한 많은 커플들이 데이트 중이었으며, 혼자 사색을 즐기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각 사람이 예뻐 보였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면서 여유를 누렸다.
배시계를 무시할 수 없어서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여러 안주가 나왔고 술잔이 오갔다. 처음으로 소맥을 맛보고 이름 모를 안주도 먹었다. 거리낌 없이 같은 음식에 젓가락을 얹는 나를 발견했다. 한 사람의 칵테일을 나눠 마시는 것까지는 무리였지만 발전이 보였다. 어색함이 발톱의 때만큼 조금 가셨다.
*
지금까지 모임이 나름 신선했고 여러 술과 안주를 접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모임을 세 번이나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낯설었다. 함께여서 좋았지만 혼자이고 싶은 마음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일곱 시간을 있어봐도 노력해봐도 같은 스몰토크가 반복되는 경우가 잦아 되도록 입을 다물었다.
기대했던 분위기의 모임과 달라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마지막 출근일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SDIKKS가 보고 싶었다. 그들이 말했던 번개를 내가 먼저 제안해볼까 싶어서 카톡방에 올렸다가 퇴근 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질 것 같아 지웠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순간에 그들이 생각났다는 것은 어느새 정이 들었다는 신호 같았다.
곧 네 번째 모임을 앞두고 있다. 참석이 가능하다면 마지막 모임만큼은 온전히 즐기고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다. 결말이 어떻든 그동안 함께한 21시간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들을 통해 오랜만에 청춘을 느꼈다랄까.
간만에 지인을 만났다. 바람을 쐬며 와인을 마시는 나에게 웬일이라며 물었다. 청춘을 즐기는 중이라 답하며 한 잔을 비웠다. 세 사람의 얼굴과 함께. 어울림이 젖어듦이 곧 문화이고 소통이구나를 되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