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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류의 새와 배와 역사적인 속옷을 위한 단어는 수천 개나 있는 반면, 인간 경험의 미묘한 매력을 포착하기 위한 어휘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17p)


언어는 인간의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들의 생활이 어떤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면 그 분야의 언어 세계는 끊임없이 확장한다. 반면 그렇지 않은 분야는 태초의 세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의 범위는 생각보다 좁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물론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느낀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하나쯤은 생각날 것이지만, 그것이 나의 감정을 100퍼센트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는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 상황 속에서 어떤 감정을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경향은 적기에, 언어가 그대로 머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감정의 언어를 확장하는 데에 무관심한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아니다. 한때 독일어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복잡하고 애매한 상황을 표현하는 독일어 단어가 무조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분명 여러 단어를 나열해야만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을 한 단어로 요약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은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나타났다. 이 책은 특정한 상황에서 느낄 법한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언어 사전이다. 일종의 ‘감정 백과사전’인 것이다.


하지만 <슬픔에 이름 붙이기>를 읽다 보면 몇몇 아쉬움이 생겨난다.


첫 번째, 이 사전은 작가가 직접 만든 신조어로 구성되어 있다. 즉, 기존의 사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들이다. 예를 들어, ‘어둠 속에서 모닥불을 쳐다보며 원초적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상태’를 뜻하는 ‘푼켄츠방스포스텔룽(funkenzwangsvorstellung)’이라는 단어는 최근 등장한 단어인 ‘불멍’과 비슷한 단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아무래도 작가가 외국인이다 보니 이 신조어들의 어원은 대부분 영어 혹은 유럽 계통 언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어로 치환했을 때 발음하기 어렵거나 지나치게 길어지는 단어들이 생겨난다. 이 두 가지 아쉬움은 결국 ‘통용되기 어려운 단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찜찜함도 더불어 생겨났다. 이처럼 모든 미묘한 감정을 한 단어로 요약하는 과정이 과연 긍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언어의 역할은 ‘편리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여러 단어의 나열로 구성되는 어떤 존재 혹은 상황 등을 한 단어로 ‘편하게’ 부르는 데서 비롯한다. 그저 소통의 편리성을 위해 우리의 복잡한 감정을 설명하고 고찰하는 과정을 편집해도 되는 것일지,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흥미로운 책이다. 단순히 이 책이 언어 사전의 기능을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감정의 폭을 넓히는 과정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공감했던 단어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적어도 매 챕터마다 서너 개의 단어들을 적을 수 있었다. 이는 내가 한 번쯤은 느꼈지만 무심코 스쳐 지나간 감정들을 다시 느껴보는 과정이었고, 내가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는 감정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 존 케닉은 슬픔이 ‘기쁨의 부재’가 아닌 ‘감정의 충만함’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더욱 풍부한 감정을 심어주고,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가슴 속에 퍼지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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