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우리 삶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떼려고 해도 뗼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우리에게 매일 날씨를 알려 주는 것도, 학교나 회사에 갈 때 이용하는 자동차나 대중교통도 모두 과학이라는 씨앗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어떤 사건에는 대개 비하인드가 존재하듯, 어떤 발견이나 기록에도 다수가 알지 못하는 비하인드가 생기기 마련이다. 과거 클레오파트라가 죄수들에게 독으로 실험을 했고, 자신이 자살을 할 때도 독사의 독을 활용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일단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태아에게까지 잔인한 실험을 '했다는 듯한' 기록들이 있지만, 그게 실제로 거행되었는가는 의심스럽다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가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자극적인 이야기여서 혹은 흥미롭게 느낄 정도로 만들어 놓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의 이야기에는(과학 안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 사고 안에는) 이렇듯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이야기들이 많다. 약탈이나 살인, 고문 등의 잔인한 이야기들 말이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 좋거나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과학 잔혹사>는 '과학자들은 언제 어떻게 인간성을 망각하는가'라고 말하며, 과학의 어두운 역사를 내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미치광이 과학자는 논리나 이성이나 과학적 안목이 부족해서 미치광이가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과학을 '너무 철저히' 하려고 하다가 도가 지나쳐 자신의 인간성을 도외시하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람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어 범죄와 비행을 저지르는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각 장은 각각의 일탈을 사기, 살인, 방해 공작, 간첩 활동, 시신 도굴 등 종류별로 다루며, 거기에 더해 다양한 범죄 기술을 엿보는 여행으로 안내한다.
우리의 삶에서 윤리란 아주 중요하고, 과학 연구를 할 때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곤 한다. 바로 과학자의 실험 및 연구에서 '윤리'는 얼만큼 지켜져야 하는가 혹은 그들의 연구는 윤리 밖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다. 나의 경우는 과학 연구에도 지켜야 할 윤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요즘은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가 대두되면서 쥐 실험, 동물 실험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많이 거론된다. 그에 따라 연구 방식에 변화는 틀림없이 있었을 테지만, '안전성' 검증에 있어서 어디까지 실험해 보아야 할까,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등을 생각해 보면 과학 연구에 있어서의 윤리는 쉽게 어느 하나로 주장을 펼치기 어려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듯하다.
과학은 각각 별개로 일어난 유레카 순간들을 단순히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나머지 사회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과학은 최근에 도덕성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고, 과학에서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분하고, 어떻게 해서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흘러가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과학 분야에도 책임져야 할 죄들이 있다. (...)
흔히 지식은 선도 악도 아니며, 오로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하지만 과학은 공동 활동이기도 하다. 그 결과는 다른 사람에게도 확인되고 입증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12장으로 나누어 과학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한편, 몇 가지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었다.
추문으로 얼룩진 해부학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버크와 헤어의 살인 사건을 제외한다면, 시신을 강탈당해 해부를 당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수치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고통을 겪지는 않았다.
불행하게도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대다수 의학 연구는 생체를 대상으로 하며, 이어지는 것들에서 보듯이, 19세기의 해부학자들조차 다음 세기에 일어날 일부 야만적인 실험에는 기겁했을 것이다. 고통을 받은 대상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의학 연구에서는 동물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취급하며, 동물의 고통과 괴로움은 부수적 피해로 일축한다. 실험이 유용한 데이터를 제공할 때조차도 이것은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하지만 경쟁자의 기술을 부정하기 위해 말과 개를 전기로 고문한 토머스 에디슨의 경우에는 정말로 범죄를 저지르는 영역으로 들어섰다.
4장 <살인> 편에서는 어느 농담으로부터 미국 최초의 해부 폭동이 시작되었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해부학으로써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알지도 못하는 이들의 시신을 도굴해서 사고 팔고, 실험하고 해부한 의사와 해부학자들의 이야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에 힘 있는 일을 하기도 한 모습, 그리고 나아가서 비단 '시신 해부'에서 끝나지 않는 숙제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인상적인 점 같다.
뒤에서 이어지는 '동물 학대'에 눈이 간 것도 그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지금과 다른 시대에, 즉 사회가 동물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던 시대에 살았다는 이유로 에디슨과 브라운의 행동을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은 잔인한 과학 연구를 반대했고, 훨씬 이전부터 그랬다.
볼테르는 "[개를] 탁자 위에 못으로 박고 산 채로 해부하는...... 야만인들"을 조롱했다. 새뮤얼 존슨도 이에 동조했고, "자신의 인간성을 버리는 대가로...... 무엇을 배우는 사람은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지식을 얻는 셈이다."라고 덧붙였다.
에디슨은 과학자로서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많이 했고,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인간성이나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벌인 짓들을 합리화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현재는 동물 실험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동물권에 대함은 물론이고, 동물 실험이 인간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가 미지수라는 것이다.(그들은 인간과 그리 비슷하지 않다!)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안전성 검사가 시간이 더 지나고 나면 틀림없이 나올 테지만, 그때까지 희생되는 동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하기 어려워진다.
한편 동물권은 동물 실험만이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많이 대두된다. 가령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와 멀어지는 비건이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동물의 사용 등으로 말이다. 동물권에 대한 주장이 거세질수록, 동물이 등장하는 순간들을 포착할수록 나는 동물권을 어디까지 바라보는 사람인가를 고민하게 되곤 한다.
이 '동물 학대' 편은 에디슨과 브라운의 일을 지나 또 다른 과학자들의 갈등을 언급하며 '비열한 경쟁(공룡 뼈 발굴 작전)'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이 책은 과학 이야기라 이해하기 어렵고 어려우리라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걱정을 한 것이 재미있게 느껴질만큼 흥미롭고 어려움이 없는 책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해서 재미있고, 나쁘게 말하면 과학 속 어두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기록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우리는 이러한 잔혹한 과거를 통해 더 나은 날들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학의 어두운 이야기들이 이렇게 독자에게 읽힐 수 있다는 건 오히려 좋은 현상일지 모른다. 어떤 진실들이 드러나 있다는 것 아닌가!
과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호기심 많은 사람이나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 또한 단숨에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삶에 있는 과학 속 어둡고 잔혹한 이야기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