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청춘의 모퉁이에서

다시 하루는 시작되고
글 입력 2024.04.1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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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을 훑는 바람이 제법 훈훈하다. 싱그러운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이 오려나 보다. 꽃이 지고 새싹들이 기지개를 켜는 계절. 따스함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겨울의 낮은 너무 짧아서 무얼 하기도 전에 해가 넘어가버리지만, 여름의 낮은 높은 온도만큼이나 너그럽다. 열기와 습기에 쉽게 지치기 십상이나 들뜨는 마음엔 불을 지핀다. 따사로운 햇살을 쬐고 있자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진다. 그 속에서 열심히 발을 움직이는 내가 있다.

 

 

 

어쩌다 약국 알바생


  

분식집 알바를 그만두고 꽤 오래 구직을 했다. 2년 넘게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좀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하지만 내 스케줄과 맞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작년 10월에 구한 음식점 일자리는 고작 일주일 일찍 들어온 직원의 텃세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또한 사장이라는 사람은 일을 제대로 알려주기는커녕 일한 지 이틀밖에 안 된 나에게 제대로 일 안하면 자르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일삼았다. 얼음장 같은 분위기와 주먹구구식 시스템. 더욱 기가 막혔던 건 일주일 만에 해고당한 것이었다. '연말 액땜'이라고 여기고 좋게 넘어가기로 마음먹었지만, 허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일련의 사건을 겪고 마음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이번엔 재정적 어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부모님께 용돈을 요청하기에도 죄송스러운 마음뿐.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은 필요했다. 수중에 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면접을 봤던 카레집은 끝내 연락을 주지 않았다. 어느덧 12월, 구직 기간은 길어지고 점점 지쳐가던 찰나였다.

 

그러다 한 번도 도전해 보지 않은 분야의 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약국' 아르바이트. 간단한 정리 위주의 일이라는 공고에 부담 없이 이력서를 제출했고 운 좋게도 당일에 연락을 받았다. 그다음 날 면접 시간에 맞춰 약국에 도착했다. 난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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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첫날, 약국은 무지하게 바빴다. 원래 이렇게 붐비는 곳이었나 싶었다. 처방전을 내미는 손님들이 엄청났고 일반 약을 사러 오시는 분들도 많았다.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이전에 일하시던 분께서 알려주신 것들을 토대로 눈앞에 보이는 약들을 대여섯 개씩 묶어 차곡차곡 쌓았다. 정리를 하며 깨달았다.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의약품들이 존재하는구나.

 

현재 5개월째 일하고 있는데, 이제 우리 약국에 들어오는 일반 의약품 분야는 거의 꿰고 있다. 약이 어떻게 생겼는지, 위치는 어디고 어디에 듣는 약인지 등등. 정리를 위해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방법도 차차 알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이 경험을 써먹을 날이 있겠지.

 

 

 

도전은 아름답고도 값지다


  

7개월간의 수영 여정이 끝났다. 6개월 완성반을 끝내고 1개월은 교정반을 다녔다. 강습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길어지는 게(강습은 50분, 이동은 버스로 왕복 1시간이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 결국 그만두게 됐다. 중간에 감기 때문에 약 2주 정도 가지 못했으나 강습 기간 내내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다.

 

다만 자유형, 배영에 비해 평영과 접영이 부진한 건 조금 아쉽다. 처음에 계속 가라앉던 평영은 점점 늘어 50M를 한 번에 갈 수 있지만 아직까지 글라이딩이 잘되지 않는 느낌이다. 한 번의 킥으로 더 멀리 나가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연습량이 부족했던 거겠지. 접영은 오리발 유무가 꽤 영향을 미쳤다. 오리발을 끼면 비교적 잘나가는 것 같다가도 맨발로 하면 수면으로 올라오는 게 힘에 부친다. 이건 근력 문제다.

 

근력은 잘 모르겠지만 수영 덕분에 심폐 지구력이 늘었다는 건 실감하고 있다. 누구나 어쩔 수 없이 뜀박질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배차 간격이 15분인 지하철이 1분 남았을 때. 달리기에 취약한 편이라 100m도 못 가서 거친 숨을 내쉬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더 달려도 뛰는 다리를 멈출 정도는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숨도 확실히 덜 차다. 이것만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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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은 평생 내 버킷리스트였다. 물을 좋아하지만 물에 뜨지 못해 좌절했던 지난날은 이제 없다. 모든 영법을 배웠고, 이젠 헤엄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물에 뛰어들 수 있다. 어디서든 자유롭게 유영할 내 모습이 기대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2024년을 맞이하며 세운 목표가 있다. 바로 '올해는 제발 책을 읽자'였다. 간헐적 독서 말고, 제대로 된 독서 습관을 들이고 싶었다. 부끄럽게도 도서 위시리스트에 쌓아둔 책만 한가득이었다. 다양한 장르를 접하며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사람들과 같은 책을 읽으며 의견을 나누고 싶어졌다. 그러다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독서 모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멤버 모집 폼 제작, 모임 규칙, 인증 횟수와 절차, 모임 날짜와 시간 등등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며칠간 이골이 나도록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단장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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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멤버를 모두 구하고 총 6명의 인원으로 모임은 시작됐다. 우리 모임의 특장점은 활동 기간 중 한 번은 본인이 북 호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나 모임원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을 선정해 한 달 동안 모두가 읽는다. 월간 모임에서는 이 책의 발제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첫 오프라인 모임 날에는 긴장이 많이 됐다. 아는 얼굴도, 모르는 얼굴도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임장이라는 직책이 부담됐던 걸까.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대화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기나긴 침묵 또한 없었다.

 

하지만 운영하다 보니 몇몇 의견의 충돌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멤버 모두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 갈등을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당황스럽고 난처했다. 즐겁기만 했던 활동이 부담으로 다가왔고 모든 게 역량 부족인 내 탓 같았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주변에 조언을 구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모임장인 내가 해답을 찾아야 했다.

 

이대로 모임을 흐지부지 끝낼 순 없다. 어떻게 하는 게 가장 모두에게 이로울지 헤아려야지. 재정비 시간이 필요해.

 

 

 

모퉁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불안은 내 친구다. 가끔은 걱정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내 옆을 딱 지키고 서 있다. 아마 평생 나와 함께할 이 감정은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내 발목을 잡기도 하고, 이미 잘 하고 있는 일에도 괜한 상상을 덧대 머리를 무겁게도 한다. 

 

이전에 기고했던 에세이에서도 언급했지만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뭐라도 해보는 것'이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발전적인 삶을 사는 건 포기해야 할 테다.

 

이지러진 달을 보며 생각한다. 생동과 나태의 추 사이에서 여전히 나는 고군분투 중이라고. 이상과 현실을 동일시하기 위함인지 그저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건지 명백하지 않지만 지금 이 움직임이 무용할지라도, 끊임없이 움직여 보려 한다. 잡념에 잠식당하지 않게, 희망을 외치며 모퉁이 너머로 힘차게 걸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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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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