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와 가지같이 [미술/전시]

사비나미술관 이길래 개인전 "늘 푸른 생명의 원천에 뿌리를 내리다" 관람 후기
글 입력 2024.04.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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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의 소재와 주제로서 자연은 그 어떤 다른 대상보다도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대상일 것이다. 여기서 작가마다의 고유한 시각과 작업 방식으로 각 작품들은 차별점을 지닌다.

 

사비나미술관에서 진행중인 이길래 작가의 개인전은 자연을 모티프로 작업하면서 자신만의 고유성을 지닌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산업용 재료인 동파이프를 사용하면서 자연물을 형상화한 조각을 다뤄왔다.

 

전시의 제목 《늘 푸른 생명의 원천에 뿌리를 내리다 - 생명의 그물망》은 자연을 경유하여 세계 위의 생명과 그들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가의 작업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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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이길래 작가의 조각, 드로잉 작품 106점을 2, 3, 4층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4층은 작가의 드로잉 작업이 있었다.

 

드로잉은 작가의 작업에 대한 고민과 탐구가 엿보이기도 하면서 그 자체로서 충분한 하나의 작품이기도 했다. 한지 위에 잉크로, 오로지 검은 색의 선으로만 그려지면서도 여러 획의 흔적이 겹치고 충돌하며 물질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듯했다.

 

나무로부터 시작한 그의 드로잉은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그 자체로, 혹은 돌과 결합하며 나무가 아닌 것이 되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대상은 개별적인 하나의 나무나 돌이 아닌 생사와 시각적 형태를 보여주는 어떤 대상이 되었다.

 

생과 사에 대한 작가의 탐구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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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자연의 성장과 생명력을 상징하며, 돌은 시간에 저항하는 고요한 불변의 존재다.

 

미술관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소나무와 돌이라는 대립적인 속성 간의 대비와 조화를 통해 인간(기계)과 자연, 생명과 무생물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 상호보완 작용하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전하고자 했다.

 

“그들(나무와 돌)은 절대적 의미에서 살아있음과 죽음이 아니다. 생(生)과 사(死)는 물성의 현 상태로 인식을 해야 하며, 이것은 결국 유기체적 속성을 순환의 논리로 바꾸는 기반이 된다.” - 이길래 〈작가 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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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2층의 작업에서도 잘 드러난다. 드로잉에서 보여졌던 생명에 대한 작가의 탐구는 2층의 작업에서 그대로 표상된 듯하다. 나무와 돌이 결합되면서 나타나는 작품들의 형태는 그 조형적 특성과 함께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3층의 몇몇 작업은 나에게 기이하면서 섬뜩한 감각을 주었다. 특히 푸른 색 이파리가 달린 소나무 작품과, 벽에 부조처럼 걸린 작품들이 그러했다. 각 작품은 물성의 현 상태를 보여주는 작가의 작품이라기보다, 하나의 나무 개체 같이 보였다.

 

동파이프라는 딱딱하고 차가운 소재의 고정적인 성질이 나무의 모습과 대립되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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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나무 작품들도 그랬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의 나무를 떼어내어 박제해 놓은 것처럼, 생명을 그 안에 가두어놓은 것 같은 느낌은 잿빛의 전시장 때문인지 강하게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박제는 생과 사, 생명과 무생물의 중간적 위치에 존재하는 대상이다. 작가의 작업 의도가 잘 반영된 작품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와 같이 관람자가 받아들이는 감각은 상이할 수 있는 것 같다.

 

3층의 일부 작업들이 이러한 언캐니의 감각을 주는 것은 2층의 작업과 달리 특정한 하나의 개체로서 대상을 상기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생과 사라는 근원적 주제를 다룸에 있어 작업물이 구체적이기보다 추상성을 지녔을 때 그 주제의식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생명 그 자체의 네트워크와 유기적 관계망을 보여주는 것 같은 2층의 작업들처럼 말이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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