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 우리는 모두 어쩌면 그냥 땅에 발붙이고 사는 소소한 인생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영화]

글 입력 2024.03.3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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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River가 조용히 흐르는 뉴욕의 아침. 노란 택시에서 갓 비누칠을 한 것 같은 키가 크고 말쑥한 아름다운 여인이 내린다. 우아한 검은색 드레스와 진주 장신구로 치장한 여자는 티파니 보석 상점 앞에서 봉지에 든 크루아상과 커피를 꺼내 먹기 시작한다. 그녀의 눈은 점잖고도 고급스럽고 화려한  보석 상점을보고 있지만, 정작 관객들은 상점의 유리에 비친 그녀의 모습과 얼굴을 보게 된다.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은 시그니처인 이 오프닝만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오드리 헵번이 실제로 뮤즈였던 지방시의 의상을 보는 재미부터, 60년대 파르란 뉴욕의 거리, 그리고 불안정한 두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까지 이 영화는 아름다운 그 시대의 공기와 분위기들을 모아놓은 zip 파일처럼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보다도 내 마음을 더 아리게 하는 것은 이러한 화려한 주인공들의 마음속 기저에, 누구보다도 평범하게 땅에 바닥을 붙이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여주인공인 홀리 고라이틀리는 고급 콜걸로 일을 하며 매일 밤 파티를 즐기고, 남성들에게 때로는 집착을 받기도 하는 등 화려하고 피곤한 삶을 산다.

 

하지만 하얀 셔츠를 입고, 캐리어에 전화기를 넣어두고 사용하는, 잠이 덜 깬 낮의 홀리는 고양이의 이름을 물어보는 옆집 남자 폴의 물음에 대해 고양이의 이름은 단지 “고양이” 일 뿐이라며 이렇게 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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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때면 그냥 택시를 타고 티파니에 가요. 그럼, 금방 기분이 좋아져요. 그 조용함과 고고함이 있죠. 거기선 나쁜 일은 생기지 않아요. 티파니 같은 느낌을 주는 진짜 집을 구할 수 있으면. 그땐 가구도 사고 고양이 이름도 지어주겠어요.”

 

해당 영화는 트루먼 카포티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소설 속에서는 홀리의 명함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녀는 카르티에처럼 아름다운 명함에 “홀리 고-라이틀리, 여행 중”이라는문구만 인쇄해 가지고 있다.

 

언젠가 티파니 같은집을 구해 그곳에 살고 싶다는 것. 크림색 고급의 명함 위에 “여행 중”이라는 쓸데없는 문장을 인쇄한 것 .이런 모습들 속에서 홀리가 가지고 있는 허영심과 바보 같은면 역시 분명 존재한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생활의 감각을 느끼려 하지 않고 여전히 꿈을 꾸고, 바보 같은상상을 하며 때론 흥청망청 돈을 써버린다.

 

“난 홀리도, 룰러메이도 아니에요. 난 내가 누군지 몰라요. 난 이 고양이처럼 이름도 없고, 누구의 소유도 아니에요.”


스캔들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뉴욕의 비 오는거리 한복판에서 홀리는 이렇게 말한다. 15살, 시골에서 고아 신분으로 늙은 의사와 결혼하고 한밤중 도망쳐 나온룰러메이도, 매일 밤 파티를 하며 '고양이' 이름을 가진 고양이를 쓰다듬는 홀리도 그녀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다. 어쩌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단지 지금껏 풍파 많았던 인생과 달리 그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소유하지 못하고 다만 안락한 곳에서 마음 편히사는 것 아니었을까. 
 
고 라이틀리(Go-Lightly)라는 그녀의 이름처럼, 지금까지 고단하고 발붙일 곳 없이 허공에 붕 뜬 사람이 아닌, 그냥 인생을 즐겁게, 가볍게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그녀는 바보 같은로맨티스트이지만, 그 로망 속 가장 본연의 것은 자신만의 따뜻한 삶을 찾는 것이기에 그녀가 60여 년이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것이리라.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옆집 작가인 폴 바잭과 홀리가 같이 뉴욕의 어느 상점에 들어가서 몰래 동물 가면을 쓰고는 그대로 계산하지 않고 줄행랑을 치는 장면이다. (물론 절도죄이긴 하지만, 영화적 허용을 위해 넘어가도록 하자) 다 클 대로 큰성인 남녀가 이런 쓸데없고도 바보 같은짓을 함께 하며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바보 같은순수함과, 그 바보짓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느껴지는 장면이라 두 청춘이 마음 아팠다.
 
홀리에 휘둘리곤 하는 폴은 팔리지 않는 작가이면서, 부유한 유부녀 스폰서를 가지고 있는, 홀리와 별반 다를 바없는 처지의 청년이다. 이 청년은 제멋대로인 홀리를 신경 쓰여하면서 점차 그녀와 함께 땅에 발을 붙이고 살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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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와서, 뉴욕의 비 내리는 거리의 택시 안에서 흘리는 감정에 북받쳐 느닷없이 고양이를 바깥으로 쫓아낸다.
 
“가버려, 고양아 가버리란 말이야.” 
 
그리고는 돈을 좇아 뉴욕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려 한다.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속한 채 살아가는 거야. 그게 유일한 행복의 기회니까.”
 
내가 요즘 생각하고, 감동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누군가가 매일 매일 들고 다니는 에코백과, 그 안에 든 필통 안의 것들이 너무나 그 사람답고,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을 때. 나보다는 나이가 꽤 많은 어른이 결혼을 해서, 아침에 라면을 같이 끓여먹을 때 서로에게 음식을 덜어 줄 때. 때론 바보스러울 만큼 성실해 보이지만 자신이 루틴을 만들어서 지켜나가고, 자신의 일상을 조용히 규칙적으로 살아갈 때.

 

그런 것들을 보며, 내 주변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일상을 같이 할 수 있는 안정된 배우자도 없고, 그냥 단지 하루하루를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있는 것만 같은 나 자신에 화가 나고, 무엇인가 세상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소소한 일상의 것들이 안정적으로 확립해 나가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홀리와 폴도 마찬가지였었을 것이다. 폴의 내뱉듯 뱉은 저 말에 결국 홀리는 빗속을 뚫고 다시 폴에게 돌아왔으니까. 그 둘의 사랑과 삶이 그 이후로도 평탄했을지는 모른다. 땅에 발붙이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다가도, 때론 방황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니까.

 

하지만, 뉴욕의 길거리에서 뚱뚱하고 늙은 '고양이'를 다시 찾았다는 것. 그 고양이를 두 사람이 꼭 껴안고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애처롭고도 아름다워서, 그리고 나의 미래 역시 그렇길 바라서, 그 두 청춘이 티파니같이 깨끗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찾아 고양이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며 어딘가 발붙이고 살아갔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정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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