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뛰고 싶으면 뛰어, 걷고 싶으면 걸어

글 입력 2024.03.2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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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과 최선 그 너머에 정답이 있었다. 교환학생에 가는 것. 무모하게 1년 휴학을 하더라도 '도전을 해봤냐', '그저 포기했냐'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낸다. 그저 한 학기 교환학생에 간다고 1년을 준비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은 일 또는 큰 도박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럼에도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휴학을 해서라도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 언어를 배우고, 새 문화를 습득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으면. 그 준비하는 1년은 오히려 그 어떤 해보다 값진 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나의 경로를 완전히 뒤바꾼다."

 

이전화 : 남반구 바다에서 한 마리 연어가 되었다

 


학교 중앙광장 앞 웅장한 분수 그리고 드넓은 잔디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눈앞에는 사람들과 여러 마리의 개들, 그리고 그들을 넉넉히 품고도 넘쳐나는 넓은 대지 그리고 하늘이 있다. 사람들도, 개들도, 나무들도, 새들도 저마다 세상을 품어보고 감각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누리고 있다.

 

다른 말로는 자유다. 자유롭게 날개를 펴고 날아갈 자유, 목줄에 묶이지 않고 어울려 놀 자유, 내가 원하는 어느 방향이든 돌아설 수도, 뛸 수도, 엎드려 쉴 수도 있는 자유. 가만히 앉아서 강아지들이 뛰노는 것을 바라볼 자유. 그리고 이들을 그저 관찰하는 사색하는 나의 자유도 함께 있다.

 

개들은 뛰다가, 걷다가, 좋아서 그 자리에 누워버린다. 그러곤 잔디에 등을 마구 비빈다. 옆으로 등을 비벼가며 혓바닥을 내밀고, 다시 또 앞으로 옆으로 걷는다. 그 누구도 이들의 경로를, 자유를, 여유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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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앞에는 오리네 가족들이 오후 5시의 태양을 만끽하고 있다. 새끼 오리들이 파닥파닥 헤엄을 치고, 호수에서 땅으로 이동해 물을 털어가며 제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 자체로 나는 오리의 세계에서 함께 숨 쉬는 중이다.

 

사람과 개, 오리와 새, 나무들을 모두 포용하고도 넘쳐나는 관용 그 자체의 땅. 나는 이런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서 있다.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 그저 가만히 앉아서 저물어가는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의 뒷모습. 지치면 쉬고, 신나면 다시 뛰는 강아지와 새들의 행복. 이것 이상으로 우리는 인생에서 더 무엇을 바라야 할까.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했던 한낱 작은 인간의 욕망을 반성하게 된다. 아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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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금 눈앞에는 참기름 강아지라 불리는 닥스훈트가 등장했다. 저 짧은 다리의 닥스훈트도 먼 거리를 세차게 힘차게 달려나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주인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다리에 불이 붙은 듯이 뛰어나가는 생명체.

 

제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그저 잔디 밭에 젤리 바닥을 쿵쿵 쿵쿵 찧으며 부지런히 달려가는, 뭉이를 닮은 강아지들의 모습.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 뭉이가 너무 보고 싶다. 제 언니와 떨어져 지낸다는 걸 신뭉은 알까. 나도 뭉이랑 함께 이 넓은 광장을, 들판을, 땅을 아울러 함께 뛰어다니고 싶다. 뛰고 싶으면 뛰어, 걷고 싶으면 걸어. 멈추고 싶으면 그만 멈춰서 쉬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야. 무언가에 속박도, 족쇄도 걸리지 않고.. 우린 그럴 자유가 있어.

 

이들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런데 왜 개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달려나가는 강아지를 보고 도망갈 거라 생각하지 않을까? 잃어버릴 거라 걱정하지 않을까? 왜 앞서 달려나가도 이리 오라며 그들을 붙잡기 위해 뒤따라가지 않을까. 그 누구도 조바심, 걱정, 불안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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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동안 사람이 붐비고, 갈증이 붐비고, 욕망이 뒤섞여 엉키는 도시에서 살아왔다. 이런 여유로운 공간, 개개인의 영역이 넓게 보장되는 공간에 마치 처음 존재하는 것만 같다. 매일매일 앞만 보며 달려왔고, 1분 1초가 아까워서 분 단위로 삶을 계획했던 숨 가쁜 순간들이 떠오른다. 무언가를 해내야만,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던 날들. 이제와 다른 스펙트럼의 삶을 관찰한다.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느낌이 든다.


물리적으로 비슷하게 태어나고 자란 사람, 개, 나무인데도 여기 있으면 달라 보인다. 착각일까. 그저 내가 잠깐 살다가 떠날 사람이라 그리 느끼는 걸까. 이들을 보면 마치 완전히 자유로운 한 개체처럼 느껴진다. 저 개들의 행복은 영원토록 이 넓은 들판을 누리며, 냄새 맡고, 걷고, 또 맡고, 그런 반복되는 무한한 자유와 기쁨에서 오는 것이겠지? 오늘같이 매일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자유가 무엇인지 피부로, 눈으로, 소리로, 손가락으로, 촉각으로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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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느껴지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삶이 존재하네. 정말로. 이들은 무엇으로 먹고사는 걸까. 어떻게 하면 이런 여유와 자유를, 평일 오후 5시에도 느끼는 걸까. 정말 9시부터 6시까지 회사에 있지 않아도 세상살이는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이 풍경으로 세상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나는 세상에 무엇을 바라며, 나는 나에게, 세상에 앞으로 어떤 자취를 남기고 싶은 걸까.

 

지금껏 물리적인 나이가 젊음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고정관념이 깨졌다. 평생 젊게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디로 가는지, 어떤 마음을 향해 나아가는지에 따라 영원히 젊게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태초부터 변한 적 없었던 낮과 밤의 반복과 어김없이 뜨는 태양.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대지의 침묵. 이 세상이 나를 품고 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생명체기에,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생애를 아름답게 만들어갈 의무가 있다. 이제 단 한 가지의 질문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앞으로 어떤 삶의 색채를 선택할까.

 

사람으로 태어나는 건 현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머리로만 이해할 수 없다. 오늘도 확신한다. 두 발로, 두 가슴으로, 두 눈으로, 두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것이 세상이구나. 오늘을 잊지 말자. 감각했던 이 생생한 자유의 느낌을 꼭 삶의 씨앗으로 뿌리자.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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