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다짐

이건 일종의 연가
글 입력 2024.03.1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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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래, 나는 그 다짐을 '이제서야' 하려 한다.


정말 지긋하게 오래도 걸렸다. 매사에 느리고 굼뜬 나지만, 이번엔 정말 오래도 걸렸다. 

 

너에 대한 나의 마음, 

그 마음을 이제는 부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존재의 존재감은 존재와 물리적으로 함께할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강해진다고 누가 그랬었나, 정말 그렇다. 그런데 너라는 존재만큼이나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이 커질 때마다 나는 늘 그걸 부정했었다. 우리의 관계보다 더 더 더 이상을 바라는 건 네가 원치 않는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우린 함께할 때마다 너 나 먼저 할 것 없이 서로 친근함을 보였지만 아주 날카롭도록 미세하게 감춰져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다. 너도 그걸 느꼈겠지? 그런데 나는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 선을 넘고 싶은 욕심이 자라났다. 굳이 예민한 관심을 쏟지 않아도 혼자서 굳게 잘만 자라는 다육이처럼, 내 마음은 그렇게 나조차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점점 커져만 갔다.


그래서 나는, 많이 늦었지만, 

이제는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다육이처럼 자라난 나의 마음을 스스로 가차 없이 꺾어 버린 적도 있었다. 사실 지금껏 나는 늘 그래 왔었다. 내 욕심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망쳐버릴 것만 같아서. 내 마음이 너에게 부담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설 것이 두려워 지레 겁을 먹고 그렇게 숨죽인 채 매일을 지내왔다. 나조차도 내 마음을 소중히 하지 않았어. 그렇게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한 마음을 나는 고이 접어 깊은 곳에 넣어 놓았고, 아주 가끔씩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먼지 쌓인 그것을 들추며 소주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마음을 접으려고 생각을 하다가 마음이 커지고, 또다시 나는 그 마음을 접으려고 하다가 마음이 커지고, 이런 변주 없는 반복이 길어질 뿐이었다. 너와 함께 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늘 너와 함께였었어. 함께 하지 않아도, 함께 했던 장면들을 펼쳐보며, 그렇게 쓰디쓰게 곱씹곤 했었다.


그런 내가, 많이 늦었지만, 

이제는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다고 해서 막상 너와 나의 관계는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사실 난 달라지고 싶다. 내 욕심을 부정하지 않겠다. 내가 바라는 건 오로지 딱 하나. 네 옆에 내가 그냥 있고 싶다. 아주 오래도록. 그렇게 딱 지금처럼만 함께하고 싶다. 우리의 관계가 남들에게 무엇으로 정의되든 상관없다. 그저 너의 삶에 내가, 나의 삶에 네가, 스며들고 싶다. 그렇지만 마음을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저 한순간의 감정으로 치부 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내가 너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영화 속 등장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래, 그러니까, 불가능하다.


그래서, 많이 늦었지만, 

이제는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너는 참 좋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너와 함께하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서. 너는 너 스스로가 못났다고 하지만 너의 그런 못난 모습까지 그냥 너무 좋아서. 누구나 그렇듯 너는 때로 너의 진심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너의 모습. 근데 그조차도 그냥 다 이해가 돼서. 그리고 남들은 모르고 나만이 알고 있는 너의 조각들을 하나둘씩 발견하는 게 또 좋아서.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말 다 좋아서. 한때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예상보다도 오랜 시간 커져 왔으니까. 더 더 더 좋아졌으니까. 그래서 한 해, 두 해, 거듭하면서 돌고 돌아 나는 결국 너에게 닿곤 했다. 너의 모든 마음을, 너의 모든 모습을, 그게 남들은 추하고 별로라고 손가락질할지라도 난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아.


그게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이라면, 많이 늦었지만, 

이제는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너의 옆에 묵묵히 있어주기.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의 방증들을 적당히 풀어 놓기. 그리고 결국엔, 너에게 늘 한결같은 사람이 되기. 네가 돌고 돌아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어김없이 내가 있기. 그냥 그렇게, 딱 거기까지.


무엇보다 나는, 아프지 않기. 주고 또 주는 마음에 만족하기. 자라나는 욕심을 인정하되 부담으로 울컥 다가서지 않도록 가까스로 잘 돌봐주기. 그냥 그렇게, 딱 거기까지.


너는 운명을 믿는다고 했었지? 네가 중력을 거슬렀던 순간을 기억해. 우뚝 솟아올라 마법 같았던 그 순간 말이야. 우습지? 그리고 놀랍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굴어서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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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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