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월 1일의 밤공기 - 밤을 새운다는 것

글 입력 2024.03.08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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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금요일, 밤을 새우는 중이다.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는 중이다. 최근 해외여행을 위해 공항에 갈 때면 항상 이런 식이다. 직장인에게 공휴일이 붙어있는 주말은 정말로 소중하기 때문에 이번 연휴 역시 절대 놓치지 않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항상 퇴근 후 공항에 도착해 밤을 새우고 그나마 값이 싼 새벽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무엇보다 오늘의 경우에는, 야근을 했기 때문에 집에서 쉴 틈도 없이 곧장 공항에 왔는데도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이 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문을 열었다. 고요하지만 날카로운, 차가운 밤공기가 나를 감쌌다.


밤을 새우며 맡는 밤공기는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추억에 젖게 된다. 남들에 비해 그다지 감정적이거나 감성적이지 않은 성격임에도, 밤공기를 맡으면 피곤한 몸 상태와 차가운 칼바람이 만나 나도모르게 몽롱해지는 것을 느낀다.


처음으로 밤을 새워본 것은 스무살 때이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다음날 시험 등의 중요한 일이 있어도 항상 일찍이 잠을 청했다. 물론 대학교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시험공부를 위해 밤을 새본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고등학생 때까지의 학창 시절 중 유일하게 후회하는 것은 수학여행을 갈 때마다 항상 일찍 잤다는 것이다. 비록 선생님들은 취침 시간이 되면 잠을 자야 한다고 교육하지만, 수학여행의 모든 추억은 잠을 자야 하는 그 시간에 일어난다. 그 추억들은 항상 밤을 샌 자들만의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였을까, 대학생이 된 이후 술자리를 갖게 되면 항상 해가 뜰 때까지 마시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겼다.  물론 대학생 시절의 추억 중 대부분은 밤을 새우던 술자리에서 만들어졌다. 항상 해가 뜨는 모습을 본 후 아침밥으로 해장해야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군 생활을 할 때는 정말 수많은 밤을 새웠다. 보직 자체가 24시간 동안 근무를 서야 하는 보직이었고, 그마저도 4~6명의 인원으로 교대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5일 중 하루는 밤을 새웠다. 군대에서는 당직 근무를 선 다음 날에 ‘근무취침’이라는 일종의 휴식일을 보장해 주었다. 사실상 군 생활의 20%가량은 잠만 잔 것이었다.


나는 나의 보직에 자부심이 있었다. 밤을 새는동안 수많은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렸고, 해가 뜨고 근무 교대 시간이 다가올수록 오늘 하루도 무사히 조국을 지킨 것에 뿌듯함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할 때 전투복을 벗고 눕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었다.


그렇게 전역을 하고, 졸업을 하고, 현재는 공연업계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공연업계 역시 밤을 자주 새는 직종 중 하나이다. 특히 공연날의 경우, 공연이 끝나면 수십 명의 인력이 동원되어 무대를 비롯한 각종 장비들을 철수하는 과정을 거친다.


공연에 있어서 장소 대관과 인건비는 예산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조금이라도 적게 대관하고, 최대한 일찍 퇴근하기 위해 철수 때에는 최대한 많은 인력을 투입하게 된다. 나도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학생 시절, 철수 알바생으로 공연장에서 처음 일을 해보았다.


텅 빈 공연장에서 수도 없이 흘렸던 땀, 적막함과 뜨거움이 공존했던 묘한 기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휴식을 위해 밖에 나가면 세상은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땀이 식어 밤공기가 차가워 지면 다시 일을 하러 들어가야 했다.


어쩌면 이때의 밤공기를 잊지 못해 공연업에서 일을 하고 싶었나 보다. 공연 당일 철수 작업을 위해 밤을 샐때면 아직도 옛 추억이 떠올라 피곤함 속에 설렘이라는 것이 공존한다. 물론 이것만 끝내면 ‘퇴근’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오늘 밤을 새우면서 이러한 추억들이 떠오른 이유는 더 이상 그 어떤 뿌듯함도, 설렘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다음 날 수업 한 번 정도는 가지 않아도 되는 대학생은 술자리를 가질 때면 가장 먼저 막차 시간을 찾으며 다음날 출근을 걱정하는 직장인이 되었고, 몇 시간의 고생을 또 하나의 추억과 맞바꾸던 공연장 알바생은 공연기획사의 직원이 되어 하나의 공연이 마무리되면 다음 공연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다.


흔히 밤을 새는 행위를 다음날을 당겨쓴다고 표현한다. 밤을 샌다는 것은 다음 날 쉬어도 지장이 없는, 내일이 없는 삶 속에서나 가능했던 추억인 것이다. 내일이 있는 삶을 사는 지금은, 밤을 새고 뜨는 해를 마주하면 ‘큰일 났다’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된다. 언제쯤 내일이 있는 삶에 적응할 수 있을까?

 

 

[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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