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해와 이해 속에서 마주한 현실 [도서/문학]

완전한 이해는 어려운걸까
글 입력 2024.03.0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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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기만 해야 할 연말, 저는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아파야만 알아봐 주는 사람들은 때늦은 위로를 건넸지만, 그전의 가혹했던 냉대를 덮을 수 없기에 마음이 착잡했죠. 세상은 점점 차가워지는데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모순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답답했기만 했습니다. '아무도 한 인간의 노력에 주의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인간은 오해로 버무려진 냉혹한 이기주의자 같단 생각도 듭니다.

 

현실은 늘 오해와 이해 사이 어디쯤 놓여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불안은 안대와 같아 눈이 가려진 채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여기게 만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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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토니오』는 믿을 수 없는 소원을 노쇠한 몸으로 이뤄낸 '토니오'로 진심이 가진 힘을 말합니다. 연인 '앨런'을 잃고 폐인으로 살던 '시몬'. 그는 우연히 고래의 입에서 토해져 나온 토니오를 구하고, 그의 소원인 '콘수엘로'를 만나게 해주고자 동료 '데쓰로'와 '마우루'를 설득합니다. 

 

토니오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논리적,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며 불신하던 이들이 토니오를 이해하게 된 건, 한 사람의 인생을 섣불리 맞고 틀렸다는 것으로 결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미 죽은 콘수엘로를 만난 건, 그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심 덕분입니다. 어쩌면 가장 큰 오해는 '할 수 없다'고 믿는 한 줌의 불안이지 않을까요.

 

 
"우리들에게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뭘까? 죽는 순간의 통증? 더 살 수 없다는 아쉬움? 아니야.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지. 떠나는 자도 남겨진 자도 같은 이유로 두려워하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죽음 저 너머로 떠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속에 데리고 간다네. 남겨진 자들은 반대로 죽은 자들을 떠나보내지 않고 기억 속에 담아 함께 살아가지. 데쓰로 자네처럼 말일세. 그것이 기억이고 추억이야. 그것은 환상이나 환영 같은 것이 아니야. 영혼은 바로 그곳에 머문다네. 그리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내가 앨런을 만나고 온 것처럼. 만날 수 있지. 아니, 반드시 만나게 되네.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누군가가 간절히 찾는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밖에 없어."
(p.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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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서야 마주하게 된 오해의 뒷면을 이야기합니다. 「그 여름」에서는 연인이라는 이유로 '이경'을 쉬이 판단한 '수이'가 등장하고, 「모래로 지은 집」에서는 공무, 나비, 모래 세 친구의 엇갈린 시선이 그려지죠. 「고백」에서는 커밍아웃을 한 '진희'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것은 '너'라며 탓을 하는 미주, 주나를 통해 내게 무해한 사람이란 믿음은 적나라한 오해라는 걸 말해줍니다.

 

"너... 괜히 다 참지 마"라고 나비가 공무에 건넨 말처럼, "걔가 사람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경멸하듯 봤어"라는 주나의 말에 "몰랐으니까 그랬어"라고 변명한 미주처럼, 하민에게 "내가 이런저런 사람이라고. 내가 내 인생 망치고 있다고" 말한 사람들처럼. 우린 빈번히 상대를 할퀴는 잘 빚어진 오해를 당신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곤 합니다. 포장지에 쌓인 사람의 진심을 알려 하지 않고 말이죠. 시간이 흘러야만 마주할 수 있는 진실이란 어이없게도 이런 미숙했던 흑역사입니다.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p.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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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는 누군가의 부재를 계기로 오해를 이해로 바꿔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평생 곁에 있을 것 같은 친구, 가족, 동료들이 뜻밖의 이유로 사라지면서 인생이란 그림 안에서 우린 무엇을 당연시하고 믿었는지, 왜 당연하다고 굳게 믿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죠. 

 

「오래전 고독」의 세이는 결국에 우리는 무엇이든 잘 몰랐던 거야. 서로에 대해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조차. 자기의 마음도 서로의 마음도 알고자 하기 전에 지레짐작하고 단정 지어버린 거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짐작과 단정 사이엔 오해만이 있고, 그건 그러니까 골목 같은 거지" (p. 106) 라고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말하죠.

 

이들의 오해가 누군가의 부재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어쩌면 오해의 대상이 사라져야만 이해할 수 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세이는 그저 짐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해한다. 자신이 짐작하는 것이 다만 짐작에 그칠 뿐 진실은 아니며 진실에 가깝지도 않으리란 사실조차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을 지속해나가기 위해서. 짐작에 짐작을 거듭해, 최선을 다해 오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래서 그의 고통을 짐작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다름 아니고, 그러니 어쩌면 짐작만이 삶의 전부이며 짐작하는 인간은 고독하다...... 라고 제이는 허망하게 생각했다.
(p.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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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은 진실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도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모두 오해투성이입니다. 세이는 알지 않았을까요. 화를 내고, 배신감을 느껴도 변해버린 사랑이 원상 복구될 수 없단 걸. 그녀는 남편이 떠난 길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어질러진 파편들을 주워 담으며 이해하려고요.

 

위 책들에는 완벽한 오해도 완전한 이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오해하고 때론 이해하며 지난날의 가증스러움을 부끄러워하는 보통 사람들이 있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상처를 주었던 과거가 있었기에 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9년 동안 저는 어떤 오해와 이해를 번복했을까요. 알게 되면 미안함이 밀려오겠죠. 하지만 올해만큼은 완전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그런 이루지 못할 소망을 하나 품어보려 합니다.

 

 

[오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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