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의 변을 보다 - 오키쿠와 세계 [영화]

변, 사랑 그리고 청춘
글 입력 2024.02.2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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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변’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가 쉽지는 않다. 대화 중에 ‘변’을 얘기하는 것은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이며 배가 아파 급할 때도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한다. 자신과의 비밀을 지키듯이 화장실을 나온 우리는 나와 ‘변’을 분리한다. 아무것도 배출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그 이유야 당연히 ‘변’이란 먹고 남은 찌꺼기들로 더러운 것이며 굳이 이 냄새 나는 존재를 발설하면서까지 좋았던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다. 분명 어렸을 때는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재밌었지만 사회화를 거쳐 ‘변’에 대해 침묵하게 되며 지금의 나 또한 ‘똥’ 대신 ‘변’이란 말로 격식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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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오키쿠와 세계>는 놀랍도록 ‘변’의 존재를, 아니 똥의 존재를 묽은 농도의 시각과 질퍽 거리는 청각으로 상기시킨다. 마치 “너희들은 똥 안 싸니?”라고 묻는 듯하다.

 

1850년 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인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야스케’, ‘츄지’와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딸 ‘오키쿠’ 세 사람의 청춘을 ‘변’과 함께 보여준다. 변과 방귀가 난무하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안녕하세요>가 생각나기도 한다.

 

<안녕하세요>가 변과 방귀를 통해 아이들의 순수함과 재밌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오키쿠와 세계>는 해학적이지 만은 않다. 폭우로 인해 변소가 넘쳐서 인분을 다 치울 때까지 화장실을 참는 마을 사람들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변’을 침묵하는 ‘오키쿠’의 행동은 웃음을 준다. 하지만 인분을 치우는 직업으로 무시를 당하고 냄새로 인해 사람들이 피하는 ‘야스케’와 ‘츄지’의 삶은 유쾌하지 않다.

 

‘야스케’가 인분을 뒤집어쓰고 죄송하다고 무릎을 꿇는 장면이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될 때 나는 변과 함께 하는 삶, 고통과 함께 하는 삶을 자각했다. 이건 ‘야스케’의 삶이자 곧 나의 삶이다. 그렇게 유쾌하지 않는 삶, 고통이 있는 삶, 냄새나는 삶. 내가 배출한 변은 내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거름으로 쓸 수 있다. ‘야스케’와 ‘츄지’, 그리고 나의 삶이 의미를 갖는다. 고통 속에서 웃음을 찾는 ‘야스케’처럼 웃어야 할 대목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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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세계’라는 말을 아나?”
 

 

변으로 가득한 이 영화가 20대 세 남녀의 청춘 영화로 느낄 수 있는 데에는 ‘세계’가 주는 희망이 있다.

 

‘세계’라는 단어가 낯선 시대이지만 끝을 모르는 넓은 세상은 ‘츄지’에게 희망을 준다. 그리고 ‘오키쿠’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목소리를 잃은 ‘오키쿠’에게 글을 모르는 ‘츄지’가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넓은 하늘을 가리키는 두 팔이며 넓은 땅을 두드리는 두 손바닥이다.


영화의 제목으로 이루어진 ‘오키쿠’와 ‘세계’는 ‘츄지’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는 존재이자 심상으로 웃을 대목이다. ‘변’은 순환한다. 변이 거름이, 거름이 양식이, 양식이 다시 변이 된다. 변은 모습을 바꿔가며 존재한다. 고통도 그렇다. 고통 또한 순환하지만 희망으로, 사랑으로 바뀌며 내 안에, 가까이 있을 것이다.

 

스크린을 통해 변을 보는 게 조금은 거북하고 ‘세계’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나의 변을 자각한 것에 만족한다. 어느 영화에서 변과 함께 사랑을 풀어갈 수 있을까. 세계는 끝도 없이 넓으니 있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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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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